매거진 수업 일기

변방에 서서 (2)

우리도 노는 게 아니라우.

by 이기적 소시민

2011년, 당시 국토대장이었던 선배 선생님과 함께 진행팀은 사실, 나 혼자였다. 이왕이면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힘든 짐은 나눠지기도 하는 것이 폼도 나고 국토 이후에 아이들과도 더 친해질 텐데 진행팀에게는 그런 호사가 없다. 게다가 요즘에야 팀으로 일했지 당시에는 내가 곧 팀장이자 팀원이었다. 혼자 동분서주하고 행군팀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날의 행군을 마치고 들어오면 그 이후에는 거의 내가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씻고 들어오는 행군팀을 맞이한다.


"와 ㅅㅇ 얼굴 뽀송한 것봐. 편해서 좋겠어요. 우리는 힘들어 죽겠는데 편하게 먼저 씻고 기다리네. 아이쿠, 삭신이야. 나는 온몸이 쑤시는데 ㅅㅇ은 좋겠어요!"

"역시, 국토의 꽃은 행군이지. 이왕 할 거면 행군을 해야지."

"너무해요. 우리 걷는데 좀 와서 함께 봐주고 가지. 어쩜 얼굴 한 번 내비치질 않아요?"


분명 진담이 아니리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서도 그 말들 하나하나가 발끝에 채이더니 결국 그 말돌멩이에 걸려 넘어진다. 그때 든 멍은 꽤 오래 갔다. 그래서 3년 정도 진행팀으로 일하다가 고3을 담당하게 되면서 국토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어차피, 교사로서 의미도 못 찾을 것, 해도 본전도 못 찾는 그 자리는 나와 상관없다 여겼다.




2025년 7월 1일 오후 2시 30분. 국토 3일 차. 오늘 묵을 숙소에 도착. 여기가 고비이다. 이미 그저께 와서 점검하며 고비에 대한 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 자, 들어가자.

그런데, 본부로 쓸 호텔 내 커피숍에서는 에어컨 공사가 한창이다.


"이거, 왜 이렇게 싸한 거지?"

진행팀 내 브레인이자 꼼꼼하기에는 우리 넷 중에 단연 최고라 일컬어지는 'ㅇㄱ'의 말이다.

"에이, 얼마나 감사해. 오늘이라도 이렇게 고쳐주시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다른 난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자자, 나는 숙소 한 번 돌면서 에어컨 미리 틀어놓을게."

당혹스러웠으나 이 정도는 충분히 해결 가능한 상황이리라. 나와 ㄷㅇ은 곧바로 한 팀이 되어 별관 숙소를 점검하러 갔다. 오늘 별관에는 나와 ㄷㅇ이 도맡아 책임지는 곳이다. 우리 짐도 놓을 겸 에어컨도 미리 켜놓을 겸 부지런히 움직였다.


"1층 오케이!"

"2층 모두 상태 양호!"


3층 한 방에 거실 포함 잘 수 있는 공간이 총 다섯 곳, 여기에 꽤 많은 아이들이 묵어야 한다. 에어컨을 가동한다. 가동........ 어라? 에어컨이 안 돼. 구석 방 하나 빼고는 에어컨이 작동되질 않아. 곧바로 사장님 호출하고 진행팀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땡볕에 걸어올 아이들에게 에어컨이 안 되는 방은 말이 안 된다. 뒤늦게 온 사장님은 이미 우리가 시도해 본 모든 방법을 되풀이할 뿐 방법을 제시해 주실 수 없었다. 그분의 마지막 말에 나와 ㄷㅇ의 등어리가 서늘해졌다.


"아니, 이 방 점검을 왜 안 한 거지?"


그건 저희가 묻고 싶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이들 도착 2시간 전. 이미 짜둔 객실 배정을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 긴급회의를 하면서 동시에 가용 객실을 다시 체크한다. 남녀 구분, 교사 숙소 재배치, 국토를 돕기 위해 온 졸업생 숙소까지 기존에 세웠던 계획이 싹 뒤집힌다.


'탁탁, 타다닥 탁.'


타자 소리와 함께 미간에 내 천 자를 새기고 이마와 뒷목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진행팀 브레인 ㅇㄱ의 숙소 재배치가 천신만고 끝에 나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숙소 재배치를 토대로 방마다 붙일 숙소 배정표와 진행팀장님 ㅇㅇ의 웰컴 메시지에 실릴 명단 수정도 이어진다. 멀리서 보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바로 그 일에 우리는 목숨을 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기로 하고. 그 사이 나와 ㄷㅇ은 각 객실의 컨디션을 다시 점검. 아이들 케어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한다.


아이들 도착 10분 전. 숙소 배치도와 각 방 앞에 붙일 웰컴 메시지 완료. 진행팀장 ㅇㅇ가 아이들에게 주요 전달 사항을 공유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우리는 복도마다, 방마다 배치도와 웰컴 메시지를 부착한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일이 마무리되었다. 아차! 침구류 이동!!! 팀장님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침구류 대이동을 시작한다.


"402호에 있는 침구류 두 세트, 305호에 있는 침구류 두 세트를 각각 201호, 202호, 501호 마지막 506호에 가져다 둡니다. 움직이죠."


가뜩이나 무릎도 좋지 않은데 계단을 오가며 침구류를 수거한다. 늦었다! 아이들이 들이닥친다!


"자, 여러분 잠시만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분주한 마음만큼 팔다리에 속도가 붙는다.

“내가 201호와 202호에 가져다 둘게요.”

“오케이! 그럼 난 나머지 두 군데로 이동”

“자, 그럼 제가 문 서포트하는 걸로!!“


일사천리로 침구류까지 이동 완료. 살짝 늦어졌지만 어쨌든 그래도 아이들 맞이할 준비 완.료. 그렇게 한숨을 돌리는 찰나. 씻기 시작한 아이들에게서 민원이 쏟아진다.


"샤워실 하수구에서 시커먼 물이 역류하고 있어요!!!"

"저, 화장실에 불이 안 들어와요."

"저기요!! 엘리베이터가 멈췄어요! 사람이 있는데요!! 어쩌죠?"


눈앞이 하얗다. 호텔 관리자에게 연락하는 동시에 화장실에서 '뚫어뻥'을 찾았다. 한 사람이 그렇게 욕실 하수구를 뚫는 동안 화장실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찾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고 과정을 모조리 타파해 버리는 놀라운 호텔!!! 일반적인 스위치로는 불이 켜지질 않는다. 확인해 보니.... 전등을 켜려면 전등과 연결된 콘센트를 꽂아야 한단다. 이 무슨... ㅡㅡ;; 방구석에 홀로 남아있던 콘센트를 연결하자 화장실과 방에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 사실을 주변 방에 안내하기 시작했다.


"와! 선생님 놀라워요! 그럼 밤에 잘 때 이 콘센트를 빼고 자면 되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이 콘센트를 꽂으면 불이 들어오는 거죠? 너무 재밌어요!"


이걸 공지사항이라고 전달하는 나나 그걸 재밌다고 듣는 아이들이나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이 빵 터졌다. 그렇게 한참을 꺼이꺼이 웃어댔다.


이후 우리는, 오늘 수리가 끝났다 여겨지는 바로 그 카페 에어컨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해 대야를 가져다 놓고 막힌 화장실 두어 개를 뚫어놓는 동시에 욕실 하수구를 또 두어 개 뚫는다. 그 사이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배분하고 조별 모임을 위한 준비물을 챙겨놓는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방이 생길 때마다 다시 한번 객실을 재배치하고 외부 숙소와 연결한 후 최종적으로 진행팀 방까지 내어주고 나서야 고요해졌다. 진행팀장 ㅇㅇ와 진행 브레인 ㅇㄱ은 본부로 사용 중인 카페에서 눈을 붙였다고 한다.


적어도 우리에겐 전쟁이었다.


그때 그 속소 괜찮았는데요? 크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국토가 끝난 우리에게 그날의 숙소는 국토 20년 통틀어 '최악의 호텔'로 기억되고 있다. 영업을 이어가서는 절대 안 되는 숙소. 그러나 우리 진행팀을 제외하고 그 호텔에 묵었던 사람들은 아주 좋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최악의 숙소는 아니라는 평을 내리고 있다. 진행팀이 왜 그렇게 점수를 짜게 주는지 이야기를 다 듣고서야 무릎을 치며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국토 숙소가 늘 그렇지만 아주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못 잘 정도도 아닌 한 70점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70점을 유지하기 위해 진행팀 쌤들이 200% 이상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어요. 와, 평범을 만들기 위해 평범 이상의 노력을 하는 쌤들이 있다니!!!"


그렇다. 우리는 딱 70점짜리의 평범을 만들기 위해 200%를 준비해야 하는 '진행팀'이다. 자칭 ‘호텔’이라는 곳 하수구에서 쏟아지는 구정물을 막아내고 막힌 변기를 아무렇지 않게 뚫어내며, 곰팡이 닦아내는 것은 우스운. 방이 모자라면 우리 방을 내어주어 70점이라는 점수만큼은 지켜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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