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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30. 2022

또 다른 분단국가_EP1

다시 만난 에디션 부부

작은 섬나라로 왔다. 우리나라를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라고 하지만 키프로스 역시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있는 국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분단국가는 한국뿐이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섬나라, 남 키프러스에 먼저 도착했다. 

이곳에서 에디션 부부(에디:남편, 션:부인, 다합 편의 프리다이빙 첫 학생)를 만나기로 했다. 이집트에서 헤어진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여행자들의 길은 겹치기 마련이었다. 우린 북키프러스의 올리브 농장에 2주간 워크 어웨이 신청을 했고 에디션에게도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함께 일해보시겠어요? 올리브 농장입니다.” 

흔쾌히 그러겠다는 에디션을 남 키프로스에서 먼저 만났다. 우리는 몇 개월간 중동국가에만 있는 바람에 돼지고기에 굶주려 있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의 계율 때문에 먹는 것은 고사하고 파는 곳을 찾을 수도 없었다. 종교의 규칙이라는 것도 시대에 맞게 변하기도 하던데 이슬람의 규칙은 어디에서나 철저하게 지켜지는 편이었다. 꼭 돼지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먹던 것을 못 먹으니 이상한 금단현상이 있었다. 특히 에디 오빠의 삼겹살에 대한 편집증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션 언니도 물론 돼지고기를 좋아했지만 그 누구도 에디만큼은 아니었다. 남 키프러스는 유럽이었기 때문에 어딜 가나 돼지고기를 쉽게 살 수 있었다. 저녁 장을 볼 때마다 우리의 1순위는 삼겹살이었다. 에디션과 우리는 매일 밤 삼겹살을 먹었다. 메뉴를 물을 필요도 정할 필요도 없었다. 남 키프러스에서 해야 할 일은 삼겹살 먹기가 전부였다. 며칠간 돼지고기도 질릴 만큼 먹었으니 이제 북 키프러스로 갈 차례였다. 

분명 이 도시는 분단되어 있었지만 허술하기가 짝이 없었다. 수도인 니코시아는 절반으로 갈라 어설픈 시멘트 벽과 철조망을 쳐 놓은 다음 그것을 국경이라고 했다. 심지어 어떤 건물은 철조망으로 절반쯤을 나누어 놓았는데 두 개의 입구는 각각의 나라에 속했다. 옆집 사람임에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으로 들어가 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물론 그 정도로 허술하진 않겠지만. 지금은 남과 북의 자유로운 왕래 덕분에 니코시아는 볼거리가 많은 관광상품이었다. 분리벽에 그려진 멋진 그림들과 철조망에 걸린 국기들까지, 인간이 하는 실수를 조롱과 반성으로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쟁으로 쌓은 벽은 아무 힘이 없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국경에서 줄을 선 다음 출입국심사를 했다. 여권을 접었다 폈다 하는 정도의 간단한 절차였다. 한 발짝을 떼고 들어왔더니 북키프러스에 도착했다. 큰 배낭을 멘 우리 네 명 앞에는 데니스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터키어로 ‘바다’라는 뜻을 가지고 었다. 성격이 급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은 우리를 아주 아주 반갑게 환대해 주었다. 낯선 곳에서 우리를 환영해 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미션 하나를 해낸 기분이었다. 만날 사람, 약속이 있다는 것은 정말 두근거리는 일이기도 하다. 워크 어웨이를 계속 시청하는 이유 중에는 이 두근거림도 포함된다. 모르는 사람밖에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 만날 계획이 있다는 것은 든든함을 주기도 하고 설렘을 주기도 한다. 우린 국경에서 한 시간 넘게 달린 후 그녀의 시골집에 도착했다.




이곳은 농가민박을 운영하는 팜스테이였다. 숙소의 뒤편으로는 동화 속으로 뛰어든 것 같은 로맨틱한 마당이 있었다. 밤이슬이 뭍은 파릇한 잔디와 가을색을 입은 등나무 잎이 아래로 뻗어있다. 어두운 밤, 주황빛 조명이 큰 공간을 비추고 있으니 비밀스러운 가든파티에 초대된 기분이 들었다. 강아지 두 마리 ‘모디리’와 눈이 하나밖에 없는 고양이 ‘러키’, 아기 양 한 마리 ‘케밥’이 이곳의 실 주인이었다. 양의 이름을 케밥으로 지은 것이 조금 잔인하다 생각했지만 입에는 더 잘 붙었다. 저녁의 축축한 습기와 풀냄새,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동물들 덕에 시골집의 정취를 만끽했다. 우리가 지낼 농가는 각각의 침실과 공용 부엌까지 있어 에디션과 우리가 며칠간 지내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데니스는 우리가 필요한 식료품을 함께 사러 나가거나 본인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 올 수도 있다고 했다. 2주 동안 올리브 농장에서 귀농체험을 하기로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 이 작고 귀여운 동물들은 낯선 동양인들에게 무슨 좋은 냄새라도 나는지 애교를 부리며 비벼댔다. 오늘 길에 봐온 장을 펼쳐 급하게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과일과 구운 닭, 빵, 터키식 챠이를 끓여 큰 저녁 환영회가 벌어졌다. 

우리의 계약조건은 이랬다. 

V아침 9시부터 1시까지 농장 일을 도울 것, 그 이후부터는 자유시간

V토요일과 일요일은 주말농장 식당을 열기 때문에 쉬는 날은 월요일과 화요일

V 돌봐야 하는 동물은 닭과 토끼

식사는 자유롭게 만들어 먹으면 된다. 필요한 물품은 언제든지 말하라 한다. 

“돼지고기를 살 수 있나요?”

그놈에 돼지고기... 에디는 이 질문을 놓치지 않았다. 

“남 키프로스에 가면 살 수 있어요. 남쪽에 가게 되면 사 올게요” 

본인의 뜻을 이룬 에디는 다른 것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보였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은 상상도 못 한 채 시골의 분위기에 취해 빠져들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싸늘하게 코를 자극했다. 데니즈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주전자 두 개가 겹쳐진 터키식의 챠이를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는 우리가 할 준비이니 차 만드는 법을 배워두기로 했다. 아래는 물을 넣고 위에는 차를 넣어 끓인 다음 튤립 모양의 유리잔에 차와 물을 배합해 농도를 조절하면 된다. 거기에 설탕을 두세 스푼 넣으면 달콤한 터키식, 아니 북키프러스식 홍차가 만들어졌다. 달콤한 차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설탕을 뺀 홍차를 마셨다.

에디, 션, 숀, 엘리 이름도 비슷한 넷은 이른 아침부터 올리브 농장으로 호출되었다. 민박 건물 뒷마당을 지나면 레스토랑 건물과 무화과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나왔다. 주말에만 운영하는 식당 뒤편으로 꽤 큰 올리브 밭이 있다. 데니스는 집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속속들이 설명을 해주었다. 이 거대한 무화과나무는 50년이 되었다던가, 지난번 워크 어웨이 봉사자들은 가판대를 만들어 주었다는 얘기들이었다. 여유로운 시골 살림이 푸르름 속에 있으니 시간도 느리게 흘렀다. 강아지 두 마리 ’모디리’(낮은 잔을 의미한다)는 짧은 다리로 우리가 어딜 가나 쫓아왔다. 본인의 영역이라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이겠지만 내 눈에는 우리의 환심을 사려는 것 같았다. 정원 한 켠에는 닭과 토끼들이 있었는데 동물들의 밥을 챙겨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다. 신선한 달걀은 덤으로 오는 선물이었다. 농장을 둘러보면 볼수록 우리가 맡아야 하는 일은 늘어났지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제 올리브를 따 볼까! 장갑과 긴팔을 챙겨 입고 탱글한 올리브가 주렁주렁 달린 밭으로 갔다. 어린 시절을 밀양에서 보낸 나와 길상이의 눈에는 영락없는 대추로 보였다. 한 나무에 달린 어마어마한 양과 색깔까지도 대추와 비슷했다. 우리 말고도 옆집 할머니 두 분과 데니즈의 엄마까지 세분이 함께 농장일을 했는데 우리는 모두를 터키어로 엄마라는 뜻인 ‘안네’로 불렀다. 농장에 남자는 없었다. 오로지 안네들과 데니스까지 여자 넷이서 이 큰 농장과 레스토랑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안네들은 우리가 허술하게 일하지 않도록 열심히 감독했다. 소쿠리 하나씩을 들고 올리브를 따기 시작했다. 아니 주웠다. 나무에 달린 것은 손도 대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과, 이미 떨어진 지 오래라 수분은 온데간데없는, 씨만 말라붙은 것들까지도 모조리 주웠다. 씨밖에 없는 것을 왜 주워야 하냐 의문이 들었지만 이것도 방앗간에서 짜면 왠 만큼의 기름은 나온다고 했다. “여기도 주워야지! 대충 주우면 우리가 또 주워야 한다고!”

에디션 부부와 길상이

올리브 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한 알 한 알 집어 바구니로 옮겼다. 반복적인 일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저려왔다. 한참을 줍다가 기지개를 켜기 위해 일어날 때마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1시까지 일하기로 했으니 지금쯤이면 11시가 되었겠지 하고 시계를 보니 겨우 10시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고작 첫 째날 아침인데 올리브를 줍는 일은 지루하기가 말도 못 한다. 잠깐 서서 쉴 때마다 밭은 가득 메운 올리브 때문에 현기증은 더 심해졌다. ‘이걸 어째…’

에디와 션의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몇 시간 만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젯밤 에디션의 방에는 베드 버그가 있었는지 잠도 설쳤다 했다. 두 사람의 온몸을 벌레들이 울긋불긋 씹은 흔적이 보였다. 다행히 우리 방은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중간의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데니즈는 새참으로 커피와 음료를 만들어 줬다. 이곳의 커피는 진하다. 가루가 가득 가라앉아 있는 중동식 커피인데 안네는 쓰디쓴 그 가루까지도 다 마었다. 나는 도저히 삼킬 수가 없어 커피만 마신다. 션은 커피를 마시지 않아 이곳에서 직접 만든 라임청을 녹여 마셨다. 일한 뒤에는 뭘 마셔도 맛있다. 잠깐의 휴식시간은 꿀 맛 같다. 에디는 커피 양도 작은데 내가 커피를 너무 빨리 마신다고 타박했다. 이곳의 시간은 웬일인지 천천히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는데 쉬는 시간만큼은 짧디 짧았다.

“빨리 마시면 일하러 가야 하잖아… 천천히 마셔 좀!!”

결국 에디 오빠에게 잔소리를 듣고 만다. 오전의 잠깐 맛보기 노동이었을 텐데도 이미 올리브 농장에 질려버렸다. 우린 무슨 수라도 내어야 했다. 제일 문제는 다리가 저린 것이었다. 쪼그려 앉아 일하는 것이 익숙지 않으니 일하는 내내 ‘어휴, 어휴’ 한 숨이 나왔다. 결국 한국 농촌의 할머니들이 푹신한 의자를 엉덩이에 붙여 일하는 것처럼 우리도 계란판을 가져와 방석을 얹은 다음 그 위에 앉아 일을 했다. 한국 농촌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여 “그래 이렇게 편해야 일을 할 수 있지”라며 흡족해한다. 안네는 우리의 새로운 도구가 신기한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런 걸 팔면 잘 팔릴 것 같 같은데,,,,


1시가 될 무렵

“오늘은 여기서 끝냅시다” 데니즈의 업무 종료 통보에 장갑과 방석을 박차고 일어난다. 드디어 오전 업무가 끝났다. 한국이나 북 키프로스나 농사일은 어디든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안네 중 한 명이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내어 온다. 너무 고생한 탓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파스타를 씹어 삼킨다. 놀기에만 익숙해진 몸이 고된 일에 적응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오후부터는 드디어 자유시간이다. 농장 곳곳에는 먹을 것들이 천치로 널려있다. 귤나무와 자몽, 무화과가 지천이라 사 먹을 과일이 없을 정도다. 길상이와 나는 귤을 한가득 딴 다음 뒷마당 해먹에 누워 먹다 잠이 들었다. 이런 곳에 살면 걱정도 없어질 것 같았다.  

농장의 오후시간

에디와 션은 진드기를 잡기 위해 방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이 부부는 빨래하기를 정말 좋아한다. 에디의 말로는 

“우리 옷이 찢어지는 이유는 빨래를 너무 해서야..” 라며 툴툴거리지만 내가 보기에 둘 다 똑같다. 션은 세계여행을 하면서도 다림 기를 들고 다녔다. 여행용 소형 다리미이긴 해도, 다림 기라니!!! 빨래와 원수를 진 사람처럼 매일 옷을 빨고 다림질을 했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여행자들마다 들고 다니는 물건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휴대용 비데, 다림기 또 뭐가 있더라...? 각종 전자기기에 드론은 평범한 수준이다. 여행지에서 산 기념품도 가방 한 구석을 차지하니 아무리 짐을 줄이려 해도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늘어지도록 낮잠을 자고 동네 구경을 간다. 길은 하나고, 집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마을의 슈퍼도 물건이 많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입에 물고 바다를 보러 해안가로 가본다. 평화로운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게 해안선은 철조망과 함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총을 든 군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분단국가의 긴장감을 키프러스에 도착한 후 이 작은 마을에서 처음 느껴본다. 


키프러스는 지중해에서도 터키의 아래 위치한 섬이다. 지중해의 패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섬은 주인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그리스, 페니키아, 이집트, 로마, 아라비아, 베네치아를 거쳐 오스만 제국까지 이어져 오다 보니 키프러스는 그리스계 사람들과 터키계 사람들이 자연스레 섞여 사는 섬이 되었다. 근대에는 영국에 80년이 넘게 지배를 당하다가 1960년에 독립하게 된다. 그 후 1974년에 그리스계 군인이 터키계 주민을 쫓아내고 섬을 그리스에 병합시키기 위한 쿠데타가 일어났다. 터키 정부는 이에 자국민의 보호를 명목으로 북 키프러스에 군대를 파견한 다음 북키프러스 터키공화국을 세웠다. 현재까지도 북키프러스는 터키 외에는 어떤 국가도 이곳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버젓이 존재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나라이다 보니 국민들은 애매한 상황이다. 북 키프러스의 공항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나라는 터키밖에 없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도 터키 시장밖에 팔지 못한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힘들다 보니 관광인프라 구축도 쉽지 않아 사회 전반의 수익성이 떨어진다. 북 키프러스 주민의 대부분은 남 키프러스와 통일이 되어 EU에 편입되는 것을 원하지만 남 키프러스는 이에 반대한다. 이미 EU에 가입되어 있는 남 키프러스 주민들에게 변화란 피하고 싶은 일 일지도 모른다. 종교, 언어, 문화도 다른 이들이 다시 한 나라로 합쳐져 살아가는 일은 풀리지 않을 실타래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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