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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26. 2022

'산다는 것'과 '여행'_EP3

나는 어떤 곳에 살고 싶은가

이상한 일은 며칠째 손님은 하나도 없었지만 봉사자는 한 명 더 왔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온 세드릭은 기타 선생님이었다. 시리아 난민들에게 음악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타를 가르치기도 하고,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다. 가끔은 콘서트의 음향 엔지니어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짐은 우리 중 가장 단출했다. 티셔츠 몇 개와 작은 태블릿, 여권과 지갑, 기타 하나가 끝이다. 그는 이곳에 연주자로 왔다고 했다.

“연주자?”

“난 피아노, 기타,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알아.”

“그런데 이곳에는 손님도 없고, 호텔에는 거의 우리들만 있어.”

“그럼 너희들을 위해 연주하면 되겠네.”

세드릭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듯 얘기했다. 히샴의 계획은 도통 알 수 없었다. 몇 일째 시위대 일로 그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었다. 히샴이 있건 말건 세드릭은 시간이 날 때마다 로비에서 피아노를 쳤다. 그는 그 일을 즐거워했다. 덕분에 호텔 직원들과 우리는 손님들의 요란한 소리 대신 멋진 피아노 선율과 기타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호사를 누렸다. 어차피 손님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덕에 나의 일감과 길상이의 청소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손님이 있어야 일거리가 늘 텐데 이곳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라고는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봉사자들 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면 무료해졌다. 매일 계속되는 시위 덕에 교외로 나가기도 힘들었다. 우리 넷은 로비에 모여 늘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근처의 까르푸와 치킨집에서 하는 외식이 다였다. 그러던 와중 세드릭은 내가 가지고 다니는 우쿨렐레를 보더니 한 곡 연주해 보라 등을 떠민다. 이 무료함을 달랠 방법은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네팔에서 처음으로 우쿨렐레를 샀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진 않지만 악보 정도는 볼 줄 알았고 우쿨렐레만큼 핸디 한 악가도 드물었다. 할 일이 없는 저녁이면 블로그에 일기를 한편 쓴 다음 우쿨렐레를 연습했다. 매일 이 똑같은 일상이 이어지니 연주 실력이 점점 늘었다. 나는 남편을 제외하고는 남들 앞에서 우쿨렐레를 거의 치지 않는다. 혼자서만 연습한 탓일까, 낯선 사람 앞에서는 너무 긴장되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줄리아와 세드릭에게 보여주기엔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좋아하는 곡을 흐밍을 섞어 들려준다. 세드릭은 내가 연주한 곡을 듣자마자 본인의 기타로 똑같은 코드를 따라 쳐 보인다. 우쿨렐레의 가벼운 소리를 듣다가 기타의 오케스트라 같은 화려한 소리를 들으니 귀가 즐겁다. 그는 음악 선생님 경력을 살려 나에게 우쿨렐레를 더 재밌게 칠 수 있는 방법 몇 개를 알려주고는 자신과 함께 합주할 수 있는 곡을 가르쳐 준다. 걸음마를 겨우 뗀 초보 연주자가 음악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은 짜릿한 전율이 흐를 만큼 즐거운 일이다. 세드릭과 함께 합주를 하고 있으면 어깨가 으쓱 해 질 정도로 폼나 보인다. 기타에 묻어 간다는 걸 알면서도 합주하는 매력에 빠져 세드릭을 더 조른다. 

“다른 것도 알려줘. 삼바나 보사노바 같은 거.”

할 일 없는 밤은 세드릭과 둘만의 시간이 되었다. 남편은 그 꼴이 보기 싫은지 방으로 가고 없지만 이런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은 기회다. 같은 노래를 두고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똑같은 안무에 맞춰 춤을 추거나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쾌감이었다. 나는 세드릭의 지도에도 몇 번이나 되묻고 틀리기를 반복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서로 30분 정도 노래 몇 개를 합주를 해 보다 결국 각자 연주하고 싶은 것을 한다. 하루 중 나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은 세드릭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남편에게 다시 달려가 오늘 배운 걸 뽐낸다. 

“길상아, 너도 기타나 우쿨렐레 배워봐, 내가 하나 사줄까?”

“됐어.”

호수같이 잔잔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길상이도 이때만큼은 골이 난다. 하지만 나는 길상이가 더 잘 들을 수 있게 밤이 새도록 연습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은 길상이를 놀리는 일이니까. 


두 번째 주말이 왔을 때 레바논의 작은 도시들을 여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히샴은 주말 중 하루는 이 근처의 볼거리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그동안 시위에만 관심을 두는 통에 우리 모두 히샴과 교류할 틈이 전혀 없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아침 일찍부터 작은 승용차에 다섯 명이 우겨 탄 채 드라이브를 갔다.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지는 몰랐지만 해안의 도시와는 다른 산악지대가 펼쳐졌다. 해안가의 베이루트와 쥬니에는 매우 세련된 유럽 도시의 느낌이다. 모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산악지대와 그 너머로는 햇볕에 얼굴이 그 으른 유목민들과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높은 산을 넘는 도중 간간히 사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전혀 다른 나라를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레바논의 인구분포는 모자이크 같다. 지역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종교가 나누어진다. 그렇다 보니 도시의 풍경도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의 호텔이 있는 쥬니에에서는 보기 힘든 히잡을 쓴 여자들과 모스크의 미나레(첨탑)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히샴은 굉장한 난폭운전자였는데 양쪽 방향의 차선을 다 써서 최대한 빨리 황천길로 운전하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은 히샴을 보며 우린 차라리 눈을 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아무도 눈을 뜨고 있지 않았다. 

황량한 산을 넘어 우리가 간 곳은 와이너리였다. 레바논에서도 오래되고 맛있기로 소문난 와이너리였다. 꽤 유명한 곳이었지만 도심의 시위로 이곳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안내해주는 직원에게 물었다.

"시위로 조용한 거겠죠? "

"저도 주말에 놀러 가기가 꺼려져요. 거의 모든 국민이 시위를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대학생이라는 젊은 직원은 시위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총리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었으면 했다. 그것이 얼마나 막연한 생각인지... 하지만 어떻게든 시작해야 했다. 불평만 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레바논이 어떻든 간에 외국인인 우리는 여유롭게 와인을 마셨다. '산다는 것'과 '여행'은 이렇게 다른 것이었다. 가끔 어떤 곳을 여행하다 보면 '이곳에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 나라는 살기 좋은 곳인가요? "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어이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깨끗하고 편리한 도시는 물가는 높고 일자리가 없다 했고, 물가가 싸고 너저분 한 곳은 부정부패로 나라가 엉망이라 했다. 나는 어떤 곳에 살면 행복할까 생각해 봤다. 일단 돈이 많으면 어디든 살기 편하다 했지만 그것을 따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작은 공동체가 좋다. 그러니 도시는 내가 살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간섭이나 관심도 싫다. 그렇다고 '나는 자연인이다'를 실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량으로 살고 싶어 하는 우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줄 사람들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사는 것. 물가는 저렴해야 한다. 

다합, 발리, 네팔, 터키, 조지아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 우리가 어느 곳에서 살게 된다면 이 중에서 고르자 마음먹었다. 


다음날 세드릭, 줄리아와 넷이서 차 한 대를 렌트했다. 어제의 경험 때문인지 운전대를 잡은 길상이를 칭찬하기 여념이 없다. 평범한 운전실력이었을 지라도 오늘만큼은 고급 리무진을 타고 안전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레바논의 여러 곳을 가보고 싶었지만 국도는 다 통제되고 있었다.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시위는 끝나지 않았다. 도시의 경계를 지날 때마다 군인들의 검문을 받았다. 무시무시한 차를 타고 무장한 군인을 보고 흠칫 놀라긴 했지만 정작 이들은 웃는 얼굴로 레바논에 온 것을 환영한다 말한 뒤 통과시켜주는 것이 다였다. 

내가 가고 싶은 곳 중에는 비블로스가 있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비블로스를 통해 수입되었다. 비블로스라는 지명 역시 파피루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성경의 바이블은 비블로스에서 생겨난 말이다. 그러니까 바이블은 파피루스, 종이라는 뜻이 된다. 여행하면서 알게 되는 작은 사실들은 나를 흥분시킨다. 교과서나 만화책, 노래 가사, 영화, 책에서 스쳐 지나간 내용들을 길에서 만나게 된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 이야기들이 그제야 실제로 다가온다. 내 인생과 아무 상관없다 생각했던 장면들이 이제 내 삶으로 들어오는 때를 맞닥뜨리는 것 역시 여행의 묘미이다. 그래서 더 많이 무언가를 주워듣고 읽을수록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깊어진다 느낀다. 때문에 꼭 비블로스에 가보고 싶었는데 이 도시에 들어가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군인들을 통과한 다음에도 막힌 길을 몇 번이나 돌아나가야 했다. 비블로스는 잡히지 않는 종이였다. 역시나 큰길은 시위대가 막아놓은 가드레일과 타이어 때문에 산길을 지나 둘러 가야 했다. 시위는 그냥 시위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비블로스를 포기해야 하다니..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모든 시간을 다 써버린 것이다. 막혀있는 길을 몇 번이나 유턴하다가 우린 그냥 풍경 좋은 곳에 내리는 편을 택했다. 경치가 좋거나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려서 구경하고, 산책하는 것으로 주말여행을 채우기로 넷이 합의를 봤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삼나무는 포기할 수 없었던 곳이다. 다행히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었기 때문에 차량통제가 없었다. 레바논에 왔으니 역사적이고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그 나무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남아있는 삼나무 숲은 극히 일부분으로 그 군락지가 너무 작았다.

길게 뻗은 삼나무 숲. 이 숲의 나무는 유대인의 성전이 되고, 이집트의 왕의 가구와 관이 되었다. 자연의 역사 속을 산책했다. 나무들이 내뿜은 시원한 공기에 벗었던 윗도리와 목도리를 꽁꽁 다시 싸맨다. 이슬비가 내려 숲 냄새가 더 진동한다. 큰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숲길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세드릭도, 줄리아도 시원한 공기를 더 맡으려 깊게 숨을 쉬었다. 몸 깊숙이 들어오는 냄새가 너무 좋아 흐르는 피마저도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진득한 흙 길을 다 걷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관을 너무 많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이 질 좋은 삼나무로 성전을 다 지은 것인지 베어 쓰고 없었다. 몇 년 뒤면 기후 재난으로 사라진다는 섬처럼 이곳도 보호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없어질 것 같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며칠 뒤에 또.. 봉사자가 나타났다. 파비아노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왔다. 대체 히샴은 무슨 생각인 것인지….. 우리 모두 갸우뚱했지만 식구가 늘어나는 것은 즐겁다. 새로운 여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그는 워크 어웨이로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정착할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여행하면서 만난 브라질리언, 특히 상파울루 친구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본인의 도시를 떠나고 싶어 했다.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남미에 가는 것이 겁이 났다.

“남미를 여행하려면,,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이 들리는데?”

“걱정하지 마, 강도를 만나면 그냥 다 줘, 눈은 절대 마주치지 말고. 그럼 웬만해선 괜찮을 거야.”

이것은 위로였을까? 난 더 겁이 나는데. 


파비아노가 살 곳을 찾는다는 말에 귀가 쫑긋한다. 그래서 살고 싶은 곳을 찾았는가?

그는 유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안전한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했다. 사실 우리는 정착할 곳을 찾으려 여행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와야 여행이 완성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곳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단지 다른 곳에 정착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겠지. 세상은 이렇게 넗으니 우리 마음에 드는 어떤 곳이 정착하게 될 것이었다. 아니면 힘닿는데 까지 방랑하며 살던가. 


우리가 떠날 날짜가 다 되었다. 벌써 2주가 지났다니.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매일 샌드위치 하나씩을 먹고 호텔에서 일하고 쉰 게 다인 것 같은데.. 레바논 사람과는 별 이야기를 나눠 보지도 못한 채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은 편하게 빨리 흘렀다. 나는 파비아노에게 다림질 인수인계를 했다.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에서 일한 경험이 많은 그는 일을 빨리 배웠다. 이 중요한 업무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고 싶었지만 단순한 업무에 가르쳐 줄 것이 많이 않았다. 졸지에 나는 백수가 되었다. 이제 진짜 할 일이라곤 우쿨렐레는 치는 일 밖에 없다. 떠나는 그날까지도 손님은 오지 않았다. 우리 봉사자 다섯 명 만이 호텔 로비를 가득 채웠다.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키프로스였다. 레바논에서 비행기 값이 가장 싼 곳이었다. 우리의 여행루트는 방향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늘 그때그때 세우는 편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생각이 적어졌다. 루트를 자세하게 짜 봤자 늘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쉥겐조약이나 날씨도 그 변수들 중 하나였지만 그 것뿐만은 아니었다. 어떤 도시는 더 오래 머물고 싶었고, 어떤 도시는 지루하니 일찍 짐을 싸버렸다.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 지나가는 말로 들은 여행지로 뱃머리를 돌리는 일도 있다. 그러니 세계여행은 당초의 계획과는 점점 상관없이 값싼 비행비 값, 일을 할 수 있는 곳, 들어보지도 못한 곳이면 더 좋았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방향뿐이었다. 우린 터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미 약속했던 2년의 여행 계획기간은 지난 지 오래였지만 아직 아메리카는커녕 서유럽도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여행 경비가 남았다는 것이다. 일을 하며 조금 아껴 쓴 덕에 돈은 남았고 그 대신 시간은 다 쓴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를 반겨줄 집을 하나씩 만들고 왔다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졌다.


키프러스는 지중해성 기후라 춥지 않은 곳이었지만 북쪽으로 올라가는 방향이니 두꺼운 옷을 이제 조금씩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짐을 줄이기 위해 춥지 않은 계절로만 옮겨 다니며 여행을 했기 때문에 두꺼운 옷들은 그때그때 사 입고 버리는 편을 택했다. 

파비아노는 우리가 갈 곳을 듣더니 따듯한 옷이 있는지 묻는다.

“두꺼운 옷 필요해?? 난 지금부터 따듯한 곳으로 이동을 해서 당분간은 옷이 필요 없어. 남자 옷이니까 숀이 입으면 맞겠다.” 

그는 노스페이스 외투를 가방 깊숙한 곳에서 꺼낸다. 짝퉁이라 지퍼는 이미 망가졌다고 씩 웃는다. 두껍고 따듯한 옷이었다. 또 이렇게 경비 아끼는 소리가 들렸다. 길상이는 이제 한 겨울 나라를 가도 겁날 것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이곳에서 각자 소중한 걸 찾아 떠나게 되었다. 나는 보사노바 한곡, 길상이는 소중한 외투 한 벌. 우리의 여행은 충분히 부자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에게 밤새 만든 팔찌를 매어주었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면서. 지중해를 주름잡던 페니키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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