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리키
연말 방학이 끝나고 개학시즌이 다가왔다. 일요일마다 한번 열리는 장날에는 길 양쪽 가득 학용품들로 넘친다. 가방부터 매트리스까지 없는 물건이 없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노트와 펜 정도만 준비하면 되지만 뭍으로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위해 매트리스도 직접 사가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 가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구먼…. 음팡가노의 학교는 뭍의 학교보다 개학이 빨랐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시작하자 우리도 포리지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커피와 식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뒤 물 두 통과, 큰 냄비와 주걱, 옥수수 포대와 설탕을 가지고 성당 뒤편 공터로 간다. 이곳에서 오솔길을 조금만 걸으면 학교에 닿을 수 있었다.
길상이는 먼저 나뭇가지를 모아 성냥으로 불을 켜 잔가지를 태운다. 케냐의 관광상품 중에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해 부싯돌로 불 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던데 우린 그 마을은 가지 않아도 되겠다 얘기하며 웃음이 났다. 가스 불이 얼마나 편한 도구인지 새삼 깨닫는다.
큰 나무까지 불이 옮겨 붙고 나면 화력이 커진다. 그 위에 큰 솥을 올리고 물을 끓인다. 뙤약볕에서 포리지를 끓이는 일이 어렵지는 않지만 더위와의 싸우는 것은 어렵다. 대체 우리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현타가 오다가도 아이들이 올 때쯤에는 그 생각도 말끔히 사라진다. 나는 창고에 있는 돗자리와 아이들 의자, 식탁을 꺼내 그늘 아래에 놓는다. 해가 더 높아지면 이 그늘도 소용없지만 최대한 그늘에 가깝게 배치한다. 물이 끓으면 설탕 500그램, 옥수수 가루를 듬뿍 넣는 것이 전부지만 포리지는 구수하면서도 달 큰 한 맛이 난다. 모든 자극적인 맛에 단련된 우리 혀에는 그저 밍밍한 미음 정도였지만 아이들은 이 죽을 맛있게도 마신다. 포리지를 끓이는데 한 시간 반, 식히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아이들이 먹었을 때 미지근한 정도로 온도를 맞춰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뜨거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한 번은 우리가 칼국수를 대접하겠다고 삼텐 수도원에서 자주 먹던 뚝바를 끓였다가 성당 식구들이 눈물을 흘리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뜨거운 국물을 어찌어찌 식혀 입안에 넣었는데 심지어 맵기까지 하니 한입을 삼키자마자 손으로 입을 부여잡았다. 정말 약간의 고춧가루였는데… 뜨겁고 매운 음식에 혀가 아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사람들이 속출하자 손길상 요리인생에 가장 큰 고비를 맞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우리가 주방에만 들어가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우리의 행동을 주시했다. 유니스는
“고춧가루는 혀가 아프다, 한국음식은 나를 아프게 했다.”라는 말을 앵무새 같이 매일 했다.
죽을 식히고 나면 10시 반이 된다. 처음 며칠은 선생님 인솔 하에 아이들이 배식 자리로 왔다. 그때는 말도 잘 듣고 제시간에 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은 우리 무숭구들에게 모든 일을 스리슬쩍 일을 넘겼다. 할 일이라고는 밥 주는 일이 다 이기도 하니 못 이기는 척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죽을 식히자마자 나는 학교로 간다. 학교로 가는 길은 즐겁다. 섬 학교의 풍경은 황홀할 정도로 끝내줬다. 운동장 너머로는 검푸른 빅토리아 호수가 펼쳐져 있는데 파릇파릇 풀이 난 운동장의 색과 대비되었다. 하늘과 호수, 우거진 나무들까지 어우러진 그 모습은 크레파스로 진하게 칠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고통이나 배고픔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유토피아라 생각했다. 현실은 아니었지만.. 학교에는 네 살부터 중학생들까지 있었다. 아이들 눈에 이런 풍경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교정을 뛰어다닌다. 매일 보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는지는 나이가 더 들어 뭍으로 나가봐야 깨달을 것이다. 사람들이 어릴 적 살던 고향을 못 잊는 이유처럼 말이다. 학교를 가로질러 걷는 내내 아이들은 쉬지 않고 말을 걸어온다.
“무숭구 무숭구, 하와유”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것도 며칠 겪다 보니 미스코리아 폼으로 손을 흔들며 유유히 유아반까지 직진할 수 있는 뻔뻔함이 생겼다. 아이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포리지를 먹을 생각에 엉덩이를 들썩였다. 학교 수업에서 해방이 되어 뛰는 것인지 죽을 먹는다는 사실이 기쁜 것인지 얌전히 걷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고성을 지르며 뛰는 아이들이 배식하는 장소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전쟁을 치러야 한다. 충분히 식힌 죽이지만 뜨거운 솥을 향해 50명의 흥분한 아이들이 서 있으니 이들을 통제하는데 곤욕을 치른다. 혹시 서로 밀다 넘어지면 큰일이 날 것 같아 선생님께 몇 마디를 배웠다.
“옹게 다우(싸우지 마요), 도그치엥 (뒤로 가요), 옹게디로 (밀지 마요)”
이 세 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 컵을 가득 포리지를 먹고 나서 또 한 번 배식을 한다. 입가와 교복에 걸쭉한 흔적을 묻히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다음 순서는 아이들이 컵을 각자 씻을 수 있도록 빈 통에 물을 담아 놓는다. 그럼 우린 다시 다음 세 가지 말을 한다.
“루 오꼬 키 콤베(컵을 씻어요), 탱키 콤베(컵을 털어요). 학교로 돌아가요 (디에스 쿨)”
천방지축 아이들 덕에 나의 루 오어는 너무나 빨리 늘었다. 마을 사람들과도 대충 간단한 이야기들은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아프리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밥 먹을 때는 조용하던 녀석들이 컵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천방지축으로 변신하다.
“무숭구 무숭구~”
자신들과 다른 생김새를 한 우리를 놀리느라 학교도 돌아가는 건 뒷전이다. 냄비와 컵들을 정리하는 사이 옥수수가루를 한 주먹 훔쳐가는 녀석도 있고 날쌔게 우리 주위를 뛰어다니며 관심을 끌어보려는 아이들까지.. 원래부터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편은 장난도 받아주며 학교로 돌아가게끔 타이르지만 나는 나쁜 역을 맡기로 했다. 이곳 선생님이 가지고 다니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효과는 별로 없다. 아이들을 우리를 어른으로 생각하지 않고 또래 아이들쯤으로 여기는 것일까? 어떤 날은 더위 때문에 이미 짜증이 나 있는데 말까지 안 듣는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이 너무나 눈이 뒤집어지기도 했다. 엉덩이를 실룩이며 우리를 약 올리는 아이들을 보며 억지로 분을 삭여 보려 해도 어림없다. 아직 수행이 부족한 탓이겠지. 그에 반해 남편은
“어린애들이 뭘 알겠어.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야.”
라며 성인군자 같은 말을 한다.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또 분하다. 포리지를 끓이는 날짜가 길어질수록 나는 웃음이 점점 사라졌다. ‘그래, 너희들 배부르면 되었지. 내 말 잘 듣는 게 무슨 대수겠냐’ 싶다가도 ‘저 녀석들이,,,’라며 어금니를 꽉 깨무는 감정의 줄다리기 사이에 놓여있다.
모금이 끝나고 우린 예산을 세웠었다. 신부님이 곡식을 사는데 필요한 돈을 일부 떼어 놓고, 공책과 연필, 의약품도 사기로 했다. 그리고 남는 돈은 성당 뒤편의 건물을 보수하는데 쓰기로 했다. 뙤약볕에 밥을 먹는 게 힘들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밖에서 밥을 먹을 수 없으니 시멘트 벽과 지붕만 있는 건물 내부에 페인트 칠과, 유리창, 바닥 공사를 하기로 한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 이 건물을 완성할 수는 없겠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우린 그 반을 하기로 한다. 만리장성을 쌓는 일도 벽돌 하나가 시작이었으니.
신부님과 예산을 짜고 보니 그럴듯한 계획이 세워진다. 우린 뭍으로 나가 돈을 찾았다. 이렇게 큰돈을 받아 든 신부님은 싱글벙글이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해했다. 제일 먼저 약국에 갔다. 우리가 가진 기본 의약품으로 간단한 치료만 하고 있는데 벌써 약이 다 떨어졌다. 야매 치료이긴 해도 성당에는 비상약들이 더 많이 필요했다. 약국에서 붕대와, 소독제, 연고, 밴드를 두둑이 사 성당 안 응접실에 두었다. 성당은 음 팡가 노 섬안에서 약이 제일 많은 곳일 것이다. 유니스에게도 아이들이 오면 약을 발라 줄 수 있도록 사용법을 알려줬다.
이어서 페인트 집으로 갔다. 젯소와 수성페인트를 사기로 했다. 꽤 큰 강당식의 건물이라 많은 양이 필요했다. 페인트 집 사장에게 면적을 보여주니 견적이 딱 나오는지 제일 큰 젯소 두 통과 수성페인트 여섯 통을 꺼내 줬다. 아이들이 쓸 공간이니 발랄한 연두색과 레몬색을 골랐다. 그리고 벽을 칠판을 만들 수 있는 페인트 2통을 샀다. 신부님은 페인트를 사는 내내 뭔가 못 믿는 눈치를 보낸다.
“정말 페인트 칠 할 수 있겠어요? “
“칠하면 되죠,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그래도,, 사람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페인트 칠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사람 쓰면 돈 들잖아요. 우리가 하면 공짠데. 페인트 칠해본 적 있으니 걱정 말아요”
신부님에게 페인트칠이란 바느질과 같은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따로, 사무직 따로이다 보니 사무직이었던 우리가 왜 페인트칠을 할 줄 아는 것인지 의아했던 모양이다. 인건비가 비싼 국가들은 DIY 문화가 많이 발달해 있다고 설명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오전에는 아이들 배식, 오후에는 페인트 칠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일정이 조금 더 바빠졌다. 우리도 모르게 일 욕심이 점점 늘어났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한국인의 특성일지도.
아침에 배식하기 전 유아반 아이들에게 약간의 학용품을 나눠주기 위해 리키와 같이 학교에 갔다. 일인당 공책 세 권과 연필 두 자루를 주는 것뿐인데 교장선생님까지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국에서 보내온 돈으로 산 선물을 꼭 쥐고 돌아서는 모습이 배식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적 능청 떠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배식 때 이 정도만 말을 들어도 참 좋을 텐데..’ 속으로 생각하고 만다. 말 안 듣는 요주 인물들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아마 선생님에게 뭔가 일러줄까 봐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소심한 복수를 하고 싶지만 그래도 어른의 체면을 지키기로 한다. 아이들이 나의 이 넓은 마음을 알아채야 할 텐데, 그럴 일은 없다. 선생님께는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 편이라고 억지 거짓말을 했다.
우리가 돈을 쓰기 시작하니 사람들도 뭔가 눈치를 챈 모양이다. 우리가 모금한 일은 신부님과 사제들 정도만 알기로 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우리가 피곤해질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좁은 시골에 비밀이 어디 있겠나.
리키는 고등학교 개학을 앞두고 나와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성당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데 할 말이 있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부터 든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리키를 찾았다.
“무슨 할 말이 있어?”
“엘리.. 저 할 말이… 제가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데 고등학교 갈 준비를 다 못했어요.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가방이랑 공책, 매트리스까지 다 사야 하는데 부모님은 사주실 수가 없대요”
“그랬구나.. 내가 신부님한테 여쭤볼게”
“이런 부탁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알아볼 테니 걱정 마”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비를 털어서 사줄까? 그랬다가 온 동네 아이들이 쫓아오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우린 사제 폴을 찾아 상담하기로 한다.
“폴, 리키가 이런 부탁을 했는데,,, 일단 리키 사정이 많이 어렵나요?”
“네, 형편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죠. 신부님한테 그 모금한 돈을 좀 달라고 하면 안 돼요?”
“그런데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매트리스, 가방 이런 건 비쌀 텐데…”
폴과 함께 상점으로 갔다. 불도 안 켜진 나무판자와 양철로 세워진 엉성한 상점에는 가방이 가득 걸려있었다.
“이 가방은 얼마예요?”
“600실링이요”
우리 돈 6000원이었다. 매트리스는 8000원.. 이 돈 때문에 리키는 어렵게 말을 꺼낸 것이었다. 이 정도 금액은 신부님에게 부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이 얘기를 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두를 위해 모은 돈인데 리키를 위해 쓰겠다고 돈을 부탁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키는 아마 더 어려운 마음으로 나에게 부탁을 했을 테니 못 들은 척 그냥 넘기기는 힘들었다.
신부님은 사정을 듣더니 흔쾌히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가서 사지 말 것. 그리고 리키뿐만 아니라 성당에 있는 레녹스와 크리스토프 모두에게 사주는 대신 꼭 필요한 두 가지씩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와 숀은 우리 성당에 온 첫 번째 봉사자예요. 그런데 엘리가 이렇게 하면 다음 봉사자는 더 힘들어질 거예요. 사람들은 더 많은 걸 기대하게 될 거고..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몰라요. 무슨 말인지 알죠?”
우리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몰랐다. 봉사자들로 인해서 섬사람들이 더 의존적으로 바뀐다면 워크 어웨이는 ‘독’이 되는 셈이었다. 신부님과 약속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 부탁부터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다음날 리키를 불렀다. 리키는 미안한지 나를 쳐다보기도 힘들어한다.
“리키, 신부님과 얘기를 했는데…”
“너무 비싸죠. 알아요. 엘리가 못 사줘도 괜찮아요”
마음이 아팠다. 이곳에 지내면 온통 마음 아픈 일 들이다. 리키도 그렇고, 고환이 터지도록 참은 아이도, 다 찢어진 바지 사이로 엉덩이를 내밀고 다니는 아이들도 우리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그게 아니라 사주기로 했어. 걱정 마. 대신 필요한 물건 두 가지를 말해주면 폴과 우리가 시장에서 사 올게. 어때?”
“좋아요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활짝 웃는다.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길 기다리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나 조차도 답을 주는 내내 속이 찌릿찌릿하면서도 울렁거렸다. 리키는 똑똑하고 착한 아이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일조차도 쉽지 않다. 교육조차도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니,,, 세상은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다. 또 다른 어떤 곳에서는 먹을 것, 마실 것, 잠잘 곳이 없어 절망에 빠진 아이들이 가득할 것이다. 모르고 있던 사실도 아닌데 티브이나 글로만 보다가 현실세계에서 실제 마주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이 든다.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리키는 가방과 매트리스, 레녹스는 가방과 공학 계산기를, 크리스토프는 공학 계산기만 골랐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이들에게 고등학교 진학 선물로 공책을 사주기로 했다. 이 정도만 있어도 아이들은 학교 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폴과 함께 시장에서 물건들을 다 사고 노트를 한참 고르고 있는데 장을 보러 나온 유니스를 딱 만났다.
“우리 아들은 왜 안 사주는 거야? 이번에 리키랑 같이 고등학교를 가는데,,,, 아직 노트를 못 샀어. 우리 아들 것도 사주면 안 될까?”
유니스의 부탁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노트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져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책 다섯 권 씩을 샀다. 리키, 레녹스, 크리스토프, 엘비스(유니스의 아들)까지 20권이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다음부터는 돈과 관련된 부탁은 모두를 위해서 단호하게 거절하기로 남편과 약속했다. 우리가 뿌듯함을 느끼려고 마을 사람들을 망치는 일을 더 이상 하면 안 된다 생각했다.
입학 날짜가 다가왔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다 뭍으로 나갔는데 리키와 레녹스는 아직이다. 둘에겐 입학용품을 사줬으니 더 일을 해야 한다는 신부님의 지시 때문이었다. ‘기브 앤 테이크’ 공짜는 없었다. 신부님은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이었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아이들에게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둘은 빨리 학교가 가고 싶다 노래를 불렀지만 신부님의 지시에 불만은 없어 보였다. 둘의 늦은 등교 덕분에 며칠 더 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오전에는 리키와 포리지를 만들고 오후에는 레녹스까지 합세해 같이 페인트 칠을 했다.
페인트 붓을 처음 받아 든 둘은 작업이 꽤 재미있는지 옷과 얼굴에 흰 페인트가 다 튀도록 열심히 일했다. 서투르던 붓질도 조금만 가르쳐 주니 금방 능숙해져 꼼꼼히 바른다. 조용한 공간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두세 시간씩 작업을 하고 나면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는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작업을 빨리 끝내야 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하다. 일이 끝나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물탱크의 물이 너무 자주 떨어졌다. 어차피 호수 물을 길어다 물탱크에 채우는 것이지만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편리한 일이다. 물이 떨어진 날은 오후 작업이 끝나자마자 때수건을 들고 리키, 레녹스와 함께 빅토리아 호수로 갔다. 간단한 옷만 입은 채 때수건으로 온몸에 튄 페인트를 벗겨낸 다음 호수로 뛰어든다. 이제 강에서 샤워하는 것이 욕실보다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담그고 나면 한껏 올랐던 열이 빅토리아 호수로 모두 스스륵 빠져나갔다. 길상이는 리키와 레녹스도 때수건으로 대충 비누칠을 해 주었다. 때수건이 따가울 법도 한데 잘 참고 몸을 맡긴다. 세신이 끝나면 호수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고 논다. 늘 의젓한 녀석들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10대 아이같이 느껴진다.
둘의 연장된 성당 생활이 끝나는 날이 왔다. 내일이면 학교를 간다고 설레어한다. 학교를 가는 게 그렇게도 좋을까. 난 한 번도 학교에 간다고 설레어 한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학원도 과외도 없는 이곳에서는 배움을 주는 곳에 간다는 것은 청소년 기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처럼 보였다.
다음날 아침 선착장으로 나가 리키를 배웅해 주기로 한다. 아버지와 함께 양손 가득 짐을 가지고 나타난 리키는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는 먼산만 두리번거린다. 리키 아버지는 우리 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워요, 매트리스와 가방도요”
라며 눈물을 닦는다.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과 거친 손에서 그가 녹록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리키는 아버지에게 우리 이야기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리키는 수호천사였다. 장을 보고 방앗간에 가서 옥수수를 빻고, 페인트를 칠하는 일까지 모두 리키가 함께였다. 음 팡가 노 섬에서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누구보다 많은 도움을 준 아이였다. 우리가 돌봐준 게 아니라 녀석이 우리를 돌봐 준 건데.. 리키 아버지에게 민망함에 손사래를 쳤다. 리키는 여전히 멀찍이 떨어져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땅만 본다. 벌써 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호수 멀리 보이던 배는 어느덧 선착장까지 들어왔다. 이별은 매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고역인 날은 드물었다. 리키가 방학 때 섬으로 돌아오더라도 우린 이미 떠나고 없을 것이다. 서로 그것을 잘 알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또 보자는 공허한 말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웃으면서 잘 가라 인사하고 싶었는데.. 눈이 퉁퉁부은 리키를 뒤로하고 나도 눈물을 참지 못한다. 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더 이상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