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로 된 매트리스는 내가 누운 모양 그대로 유지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체온의 열이 매트리스를 통해 다시 올라온다. 침대는 과학이랬는데, 이것은 매몰에 가깝다. 땀 범벅이 되어 매트리스에서 몸을 꺼내 일으키자마자 샤워를 한다. 12월, 겨울이지만 케냐의 겨울은 덥다 못해마른하늘에 해만 쨍쨍 비친다. 비가 오려면 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신부님은 중학생인 리키와 크리스토프, 레녹스를 소개해 준다. 이들은 방학동안 성당에서 지내며 성당의 모든 허드렛일을 했다. 똑똑하고 성실한 아이들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성당 일을 도우며 생활하고 있었다.
리키와 함께 창고로 가 옥수수 한 포대를 꺼냈다. 미리 갈아놓은 흰 옥수수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성당 뒤 언덕으로 한참을 올라갔다. 허름한 건물 옆에는 불을 지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를 쫄래쫄래 따라온 어린 아이들을 향해 리키는 어른스럽게 지시를 내렸다.
“너는 성냥, 너는 냄비, 너는 나무를 모아와”
아이들은 리키가 대장이라도 된 듯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각자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우리도 돕겠다 했더니 일단 오늘은 보기만 하고 배식 할 때만 도와달라고 했다. 배식때는 아이들이 음식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손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놀기가 뭣해 아이들을 따라 나무를 모아왔다. 큰 돌은 솥을 올릴 받침으로 수평을 맞춰 놓고 그 속에 나무잔가지를 넣었다. 앳된 얼굴의 리키는 능숙하게 불을 피웠다. 불이 더 잘 붙으라고 플라스틱 생수병을 모아서 함께 태웠다. 지독한 검은 연기가 났지만 우린 잠자코 보고 있었다. 큰 솥을 올린 뒤 물을 부었다. 빗물을 모은 탱크에 저장해 놓은 물을 가져왔다고 했다. 물이 끓을려면 한참은 멀은 것 같은데 포리지를 먹으러 온 아이들은 이미 40명을 넘어섰다. 어린아이들은 등치가 꽤 큰 이 중학생 세 명을 무서워 했다. 우리가 하는 말은 깔깔거리며 웃지만 이 세명의 말이라면 군말 없이 따랐다. 예를들면 ‘불에 가까이 가지마라’ ‘때리고 싸우지 마라’ 정도의 단순한 요구였는데 남편이나 내가 하는 말에는 키득거리며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면 리키의 말에는 이내 얼굴이 굳어져 차렷 자세를 하고 물러난다. 우리보다 이들이 진짜 어른으로 보이는 것인지,, 아이들은 우리를 성인 어른이 아닌 신기한 인종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역시 아이들이 까만 콩 같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곱슬한 머리에 살짝 벌어진 앞니, 어리지만 탄탄한 몸,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의 몸과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개중에는 곱슬머리에 가발을 한 가득 붙여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아이들도 있었는데, 머리를 땋고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았다. 몇 일 간은 아이들의 얼굴이나 동네사람들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다른인종에게 아시아인들의 얼굴이 다 똑같아 보이는 것처럼 우리도 이들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 한 일 같았다.
한번은 어떤 러시아인이 길상이를 송강호로 착각하고 쫒아온 적도 있으니 말이다. 송강호 배우와 손길상이라니,,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피부색과 눈 크기에 가려 생김새를 구분하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보는 얼굴들이 눈에 익기 시작하자 조금씩 이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눈이 조금 더 크거나, 앞니가 더 벌어지거나 등등 다른 생김새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뜨거운 햇볕아래 펄펄끓는 옥수수 죽을 저었다. 빨리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포리지는 불이 들쭉날쭉인 나무 장작불 때문에 완성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다. 60인분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불을 보느라 허리를 숙였다 펼 때마다 아이들을 내 행동을 따라했다. 나는 아이들의 무료함을 달려주려 스트레칭과 요가를 보여주니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이 몸을 이리저리 찢으며 따라했다. 시야에서 사라진 남편은 뭘 하나 싶어 쳐다보니 그늘에 앉아 아이들에게 머리를 쥐어 뜯기고 있었다. 머리를 땋았다 풀었다. 몇 일이 지나야 아이들이 우리 머리에 싫증을 내 줄지 궁금했다. 온몸은 땀으로 샤워중이었다.
마침 신부님이 들렀다. 소리를 꽥꽥 지리던 아이들도 순한양이 된다. 갑자기 수줍은 듯 손을 모으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두 얼굴을 가진 아이들을 봤나.
“잘 되어가나요?”
“네, 근데 얘네 엄청 떠들었는데,,, 신부님 오니까 다들 왜이러는지 모르겠네요”
“하하. 신부님이란 직업이 그런 것 같아요. 이곳에서 아이들이 제일 존경하는 직업이 신부님이거든요”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아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는 신부님이었다. 여자아이들 역시 불가능 한 장래희망임을 깨닫기 전까지 부동의 1위 꿈이 신부님이었다. 섬 아이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직업, 굶지 않아도 되고, 지혜로우며 사람들의 존경 받는 멋진 사람. 모두가 신부님을 꿈꾸고 있었다. 중학생 3인방의 꿈도 신부님이다. 물론 좋은 직업일 수는 있지만 모두의 꿈이 하나 인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 있는지 그 꿈으로 엿 볼 수 있었다.
케빈은 허름한 옆 건물을 보여줬다. 미 완성된 이곳은 새들이 들낙거리며 기둥과 바닥에 똥을 가득 싸 놓았다. 한때 이곳을 교회로 썼는지 중앙 벽에는 십자가 모양의 페인트가 칠해졌다 벗겨져있었다. 손만 보면 꽤 괜찮은 건물이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런 용도없이 버려져 있었다.
“난 여기 아이들을 위한 건물로 쓰고 싶어요. 공부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곳요. 지금은 해가 뜨겁거나 비가오는 날에도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니깐요. 몰타 친구들이 후원을 해 줄 때마다 여기 조금씩 바닥 공사와 벽 공사를 했어요. 꽤 괜찮지 않나요? “
“좀 더 손본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페인트도 칠하고,, 책걸상도 만들구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도 임기를 채우고 떠날날이 올텐데,, 그 전까지 이 건물을 만들어 놓으면 다음 신부님도 이 건물을 활용할거예요. 아이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계속될 거구요. 그런데 지금 이대로라면 누구도 관심을 가지기 힘들거예요. 그게 좀 걱정이긴 해요”
“페인트를 사주시면 우리가 칠해볼게요. 페인트 칠은 자신있어요. 수도원에서 일하는 동안 많이 해봤어요”
“그래요? 그럼 내가 사용할 돈이 되는지 예산을 짜 볼게요”
건물을 구경하며 의논하는 사이에 포리지와 도너츠가 완성되었다. 이곳에서는 도넛을 ‘만다지’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늘 먹던 포리지보다 만다지가 더 먹고 싶어 보였다. 그래, 역시 튀겨야 제 맛이지. 이 간단한 음식이 완성되기 까지 아이들은 3시간을 기다렸다. 자리를 뜨면 못먹을까 싶었는지 다들 음식만 보고 서 있다.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맛집도 한시간 기다리기가 힘든 법인데 이 뜨거운 날씨에 뜨거운 이걸 먹겠다고 들떠서 기다리는 모습이 짠하다.
뜨거운 포리지는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며 식히기를 반복했다.
“줄서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로봇이 합체되듯 배와 등을 다닥다닥 맞붙이고 음식 뒤로 줄이 이어졌다. 신부님은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맨 앞에 나오게 줄을 세웠다. 조그만 손으로 빨강파랑 플라스틱 컵을 꼭 쥐고 담아주는 포지리와 만다지를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겠다는 듯 각자 자리에서 움크리고 먹기 시작했다. 60인분의 양보다 더 만든 것인지 몇 번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양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주머니에 만다지를 숨기고 처음 받는 것 처럼 몇번이나 배식을 받았다. 그러다 눈치 빠른 리키에게 걸리면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지키겠다는 듯 불룩한 주머니를 꼭 감싸고 뒤로 물러났다.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가 불현듯 생각났다. 1900년 초 만주에서 사셨던 할머니와 가족들은 전쟁을 피해 대구로 왔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을 것이다. 술만 마시는 할아버지와 9남매나 둔 억척 같은 할머니는 팔다리가 없는 행세를 하며 밥을 빌어먹어야 했다. 당시성당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밀가루를 나누어 주었다. 할머니에게 이 밀가루는 ‘하느님’이었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신’이었다고 했다. 그 밀가루가 없었다면 가족 중 몇 명은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어린시절 할머니와 성당을 가는 내내 들어야 하는 레파토리였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었다. 물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만 할 뿐 이해하지 못했다. 배부르게 먹던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쟁 이후 가장 가난한 최빈국, 원조가 없이는 살수 없던 나라에서 지금은 도울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케냐의 음팡가노 섬에서 드디어 할머니가 하던 말씀이 온몸으로 이해가 된다. 한끼 배부르도록 먹여주는 신부님이 아이들 눈에는 하나님이고 신이자, 제일 존경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었다. 배고픈 아이들이 신부님이란 꿈을 가지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2주가 지나도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