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남이 Dec 04. 2023

먼저 온 손님의 비애

첫째들을 위한 글



군 생활의 전성기라 하면 아마 상병이 아닐까 싶다. 상병이란, 이등병과 일병 계급의 때를 벗고 새롭게 준고참 대열로 들어서는 계급이다. 군 생활의 반 이상을 버텨온 소위 '짬밥' 좀 먹은 행동대장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전까지는 '까라면 까'라는 지시에만 순응하는 후임이었다면, 이제부턴 자신의 선임과 후임들을 동시에 챙기며 때로는 후임들을 엄하게 통솔할 줄도 아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것이다.



상병 생활을 시작하며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정체성의 혼란도 찾아온다. 막내 때는 시키는 일만 하면 엘리트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선임들의 눈초리는 늘고 후임들의 험담도 들려온다. 막내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카리스마도 갖춰야 하고, 선임들에게는 이쁨 받을 수 있는 센스도 있어야 한다. 신병들이 빠졌다거나 부대 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경우 모든 책임은 이들에게로 돌아간다.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중간관리자의 애환도 맛본다. 막내 때는 몸이 힘들었다면 지금은 정신이 더 힘들다.  선임인 듯, 선임 아닌, 선임 같은 상병들은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통해 진짜 사나이가 되어간다.



남매를 키우며 가장 힘든 점은 아이들이 경쟁하며 싸울 때다. 똑같이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녀석들은 자신의 목소리만 들어주길 원한다. 특히, 첫째 아이는 둘째랑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늘 불만이다. 이 집에 2년이나 늦게 들어온 동생이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도 모자라 어쩔 땐 동생을 위해 양보를 강요당하는 이 행태가 못마땅하겠지. 말년 병장이라도 되느냐 부모님의 응석받이가 되어가는 동생을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유튜브 채널 '최민준의 아들 TV'에서는 서로의 관계를 잘 설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부모님이 아이스크림 두 개를 각자에게 나눠주기보다 첫째에게 두 개를 주고 그것을 동생에게 베풀 수 있게 하라고 한다. 첫째는 자신이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좋고, 둘째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첫째 아이가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누나라는 권위와 역할을 잘 세워주고, 동생을 보살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열어줘야겠다. 우리 가족에 먼저 온 손님, 첫째 아이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 동생 50일 기념 촬영 때, 예쁜 두 남매 >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더 이상 신발에 깔창을 끼지 않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