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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26. 2022

강사, 아무나 하나_EP2

BE WAVE

막상 강사 자격증은 따긴 했는데... 다합을 떠나려 하니 대체 이 기술은 언제 어디서 써먹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또 다른 한 가지 고민은 물가가 싸기로 유명한 이집트에서 갑작스러운 강사과정으로 이곳에서 계획한 예산을 이미 훌쩍 넘겼다는 것이다. 

“길상아. 네가 쓴 만큼 채워 넣는 게 어떨까?”


남편은 흔쾌히 다합에서 강사생활을 하겠다고 했다. 아마 길상이는 이곳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다합은 여유로우면서도 심심한 곳이었지만 길상이에겐 평생을 살고 싶은 곳이었다. 남편은 범수 오빠와 한 팀이 되어 창업을 결심했다. 머리를 맞대고 멋져 보이는 이름까지 하나 지었다. “BE WAVE”

내가 할 일이라곤 없었다. 얼른 돈을 벌어오라는 채찍질을 매일 같이 해 댔다. 통장잔고가 떨어진 것을 보고 있자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김치를 담그겠다 매일 같이 사던 식자재 비용과 간식 비용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초보강사에게 프리다이빙을 배울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하루씩 머물렀던 부부들이 길상이와 범수 오빠가 다이빙 강사가 되었다는 소식에 다이빙 배우겠다고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씨앗을 조금씩 뿌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초보 강사 었지만 수강생들이 늘기 시작했다. 초심자의 열정인지 범수 오빠와 길상이는 비록 '초짜'강사였지만 그 대신 열정은 누구보다 대단해 보였다. 세시 부부의 부인인 지희 씨와 전단지를 만들어 다합 길목 곳곳에 붙였다. “물공포 대환영”이라는 짤막한 광고를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설치했다. 물론 그걸 보고 문의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거리를 지날 때마다 보이는 광고판에 뿌듯했다. 세시 부부와 우리는 사업 파트너이자 동네 주민으로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길상이의 첫 학생은 에디션 부부였다. 이 둘은 물공포 그 자체인 부부였다. 정강이를 찰랑대는 물결에도 사색이 되어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얕은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오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물과 먼저 익숙해 지기 위에 나는 틈만 나면 에디션과 물놀이를 했다. 발목이 찰랑거리는 얕은 곳에서 시작해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점점 수심을 늘려갔다. 에디션은 몇일만에 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시퍼런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 모습은 걸음마를 뗀 내 새끼를 보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물공포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갑작스러운 패닉 상태에 빠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순간의 안정만 찾으면 다시 헤엄을 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배우는 속도는 저마다 달랐다. 첫 입수 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 입수 때 얼굴을 넣기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간단한 일이 왜 어렵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몇 번, 몇십 번 하고 나면 16미터 까진 아니라도 몸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내심 ‘저 사람은 정말 안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수강생들이 다합을 떠날 때쯤에는 모두 하나같이 인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리발 하나만 있으면 산호 벽을 따라, 정어리들 속을 유영했다. 인간이 물고기에서 진화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매일 수영하던 다합의 라이트하우스 앞

말주변이 없는 길상이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자신이 없어했다.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서 늘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남편의 이런 모습을 초등학교 때부터 보아왔다. 전학 간 학교에서 길상이를 처음 만난 날에도. 시골에서 함께 자라며 본 길상이는 매우 사랑스러운 편임에도 본인이 사랑스러운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소심하게 작은 목소리도, 조심스러운 행동도 사랑스러웠다. 착하기만 한 남편은 짓궂은 남학생들의 타깃이었다. 덩치 큰 아이들의 놀림에 남편은 늘 울음을 터트렸다. 작은 몸집이 조금씩 커지면서 괴롭힘은 줄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본인의 사랑스러움은 모른 채 살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만난 길상이는 나보다 키도 커졌고 조심스러운 말과 행동은 매너가 있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여행 시작 전 나는 길상이에게 물었다.

“여행하면서 좀 바꾸고 싶은 게 있어? “

“소심한 거, 겁이 많은 거, 자신이 없는,, 그런 모습? “

아쉽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모습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 자체가 길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을 사랑한 것이었고. 하지만 조금 바뀐 것이 있다면 본인의 사랑스러움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은 길상이의 소심하지만 진실된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그 모습 그대로 프리다이빙을 가르치고 있었다. 본인이 즐거워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남편은 매일 행복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행 중에 본 길상이의 가장 행복한 모습은 다합에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창업을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그 뒤로 내가 절인 배추가 보인다

중국어 전단지 덕분인지 대만인 한 명과 중국인 한 명에게 강습 의뢰를 받았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남편이 설명하는 말을 통역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중국어라면 자신이 있는 나지만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신체 용어나 호흡 방법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루 전 충분히 연습했다고 생각한 중국어는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말보다는 몸으로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다. '언어'의 기능이 의사소통이니 '통'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지만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는 프리다이빙이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신경을 더 쓰고 고민을 할수록 길상이는 점점 강사답게 변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중간중간 간섭이 하고 싶어 입이 옴짝달싹 했지만 그 대신 내 하루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다합은 놀거리가 많다. 수영,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배를 타고 멀리 나가기도 한다. 샴엘셰이크로 가서 다이빙을 하기도 한다. 뭐든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은 공기통을 매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기어코 그걸 봐야 한다. 깊은 바다에 어떤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지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길상이는 어쨌든 강사라는 번듯한 직업이 있었지만 나는 그야말로 백수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이곳저곳 스쿠버다이빙을 다니거나, 사람들과 모여 김치나 술을 담그거나, 해변에 앉아 우쿨렐레를 치는 일, 책을 읽는 한량의 생활이었다. 그 생활이 몇 달간 이어지게 되면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 흐름을 완전히 있고 시간 위에 떠 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의무라고는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집세를 내는 일과 꼬박꼬박 전기를 충전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점점 쌀쌀해 지려하는 날씨를 느끼고 있었다. 물이 조금 차가워졌다는 것은 비자가 만료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루는 학생들과 함께 블루홀을 찾았다. 다합의 랜드마크 블루홀. 

깊이 100미터의 싱크홀은 바다로 멀리 나갈 필요조차 없다. 몇 발을 걸어 나가면 바로 깊고 푸른 구덩이가 발아래로 펼쳐졌다. 이곳을 감싸는 벽은 온갖 산호들과 물고기들로 정신이 어지러웠다. 쇼핑몰에 진열된 티브이에 선명한 색깔의 물고기 떼를 틀어주는 것 같았다. 아래가 보이지 않는 심해는 우주를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큰 호흡을 한번 하고 상체를 꺾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크고 깊은 파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조차 아찔하고 겁이 났었는데 이젠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길상이는 롱핀을 발에 끼고 멋지게 수면을 가르고 바닷속을 고래처럼 헤엄쳤다.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말이다. 

범수 오빠와 길상이는 모든 학생들을 졸업(?)시키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9월이 넘어가자 다합의 날씨는 완전히 바뀌었다. 한 달 이변 되겠지라고 생각한 곳에서 5개월을 보내버렸다. 집주인은 매월 한 달씩, 한 달씩 떠날 날을 미루며 집세는 내는 세입자를 환영했다. 비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합에서 나갈 출구를 못 찾을 지경이었다. 우린 철새들처럼 또 따듯한 곳을 찾아 날아야 한다. 추운 곳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니 자연스레 짐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 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여름을 찾아 따듯한 곳, 더운 곳으로 가야만 몸이 편했다.

몇 개월을 살았다고 부엌살림은 많이 늘어났다. 그중에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은 거의 없었다. 해변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던 우리 집도 이제 비워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다시 여행자가 된다는 일은 두려웠다. 다합 같은 천국을 두고 또 먼지 속을 헤매려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숙소는 또 어떻게 예약을 해야 한담. 매일매일 귀찮은 일들을 또다시 해야 하다니... 우리는 여행이 힘들 때 다시 이곳을 찾기로 했다. 혹은 살다가 삶이 힘들 때도. 다합만큼 완전한 자유를 주는 곳은 정말 드물다. 자연과 인간뿐인 곳에 카펫 하나를 깔고 누워있을 뿐이랄까. 


집안을 샅샅이 정리한다. 빠진 물건이 없나 보지만 결국 모두 빠뜨려야 떠날 수 있었다. 우리는 다이빙용 마스크와 숏핀을 챙겼다. 물만 있는 곳이면 다이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이것만큼 중요한 물건도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천국의 생활, 다합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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