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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22. 2022

봉사가 무엇이죠?_EP7

섬과 안녕해야 할 때

한 번은 신부님의 외부 미사에 초대되었다. 초대인 줄 만 알았다.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갈 기회가 생겨 좋았다.  모세와 폴도 함께 동행했는데 웬일인지 큰 배가 아닌 통통배를 빌려 탔다.

“우린 우간다로 갈 거예요.”

여권도 챙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간다를 간다는 것인지 황당했다. 

“제가 삼국 비자를 받긴 했는데, 여권을 놓고 왔어요. 다시 집으로 가서 여권을 들고 와야 돼요”

“밀항이니까 괜찮아요.”

셋은 우리가 당황한 표정에 웃음이 터졌지만 긴 말은 하지 않았다. 통통배의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함께 두 시간을 달렸다. 잔잔한 호수라 멀미도 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눈앞에 나타난 곳은 섬인지 양철로 만든 인공 기지 같은 곳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은색으로 빛이 났다. 해변에 빼곡히 정박한 배들 사이를 통과했다. 렘바섬에 도착했다.

케냐와 우간다의 국경에 위치하는 섬은 국경 분쟁지역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맞이해준 여자들은 케냐 여자들보다 더 크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옷차림 만으로도 우간다에서 온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빈민촌이었다. 우간다와 케냐에서 생계가 곤란한 이들이 이 섬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온다 했다. 남자들은 힘든 뱃 일 탓 인지 힘들일에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술에 취한 무리들이 많이 보였다. 음팡가노에서는 볼 수 없던 술과 담배들이 작은 구멍가게마다 넘치도록 진열되어있었다. 모세는 골목을 다닐 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섞지 않도록 조심하라 일렀다. 괜한 싸움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부님은 볼일을 보러 가고 사제들과 우리는 섬을 좀 더 구경하기로 했다. 모세는 아이들에게 섬을 구경시켜주면 사탕 하나씩을 사주겠다 약속했다. 우리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아이들은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상점이 늘어선 골목, 학교 운동장과 물고기가 들어오는 곳을 보여주었다. 조금만 큰 공터가 있으면 여자들이 빅토리아 호수에서 잡은 생선들을 훈연하고 있었다. 생선 무더기가 곳곳에 있었는데 마치 인도의 화장터를 보는 것 같았다. 큰 연기가 끊임없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손바닥 만한 섬에 인구밀도가 얼마나 높은 지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삼십 분이 채 안되어 섬을 한 바퀴 다 돌아봤다. 아이들은 이제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기대하며 슈퍼로 안내했다. 


신부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작은 가정집이 었는데, 곧 우간다로 돌아갈 한 여자가 이곳의 재산을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여자가 기부한 집은 성당으로 개조할 예정이었다. 초등학교 옆에 자리한 그녀의 집은 다른 사람들의 집에 비해 넓은 편에 속했다. 이 섬에 정착해 꽤 돈을 번 모양이었다. 준비해준 물로 손을 씻고 대접해주는 음식을 먹었다. 

“닝 구언, 기워이, 기추이, 메타카티포 아멘”(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신부님과 함께 기도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하루에 몇 번씩 듣는 말들은 거의 다 외워버렸다.

신부님은 이 섬이 어땠는지 소감을 물었다.

“좁고,, 남자들이 좀 무서웠어요. 술 취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엘리와 숀이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있겠어요? “

무슨 날벼락인가. 이 답답한 섬에서는 하루도 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전 음팡가노 섬이 더 좋아요. 이곳에서 봉사하고 싶지는 않아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신부님의 마당 있는 넓은 집에 유니스와 함께 매일 아이들 밥을 챙겨주면서 안전하게 지내고 싶었다.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든 양철 섬에서 지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신부님은 한번 물어본 것뿐이라며 말을 돌렸다. 다음 워크 어웨이 봉사자는 이곳에서 모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봉사는 딱 지금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다. 적당히 힘들면서 내 만족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성당에서의 봉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린 이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워크 어웨이의 종료는 눈앞으로 다가왔다. 



채소와 잡동사니를 파는 이 섬의 유일한 시장 골목으로 나서면 동네의 절반은 우리를 알아봤다. 당연히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진 못했지만 매일 똑같은 안부를 묻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줬다. 매번 다음에 가겠다고 얼버무려 답했는데 그렇게 약속한 집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아이들은 상처가 나면 이제 으레 약을 바르러 우리를 찾아왔고 신부님은 우리에게 집을 맡겨놓고 며칠씩이나 외부 미사를 다녔다. 그가 없어도 우리에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할 곳이 있으니 일상은 자연스럽게 흘렀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기에 계속 살 사람처럼 하루가 자연스러웠다. 40일이 넘게 이곳에 머무르다 보니 이제는 어떻게 다시 여행을 해야 할지가 막막해진다. 이틀에 한 번은 잠잘 곳을 찾아야 하고, 매일 뭘 먹어야 하는지 식당을 찾고 가야 할 곳 리스트를 짜야한다. 머리가 아프다.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애정은 시간에 비례하다 보니 함께 보낸 시간이 길수록 헤어짐에 마음 아플 일이 남았다. 케빈에게 한번 더 우리가 떠날 날짜를 얘기했다. 그는 이번에도 우리가 떠날 날짜를 미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 코앞까지 다가온 날짜에도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마지막 주일 미사를 보고 다음 수요일에 정리를 끝낸 뒤 꼭 육지로 나갈 것이라 결심했다. 


성당의 미사는 매번 같았다. 지루한 섬에서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미사는 사람들이 제일 기다리는 활력소 같은 행사였다.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집에서 준비해온 계란이나 빵, 염소, 닭, 생수를 제단에 바쳤다. 처음에는 기이하고 신기하던 광경에서 이제는 ‘오늘은 어떤 물건이 많이 들어올까?’로 보였다. 어차피 사람들이 다 나눠가질 물품이었지만 생수와 콜라는 성당에서 소비하는 물건이었다. 사람들은 무숭구들을 위해 더 많은 생수를 보내는 것 같았다.  2시간이나 계속되는 미사에 엉덩이가 근질근질했지만 마지막 미사이니만큼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엘리, 숀 얼른 나와서 인사해요.”

미사의 막바지, 신부님의 부름과 함께 사람들은 성당이 떠나가라 박수를 치며 우리를 쳐다본다. 첫인사를 했던 것처럼 작별인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마이크를 쥐고 모두를 바라보고 섰다. 이제 아는 얼굴이 많았다. 사람들은 모두 숨죽이며 우리를 지켜봤다.

“안녕하세요. 엘리, 숀이에요.”

무슨 인연으로 빅토리아 호수까지 들어와 섬마을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40일을 넘게 보낸 것인지.. 그동안의 모든 사건들이 머릿속에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는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이 무슨 감정인지,,, 속에서 받쳐 오르는 뜨거운 공기를 다시 아래로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울음을 겨우 멈추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오마베르. 음팡가노 섬에서 행복하고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어요. 포리지를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는 단순한 삶이었지만 늘 당신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다 생각할 수 있었어요. 오늘 우리는 안녕이라 말해야 하지만 언젠가 다시 이곳을 올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고마워요." 

겨우 할 말을 마친다. 신부님은 눈물범벅이 된 나와 길상이를 꼭 안아준다. 눈물을 더 참기 힘들다. 이곳을 덤덤하게 떠나고 싶었다. 쿨하게 인사하고 웃으며 떠나고 싶었는데, 리키를 쿨하게 보내지 못한 것처럼 마지막 인사 역시 울음바다가 되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사람들은 우리 손을 한 번씩 잡고는 눈물을 훔친다. 할머니들은 길상이 손을 잡으며 많이 우셨고 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아쉬워했다. 서로 팬 층이 달랐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이별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여전히 머리카락을 만지고 팔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의 우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오히려 이 편이 나았다. 

끌려온 염소도 있다



떠나기 전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먼저 유니스에게 새로운 머리를 선물했다. 이곳 여자들에게 미용실에서 붙이는 가짜 머리는 삶의 큰 낙이자 사치다. 유니스는 5000원 남짓하는 미용비용을 모으기 위해 한 달 넘게 돈을 모으고 있었다.

“유니스, 내일 나랑 같이 미용실에 가요. 내가 유니스가 하고 싶은 머리 해 줄게요.”

“사와사와!!!” (OKAY, OKAY)

 그녀는 신이 나서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부른다.

다음날 우리는 미용실에 들러 ‘오바마’ 스타일의 머리를 했다. 왜 오바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용실의 포스터에는 전부 비슷해 보이는 스타일에도 각각의 다른 이름을 붙여 놓았다. 나도 미용실에 간 김에 가발을 붙이고 머리를 땋기로 한다. 원장님은 태어나서 이렇게 미끄러운 머리는 처음 만져본다 했다. 아이처럼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는 내 머리를 깨알만큼 조금씩 나누어 빠른 속도로 땋았다. 가발을 조금씩 섞어가며 긴 머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완성된 모습에 동네 사람들은 나의 땋은 머리가 이전보다 훨씬 잘 어울린다 했다. 이제야 진짜 음팡가노 사람이 되었다고 칭찬을 했지만 복싱을 해야 할 것 같은 나의 외모가 우습기만 했다. 


그 모습으로 슈퍼에 들러 사탕을 모조리 샀다. 한 달 꼬박 우리의 포리지를 먹어준 아이들에게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에게 말씀드리니 흔쾌히 교실로 초대해 줬다. 선생님은 꼬맹이들에게 우리가 떠나는 것에 대해 최대한 설명하려 했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내 손에 든 사탕에만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어 ‘그래 이 녀석들, 너희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있는 사탕을 나눠주니 그제야 아이들은 환하게 웃고는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노래를 하나 선물해 줬다. 역시나 사탕 때문에 기분이 좋다. 내일부터 우리가 안 보인다고 울지는 않을지 걱정이 조금 되지만, 우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강당의 페인트는 어쨌든 다 마무리가 되었다. 아직은 창문에 유리도 없고, 바닥공사도 해야 하지만 우리 다음으로 오는 봉사자가 할 몫을 남겨놓았다 생각했다. 

이제 짐을 싸고 이불빨래만 하면 모든 정리가 다 되는 것 같았다. 마침 유니스는 신부님 방의 시트도 빨아야 한다 했다. 이참에 그녀와 나는 모든 방의 시트와 어마어마한 양의 빨래를 들고 호수로 가기로 했다. 여자들만 쓰는 빨래 터는 공중목욕탕이기도 하니 아쉽게도 남편은 이 많은 일을 하나도 도울 수가 없었다. 다목적의 은밀한 공간이지만 완전히 개방된 호숫가에 있어 누가 볼까 불안했다. 하지만 10살이 지난 남자아이들부터 이곳에 오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쓱쓱 비누칠을 해 문지른 빨래들은 넓디넓은 빅토리아 호수에다 펼쳐 담그면 속이 다 시원할 정도다. 한참을 땀 흘려가며 빨래를 하고 난 뒤 유니스와 벌거벗고 몸을 씻기 시작했다. 유니스는 마흔이 넘은 나이인데도 흑인 특유의 탄력 때문인지 몸 선이 정말 아름답다. 까만 피부과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 아이가 다섯인지라 가슴은 말라버렸는대도 말이다. 유니스도 내 몸을 구경하며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까르르 웃었다. 하지만 아마 내가 유니스를 구경하는 재미가 더 클 것 같았다. 

나는 아프리카 땅에 와보기 전에는 흑인들이 밝은 색 옷을 입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카렌 블릭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책에 나오는 대목이 있다. 작가는 한 흑인 아이가 하고 있는 팔찌가 너무 예뻐 보여 그것을 본인 손목에 헀더니 그 팔찌의 아름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이제 그 뜻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사람들의 피부와 몸, 초원, 꽃들을 보니 이곳 사람들만큼 밝고 화려한 색이 꼭 맞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검은 피부에 걸친 화려한 색깔들은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다. 똑같은 것이지만 나에게 오는 순간 희한하게도 그 빛이 없어진다. 검은 피부는 무엇이든 빛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 되는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모든 정리가 끝이 났다.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간다. 우리를 배웅하러 온 유니스와, 무라트, 성당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작별인사는 오래 할수록 발을 떼기 힘들다.  배웅을 받으며 성당과 멀어졌다. 이미 너무 눈물을 다 빼버려서 더 울 것도 없었다. 푸르른 호수의 풍경을 다시 한번 찬찬히 본다. 매일 슈퍼를 가기 위해 지나던 길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풍경인데 새삼 더 아름답다. 이번 워크어웨이 어느 때보다도 최선을 다했다. 긴 시간 마음을 쏟아서인지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다시 음팡가노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케냐에 다시 온다면 우리는 사파리나 트레킹이 아니라 꼭 이 집으로 돌아올 것 같다. 이 마을로 돌아와서 훌쩍 큰 아이들을 만나러 올 것 같다. 우리를 기억하진 못한다 해도.

배에 올라 마을 사람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배는 뭍을 향해 빠르게 달렸고 우린 또다시 여행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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