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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18. 2022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_EP1

빅토리아 호수의 작은 섬, 음팡가노

아프리카를 간다는 것. 큰 결심이었다. 길상이는 우리의 첫 여행지였던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많은 백인들을 보고 무섭다고 말했다. 외국인을 본 적이 거의 없는 남편은 낯선 인종의 틈 사이에 있다는 것 자체에 적응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이 우리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하나의 덩어리로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질병, 가난, 물 부족, 기근, 서구의 착취, 밀렵 등 골치 아픈 문제만 머리에 떠올랐다. 지도안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가 가득하다. 낯익은 이름이라고는 세렝게티와 커피 생산지들 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 관심도 없었다. 우린 이 세계를 ‘아프리카 사람’ ‘아프리카 춤’과 같이 하나의 아프리카라고만 인식하고 있다. 수많은 부족과 문화, 동서남북, 중앙아프리카 모두를 ‘아프리카’라는 범주안에 간단하게 넣어 버리니 더더욱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아시아를 구분하지 않듯이 말이다. 여행 중 만난 많은 사람들은 한국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중국이나 일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몰랐고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글이나 k-pop, 삼성과 현대를 예로 들어가며 얼마나 열심히 설명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왜 그리 섭섭한지, 정체성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얘기한다. 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김새도, 문화도 말도 다른 수많은 부족이 살아가는 이 땅을 ‘아프리카’로 뭉뚱그려지고 싶진 않을 터였다.


우린 이 복잡하고도 큰 대륙에서도 관광루트가 제일 잘 형성된 동아프리카를 가기로 했다. 잘 모르는 곳에서 위험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곳은 더 가난했는데 시골마을의 아이들은 어딜 가나 구걸하기 일쑤였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프란치’(외국인), ’ 칭총’(중국인)이라 놀려댔다. 이 놀림을 하루 종일 듣고 있을수록 짜증이 났다. 하지만 누런 코를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차만 보면 뛰어나와 구걸을 하는 아이들을 보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 보고 싶다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돕는 일은 한 세상을 구하는 일과 같다고 하던데, 세상을 구하는 결말까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워크 어웨이 사이트의 장점은 해 보고 싶은 일들을 잘 분류해 놓았다. NGO, 학교, 호텔, 농장 등을 리스트업 해 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일정에 있는 케냐와 탄자니아의 몇몇 NGO단체에 지원서를 보냈다. 보통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에서는 내가 갈 여행지 근처로 세네 군데를 골라 보내면 한 곳도 성사가 될까 말까였다. 여행자들이 많을수록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냐와 탄자니아 모든 곳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이 왔다.

“언제든지 환영해요, 우린 늘 도움이 필요해요”


생각지 못한 모두의 회신에 우리의 동선과 맞게 갈 수 있는 두 곳을 고르기로 했다. 빅토리아 호수 안에 있는 음 팡가 노 섬의 고아원에서 2주간 봉사를 한 다음 우간다 르완다를 지나 다음 탄자니아의 NGO단체를 방문하면 일정이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음팡가노는 빅토리아 호수 안에 있는 큰 섬이다.  워크 어웨이에 등록된 호스트들이 유독 많았는데 섬에서는 봉사자들을 대거 모집 중이었다. 주로 아이들을 돌보는 일들이었다. 그중 우리가 선택한 고아원의 담당자와 일정을 맞춰놓은 뒤 케냐 관광부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는 맥주를 많이 마시는 것만 빼면 언어와 옷차림, 생김새도 '아프리카'보다 아랍에 가까운 문화였다.  케냐는 화려한 머리와 까만 피부, 유창한 영어 덕에 훨씬 더 서구적이. 수도인 나이로비는 매연과 높은 빌딩, 커피숍, 핸드폰 상점들까지 눈이 돌아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생기 넘치는 도시였다. 복잡한 나이로비를 벗어나 나뚜루에서 먼저 3일 동안 관광을 했다. 초원 지천으로 널린 야생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 몸집보다 큰 생명들이 자유롭게 땅 위를 거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케냐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연이 주는 경외감, 초원에서 느끼는 원초적 자유는 아프리카가 아니면 느끼기 힘든 감정일 것이다. 한편으로 동물원의 생명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목이 긴 기린이 나뭇잎을 천천히 씹어먹는 모습, 얼룩말의 얼룩이 가로줄과 세로줄이 함께 있다는 것도 이제야 보인다. 지구에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생명이 살아있다는 게 처음 실제로 느껴졌다.

동물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워킹 사파리


짧은 관광을 끝내고 마타투라는 작은 봉고차를 이용해 롱고로 향했다. 관광지가 아닌 낯선 동네까지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확한 버스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물어보는 사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은 다음 본인 말이 맞다고 우겨댔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호스트가 알려준 지역명 하나를 가지고 어찌어찌 봉고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로 달린다. 호스트를 만나야 한다. 우리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밤이 되기전에 호스트를 만나야 한다. 정확한 정보가 없는 덕에 시간을 허비했다.  하룻밤은 차를 갈아타는 터미널의 맞은편 소란스러운 여관에서 잠을 잤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으슥한 동네였다. 외국인들이 올 일이 거의 없는 도시처럼 보였다. 피부만으로도 튀는 외모인 우리는 시골에서 더 큰 이목을 집중시킨다. 뜬눈으로 밤을 지우고 다음날, 첫 마타투를 타고 겨우 롱고에 도착했다. 이틀 내내 작은 봉고에서 다리도 못 뻗고 있었더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롱고의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장대에 신발을 주렁주렁 매달아 들고 있는 키 큰 마사이족이었다. 그들이 만드는 신발은 튼튼하기로 유명했는데 신발보다 더 끈질긴 영업을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낯선 곳에서 빨간 체크무늬 담요를 두른 그들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어기적 걷는 긴 다리가 기린같이 느릿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우리 앞에 검은 차 한 대가 섰다. 호스트 케빈이었다. 이틀 동안 이동만 하느라 고생을 해서인지 낯선 곳에서 만난 그는 10년 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웠다. 까맣고 동글동글한 머리에 키가 훤칠한 그는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믿어도 될 만한 관상을 확인하고는 그의 차를 탄다.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전에 그는 먼저 필요한 식량부터 사자고 했다. 주로 감자와 당근, 고구마와 같은 흔한 재료들을 샀는데 섬에서 사면 가격이 비싸지니 뭍으로 나왔을 때 장을 많이 봐야 한다고 했다. 우린 아이들에게 줄 사탕 두 봉지를 샀다.

쇼핑이 끝나고 식료품 배에 싣었다. 선실에는 가축과 철근, 페인트를 비롯해 호수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 있었는데 마치 시골 장날의 버스를 탄 광경이었다. 철근을 밟지 않으려 조심조심 우리 자리를 찾아 앉았다. 호수는 바다같이 넓었다. 하얀 물거품을 만들며 워터버스는 호수를 시원하게 가른다. 백 나일강의 수원지인 빅토리아 호수는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는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안달인데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 당시의 이름이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배에 탄 사람들은 크고 흰 눈으로 우리를 어찌나 훑어보는지 우리 얼굴을 쪼개 퍼즐이라도 맞추듯 이곳저곳을 뜯어보았다. 우리는 배안의 좌석과는 달리 분리된 vip방에 앉았다. 큰 선실 옆 작은 공간은 vip실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꽉 막혀 환기가 되지 않았다. 되려 일반 칸이 나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어 더위를 참고 vip를 자처했다. 시골로 갈수록 그 시선은 따가워지니 매번 눈인사를 하거나 걸어오는 말들을 답을 하기가 버거워진다.

“칭총?”

“우린 한국에서 왔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외모로는 그들에겐 구분이 불가하니 우리를 세워두고 현란한 쿵후 동작을 해 보인다. 우리가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쿵후를 할 줄 아는지였다. 처음 이 물음에 한국은 태권도라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답을 했다가 나중에는 지쳐버려 ‘난 쿵후 유단자다’로 공식 대답을 정했다.

내 대답이 무서운 것인지 쿵후 유단자라는 타이틀 하나로 우리는 무적이 된다. 덩치가 큰 남자들조차도 쿵후 유단자라는 말에 두려운 눈빛으로 뒷걸음질을 쳤으니..

한 시간 좀 넘게 배를 탔을 무렵 케빈은 우리를 깨워 멀리 섬을 가리킨다. 음팡가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가 우거진 해안으로 작은 배가 많이 정박되어 있었다. 남자들은  그물을 당기거나 손질하느라 여념 없었고 여자들은 빨래를 하거나 물고기를 손질했다.

우리가 장 본 물건이 많아 이걸 어떻게 다 들고 가나 내심 걱정을 했는데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달려와 짐을 하나씩 나눠 들었다. 아이들도 열 명 남짓 마중을 나와서는 한 손에 하나씩 짐을 들고 머리 위에 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 물건을 들겠다고 난리가 났다. 노란 피부의 우리 모습이 충격적인지 걸음은 앞을 향해 걷지만 시선을 우리 얼굴을 향하고 있다. 까만 콩 같은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웃어 보이니 이내 경계심을 풀고는 슬그머니 옆으로 와 손을 잡는다. 손가락 다섯 손가락 마디마디가 느껴지는 작은 손이었다.

케빈과 아이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십 분쯤을 걸으니 마당이 넓은 성당이 나왔다. 고아원인 줄 알고 온 이곳은 성당이었다. 기관 담당자인 줄 알았던 케빈은 바로 이 성당의 신부님이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아이들은 동네 천주교 신자들의 자녀들이라 했다. 우린 고아들을 돌보는 일인 줄 알았는데, 잘못 찾아온 것인가? 뭐든 할 일만 있으면 상관없으니 일단 신부님의 집에 들어가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한집에서 함께 지낼 모세, 폴, 유니스를 차례대로 만나 인사를 했다. 모세와 폴은 음 팡가 노 출신으로 신부님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제들이다. 방학이라 고향에 잠시 돌아와 케빈의 미사를 돕고 있었다. 유니스는 신부님의 집에서 청소와 식사를 준비해 주는 엄마 같은 역할을 했다. 함께 지낼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다들 어찌나 흥이 넘치고 말이 많은지 그 수다에 낄 틈이 없다.

폴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학생인데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여기 왜 왔어요?”

“일하러 왔죠. 신부님이 말씀 안 하시던가요?”

“아뇨, 그런데 일할 건 많아요.”

“아마 우리가 워크 어웨이 첫 봉사자인 것 같네요”

“춤 잘 춰요? 한국은 인구가 몇 명이예요?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했어요? 몇 살이에요? 왜 아이는 없어요? 여행은 왜 해요? “

끊임없는 질문들에 대답을 하느라 성당의 식구들과 저녁밥을 다 먹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궁금한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기자회견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님을 믿나요?”

“저희는 불교 신자예요, 부처님은 신은 아니에요. 그래서 우린 신을 믿지는 않아요”

“불교에도 신부님이 있나요?”

“ monk가 있죠, 머리를 깎기도 하고 안 깎기도 하는데,, 수행하는 사람들이에요. Monk.

“우리도 monk에요, 나는 big monk, 사제들은 baby monk죠” 케빈이 말했다.

불교신자인 우리가 흥미로운 듯 불교의 세계관을 궁금해했다. 기도하는 법, 예배를 보는지 등등. 특히 환생의 개념이나 열반, 깨달음이라는 관념을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동양문화권에서는 쉽게 설명이 되겠지만 가톨릭 신부님과 사제들에게 이 개념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모세와 폴은 본인들을 이제부터 baby monk라 불러달라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편할 것이라 했다.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게 제일 편한데… 밤새 이어지는 철학적 이야기에 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오후 내내 이들을 보고 있으니 까만 얼굴에 흰자위와 하얀 이를 환하게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점점 익숙해졌다. 음팡가노에 도착한 반나절 만에 우린 집에 온 듯 편안해졌다.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할지는 아직 몰라도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사막에서처럼 도망갈 일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섬이라 도망가기도 쉽지 않겠지만..

신부님은 마침 내일 미사가 있으니 꼭 참석하라고 당부했다. 불교와 천추교의 monk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겠다고 한다. 우린 9시 미사에 꼭 참석하겠다 약속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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