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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26. 2022

시위대 속으로_EP2

확인차 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뉴스를 켰다. 채널이 1000개쯤은 나왔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아랍 여자들을 위해 인근 각국의 채널을 다 볼 수 있었다. 시리아부터 북 아프리아, 한국의 KBS까지 있다.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TV 뿐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세상은 지금처럼 변했는데 아직까지고 1500년 전 관습을 따르라 하는 이슬람 종교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어렵게 찾는 CNN채널에서는 시위대들이 타이어를 태우는 자극적인 장면을 내보냈다. 베이루트의 광화문 광장 격인 무함마드 알 아민 모스크 앞에서 사람들은 흥분한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시위대의 인파들이 건물의 유리창을 깨부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은 모두 한껏 격양되어 있었다. 우리 호텔은 베이루트와는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여서인지 동네가 시끄럽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고요한 그 정적으로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온 날부터 손님이라고는 딱 한 팀 밖에 없었는데 이런 불안한 정세 때문에 그런 것이라 짐작했다. 한국의 인터넷 뉴스와 CNN의 뉴스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무슨 일인지 파악을 해야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세금 때문이었다. 메신저 이용으로 통신비 사용이 줄어들어 국영통신사의 이윤이 줄어들었으니 whatsapp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불합리 한 세금이긴 해도 사람들의 분노는 예전부터 차근차근 쌓여왔고 이 세금은 도화선일 뿐이었다. 터지기 시작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레바논은 1932년 이후로 인구조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중동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의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이지만 이는 오히려 민감한 문제가 되어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러 종교를 가진 인구가 지역별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숫자는 파악이 안 된다. 정치 역시 독특하다. 1943부터 마론파 기독교의 정당에서 대통령을 뽑고, 총리는 수니파 이슬람 정당에서 뽑고 있다. 국회의 의석수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정확히 반반씩을 차치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니 정치를 잘하던 못하던 국민들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바뀌지 않는 이 체제는 이미 자정작용을 잃었다. 심지어 종교와 정치인들이 함께 부패하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균형’이라는 핑계로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욕심만 채우기 바빴던 것이다. 그 와중에 국영 통신 기업의 수익이 줄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라니 국민들이 당연히 화날 수밖에! 중동의 파리라 불리던 베이루트는 예전부터 중동으로 물자가 들어오는 출입문 역할을 한 곳이다. 개방되어 있는 교역국인 만큼 해외투자도 많이 받으며 부유한 나라였다. 하지만 내전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나라의 혼란은 더해졌고 해외투자는 빠져나가니 경제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높은 물가와 실업률, 거기에 시리아 난민 문제까지 떠안고 있는 국민들에게 세금까지 더 내라고 하는 것은 겨우 울음을 참고 있는 아이에게 때리는 최후의 뺨 한대와 같았다. 시민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첫 주말을 맞이했다. 새로운 봉사자, 스페인에서 줄리아가 왔다. 본인은 까탈루냐인으로 불리길 원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독립시위가 한창이었는데 그녀는 레바논에 오기 전날까지도 카탈루냐의 독립 시위에 참여하다 왔다고 했다.

“어딜 가나 시위네요! 난 찬성입니다!”

차 안에서 만났던 스페인 아저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줄리아는 천하태평이다. 

한솥밥을 먹는 봉사자가 한 명 더 왔으니 히샴은 우리를 시위대의 중심인 광장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시위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불안해하는 한국인 봉사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사건의 전말을 대충 알았으니 레바논에 더 머물러도 될지 직접 확인해 봐야 했다. 우리는 지금 위험에 처한 것일까? 

히샴은 시위에 열성적인 편이었다. 호텔에서는 거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시위로 장사가 되지 않아서인지, 시위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장사를 안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과묵함과 동시에 항상 말을 붙이기가 어려운 심각한 표정으로 때문에 그와 사소한 날씨 얘기를 하려다가도 그의 얼굴을 보면 입을 닫게 된다. 그래서 일 얘기 외에는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넷이서 택시를 불러 베이루트로 간다. 히샴의 표정이 비장하다. 가는 길목마다 타다만 타이어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검은 연기의 주범은 바로 이 타이어였다. 차 한 대 없는 도로 위가 타다 만 타이어와 바리케이드로 어질러진 모습에 살짝 겁이 났다. 택시는 몇 번이나 방향을 돌려 큰길이 아닌 골목길을 지나 겨우 광장 근처에 도착했다. 


광장의 입구가 가까워질수록 확성기 소리와 음악소리, 사람들의 함성으로 월드컵 축제라도 열린 것 같았다. 상황을 몰랐다면 우리는 아마 축제기간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비좁은 사람들 틈에서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 히샴과 줄리아 뒤를 쫓아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각자 주변을 구경하다 다시 만나기로 한다.

“5시에 저기 던킨 도넛에서 만납시다. 조심해요.”

이 말과 동시에 히샴과 줄리아는 사람들 틈 사이로 썰물처럼 쓸려 없어진다. 순식간이었다. 내 뒤에 길상이가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시위대 틈에서 길상이와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출근길 지하철 2호선보다도 더 많은 인파였다. 몇 년 전 광화문의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나는 남편과 사람들이 적은 쪽으로 이동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약간 높은 담 위에 올라가 주변을 내려다보니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보였다. 푸른 지붕의 모스크 주변으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시위에 목숨을 건 부류였다. 그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그 뒤편으로는 시샤를 피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 북과 기타를 치며 흥을 돋우는 사람 등등 한국에서 종종 일어났던 시위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CNN 뉴스에서 내보낸 과격한 장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군인 몇몇이 눈에 띄었지만 사위를 통제하기보다는 정부청사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것이 다였다. 정작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여자들의 화장과 옷차림이었다. 달라붙은 가죽 레깅스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한 미녀들이 몸매 자랑을 하듯 국기로 몸을 치장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어린 여학생들의 피켓도 재치 있었다.

“내일 역사시험을 치느니 오늘 역사를 만들겠다!” 

즐거운 표정으로 행진하는 사람들을 보니 활력이 느껴졌다. 근처 슈퍼와 빵집은 불이 났다. 다들 간단한 피자나 스낵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줄을 섰다. 옥수수를 파는 행상도 오늘만큼은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우리도 잘 썰어진 옥수수 한 컵을 산 다음 급하게 배를 채운다. 광장은 혼란 그 자체였지만 잠시 지나가는 여행자에게는 좋은 구경일 뿐이었다. 

광장 한편에는 뼈대만 남은 텅 빈 건물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흉물스럽게 변한 곳은 뷰포인트라도 되는지 사람들은 그곳에 올라가 시위를 지켜봤다. 내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전쟁을 겪은 나라인 만큼 이 광장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레바논은 서로 다른 종교 때문에 15년이나 싸우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편을 가르는 대신 정부를 향해 함께 싸우니 이런 갈등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값진 일이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인들을 위한 정부에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우린 던킨 도넛 앞 풀밭에 앉았다. 시위에 지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했다.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 틈에 끼여 레바논에 예정대로 머무르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몇 시간 지나자 히샴과 줄리아가 나타났다. 

“시위는 어땠어요?”

“평화롭던데요? 생각한 것만큼 위험한 시위 현장은 아닌 것 같아요.”

“밤은 좀 다를걸요?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호텔로 갑시다.” 

시위대를 빠져나오는 길에 보니 통신사 건물의 유리와 정부 건물들의 입구는 처참하게 난도질되어 있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성난 시민들은 밤에 주로 움직인다.  줄리아 역시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시위대가 과격하지 않았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이 정도는 약과라며 코웃음을 쳤다. 카탈루냐의 시위는 더 격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녹초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쓸려 다녔더니 기운이 더 빠진다. 히샴은 우리를 데려다주고는 다시 시위 현장으로 향했다. 호텔에 손님도 전혀 없으니 봉사자와 직원들 모두 한가했지만 주인 혼자 시위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줄리아는 사진 와 마케팅 매니저로 이곳에 왔다. 워크 어웨이에는 이런 재능을 필요로 하는 호스트들이 많았다. 온라인이 발달할수록 포토그래퍼와 마케팅 전문가는 어디에서나 환영받았다. 그녀는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학생이라고 했는데

“스페인에 나 같은 사람은 너무 많아!! 그래서 다 실업자야.” 

라며 자조적인 쓴웃음을 지었다. 관광 대국인만큼 관광업과 관련된 이 같은 전공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숙소의 모든 방을 세팅하고 사진을 찍은 다음 포토샵으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오전 내내 땀 흘려 일하는 우리와 달리 줄리아의 일은 화이트칼라의 일이라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다림질이 꽤 적성에 맞았다. 뽀송해진 시트를 접어 서랍에 정리할 때의 성취감은 쌓인 시트의 높이만큼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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