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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26. 2022

호텔의 일꾼_EP1

손님 없는 호텔

이집트 나일강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고대 유적을 볼 때마다 우린 이미 레바논을 만나고 있었다.  큰 나무가 없는 이집트지만 두꺼운 나무로 만든 목관과 배들은 땅만 파면 나오는, 빠지지 않는 유물들이었다. 이 단단하고 질 좋은 나무는 모두 레바논에서 수입된 삼나무다. 우리에겐 축구나, 내전으로 더 익숙한 곳이지만 실은 3천 년 전부터 페니키아 인들이 배를 타고 지중해 무역을 주도하던 상인들의 나라다. 이들이 만들어 내거나 인류사에 영향을 준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리스 인들이 붙여준 ‘페니키아’는 ‘자주색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보라색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에 자주색, 보라색은 귀족과 왕만이 입을 수 있는 귀한 옷감의 색이었다. 그만큼 만들기 힘든 색으로 보라색을 구하기 위해서는 비싼 값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또 장사에 적합한 페니키아 인의 실용적인 문자는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레바논은 정말이지 대단한 나라가 아닌가! 이들의 수출품 중 삼나무는 주변국에게 단연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이집트의 목관은 물론이고 예루살렘의 성전 역시 레바논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삼나무로부터 탄생되었다. 마침 레바논으로 가는 싼 비행기표가 있어 이집트의 일상을 정리하고 매력적인 역사를 가진 레바논으로 거점을 옮겼다.


요르단이나 이집트, 이스라엘의 빛깔은 비슷했다. 도시일수록 공기 중 흙먼지가 짙어 하늘마저 노랗다고 느껴졌다. 맑고 파란 하늘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오히려 땅 색깔과 가까운 누런색이었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까지도 탁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바닷가 마을이었던 다합을 빼고는 쾌청한 날씨를 거의 만나기 힘들었다. 우리가 느끼던 중동의 이미지는 누런색 그 자체였다. 그래서 레바논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수도인 베이루트의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파란 하늘, 초록색의 나무가 가지런히 심긴 도로는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았다. 이곳은 조금 다르구나…

건물에는 삼나무가 그려진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국기가 걸려있는 나라는 처음이다. 빨간색 가로줄 사이의 흰 바탕에 그려진 초록색 삼나무는 레바논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애국심인지, 정부 정책인지는 모르겠다. 거리에는 몸에 쫙 붙는 레깅스에 크롭티를 입은 여성과 히잡을 쓴 여성이 함께 걸어갔다. 건물은 누런색의 먼지 대신 반짝이기까지 했다. 레바논의 첫 모습은 푸르름, 자유로움과 동시에 혼란스러움이었다.

미리 연락해둔 호스트를 찾아 베이루트에서 버스를 타고 쥬니에로 가보려 했다. 공항이라면 으레 있을 법도 한 버스 노선 하나 그려진 판이 없다. 대중교통 시스템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행인에게 물으니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봉고차를 불러 세워 목적지를 얘기하면 대충 그곳으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지리를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세 번의 환승 동안 기사님은 다음 봉고차 기사님을 찾아 우리를 인수인계했다. 누가 봐도 이곳이 처음인 것 같은 바보 표정을 하고 있으니 본인이 더 답답해 도와준 것일 것이다. 중동 특유의 오지랖과 친절의 중간쯤이었다. 친 인간적 교통시스템 덕분에 쉽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일하기로 한 곳은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레바논 식의 호텔이었다. 아치형 구조물과 화려한 디자인의 조명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분수가 있는 작은 연못정원이 이곳과 잘 어울렸다. 물이 귀한 중동에서 집안에 분수를 두는 것은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테리어 중 하나로 보였다. 로비에는 전자피아노와 기타가 놓여있었다.

 “히샴을 찾아왔어요”

“노 프렌치? “

직원들은 많았으나 말이 통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어는 할 줄 아는지 물었다. 어떤 제국주의의 식민지를 살았는지에 따라 그들의 제2 외국어는 달라졌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경험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불어를 할 수 있었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온다는 것을 미리 들은 직원이 있는지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해줬다. 기하학의 화려한 타일이 깔린 복도를 지나 문을 열었다. 다림질 된 하얀 이불보와 화사한 커튼 위로 햇살이 비치는 방이었다. 여행 내내 지내본 숙소 중에 가장 좋은 방이었다. 다림질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보송보송한 침대 시트 위에 앉아 그것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엘지에어컨과 삼성 티브이가 설치된 방은 한국 호텔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화장실의 화려한 타일만이 약간의 레바논 느낌은 살려주었다. 손발을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이런 깨끗한 곳에서 자보는 것도 오랜만군….


낮잠치고는 긴 잠이었는지 눈을 떴을 때는 창 밖으로 이미 해가지고 있었다.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 보니 이곳의 주인, 히샴이 로비에 있었다.

“ 안녕하세요, 워크 어웨이 지원자 엘리와 숀입니다. “

간단한 통성명을 했다. 히샴은 우리 같은 봉사자를 많이 겪어봤는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전달했다. 나는 다림질, 남편은 수영장 청소. 호텔 부엌은 절대 출입해서는 안되 술과 담배, 마약은 금지되어 있었다. 매뉴얼을 읊어주듯 정해진 사항들을 나열했다. 맥주 마시길 좋아하는 남편은 내심 아쉽긴 했지만 이곳의 룰을 따라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전 8시부터 4시간 일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는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몇 번의 워크 어웨이 경험으로 짐작했을 때 이곳은 일하기 좋은 곳이 틀림없었다. 어떤 호스트들은 봉사자들이 할 일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럼 놀기도 뭣하고 일을 하고 싶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지루하면서도 애매한 상황이 된다. ‘너희가 알아서 도와줘’ 보다는 ‘나는 네가 이 일을 해줬으면 한다’라고 업무지시가 정확해야 마음이 훨씬 편할뿐더러 여행 일정을 짜기도 쉽다. 히샴의 정확한 계획 덕분에 2주간의 계약사항도 서로 확인했으니 몇 일간은 먹고 자는 것이 문제가 없어졌다. 호텔 직원들도 여럿 되어 보인다. 문제가 생기면 의지할 곳도 생겼고 이곳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많으니 마음이 놓인다. 더군다나 호텔에는 작은 수영장도 있다. 다합에서 매일 수영하던 습관을 이곳에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만큼 완벽한 직장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호텔 근처에는 까르푸와 아이스크림가게, 빵집, 스타벅스 같은 편의 시설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도시답게 조금만 택시를 타고 나가면 해변으로 갈 수 있었지만 수영장이 있으니 바다수영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아치 밑에 있으니 내가 유럽에 와 있는 것인지 중동에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레바논은 중동이었지만 바닷가를 끼고 있어서인지 지중해 국가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물가도 그러했다. 이집트나 요르단에서 쓰던 물가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트에서 사 먹는 과자나 스타벅스의 커피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비용을 내해야 했다. 이 호텔도 1박에 7만 원가량 했으니 이런 나라에서는 워크 어웨이가 아니면 오래 머물며 여행하기 힘들 것이었다.


일하는 직원들은 국적이 모두 제 각각이었는데 레바논 이모 두 명은 영어가 전혀 안 통했다. 우리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사람은 시리아 출신의 남자 두 명과 방글라데시인 리나, 에티오피아인 야 씨가 다였다. 아마 의사소통이 힘든 이유도 있었지만 늘 바뀌는 봉사자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나는 야 씨에게 침대 시트, 이불보, 베개 잎을 다림질하는 법을 배웠다. 큰 와플 기계 같은 기계에 천을 넣고 5초 정도 기다리면 쭈글 했던 면이 반듯하게 펴졌다. 가끔 물을 뿌려 건조한 천이 타지 않게 했다. 반쪽씩 접어가며 다림질을 하고 완성된 천들은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쉬운 일이라 10분 만에 다림질을 다 배웠다. 히샴 입장에서 이런 일은 정식직원이 하기에는 인건비가 아깝다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 쉬운 일인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뜨내기 봉사자들이 하기에 딱 이었다.

다림질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는 뜨거웠다. 초가을의 선선한 날씨라 그나마 견딜만했다. 어려울 것 없는 단순노동이라 현지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4시간을 보냈다. 창고방에 혼자 앉아 도를 닦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일만 끝내면 자유시간이었다. 수행을 하듯 무념무상으로 업무를 끝내면 온몸은 땀범벅이 된다. 나는 그 길로 곧장 길상이가 청소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11월의 지중해 날씨는 이제 조금씩 추워지고 있었는데 수영장 물은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것인지 더 차가웠다. 이곳은 청소만 할 뿐 수영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중 유일한 손님이라고는 다림질을 마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나뿐이었다. 길상이는 하루 두 시간 정도 수영장 청소를 하고 무거운 짐을 조금 나르는 일을 했다. 일이 없어 심심해하는 쪽은 길상이었다. 나라도 수영을 해야 청소하는 보람이 있겠거니 싶어 남편이 잘 닦아놓은 선베드에도 누웠다가 물속에서 첨벙거리기를 반복했다. 몸의 열기가 다 식고 추워질 때쯤 밖으로 나와 직원들이 준비해주는 점심을 먹었다. 이곳의 직원들은 모두 따로 식사를 한다. 함께 식사를 하면 좋으련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호텔 뒤편에 마련된 컨테이너 식의 숙소에서 생활했다.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본 적은 없다. 우린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각자 업무를 충실히


레바논의 음식은 유명하다. 오래전부터 상업으로 발달한 곳이니만큼 타국과의 교류도 많았으니 이곳저곳의 맛있는 음식은 다 있는 것이다. 지중해풍 유럽 요리, 북아프리카의 요리, 중동의 요리가 한데 섞여 레바논은 자연스레 미식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도 우리의 관심사였다. 호텔의 주방에서 우리의 매 끼니를 만들어줬는데 요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출입금지다. 물 한잔을 먹을 때도 물을 떠 달라 부탁해야 했다. 이곳에 절반은 손님, 절반은 일꾼으로 있는 셈이었다.

아침은 피타라는 넙적하고 얇은 빵에 오이나, 가지 절임, 요구르트를 넣고 말아 줬다. 슈와르마는 안에 고기나 야채가 훨씬 많이 들어가지만 아침은 가장 간단하게 랩을 먹었다. 랩의 빵은 먹으면 먹을수록 질겼다. 첫날에는 남편과 각자 하나씩을 다 먹었는데 며칠 뒤부터는 하나를 두 개로 나눠달라 했다. 반개씩을 꾸역꾸역 씹어 먹었다. 다 먹고 나면 이가 얼얼할 정도로 질겼다. 점심으로 나오는 음식들은 입맛에 잘 맞았다. 파스타나 쌀에 떡갈비 같은 고기를 양념에 조려 한 접시에 담아 주었다. 하지만 레바논 음식에 한껏 기대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음식이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짬을 내어 근처의 관광지를 갔다. 레바논에서 가장 유명한 Jeita grotto동굴이었다. 위쪽은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이었고 아래쪽은 시퍼런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심보인지 사진기는 동굴 입구에서 모두 뺏겨 사물함에 보관한 채 내부를 구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조명을 받은 기이한 종유석, 그 자체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사진을 못 찍게 하다니.. 거대한 동굴 안은 우리를 제외하고 안전요원들만 배치되어 있었는데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것 같았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많이 올라와야 관광산업이 잘 될 텐데,,,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으니 관광객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위쪽 동굴이 투어가 끝나고 아래쪽 동굴은 배를 타고 들어갔다. 물은 옅은 하늘색의 토파즈 보석 색깔이었다. 너무나도 투명하면서도 영롱한 색이었는데 그 아래를 한참 쳐다보는 것이 아찔하게 겁날 정도였다. 애써 시선을 멀리 돌려 동굴 천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 멋진 동굴을 사진 한 장 못 찍게 하는 관광공사 공무원들은 이곳에 와보기나 한 것일까??

30분 정도의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배를 탔던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대단한 관광지임에도 한산한 분위기 때문에 시시하게 느껴졌다. 동굴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은 높은 오르막이 이어져 있었다. 끝까지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아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한다. 인적이 뜸해 지나가는 차도 없다. 몇 대를 그냥 보내고 나서야 승용차 한 대가 선다

“얼른 타요!”

“고맙습니다.”

“우린 지금 급한 일이 있으니 저 위까지만 바래다 줄게요”

“네. 충분해요”

차 안의 분위기는 급박했다. 운전하는 여자는 불안해 보였고 옆 좌석의 남자는 더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전화통을 붙잡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빠른 스페인어를 쏘아대며 흥분을 가라앉힐 줄을 몰랐다.

“레바논은 무슨 일로 왔나요? 얼마나 있을 계획이에요?”

“관광이요. 2주 정도 머물 생각이에요”

“맞아요! 그 정도는 봐야 레바논을 충분히 볼 수 있어요. 참나..”

라며 여자는 화가 난 듯 맞장구를 쳤다. 막 통화가 끝난 남자는 얼굴이 상기된 채로 우리를 보며 얘기한다.

“베이루트가 불타고 있어요! 우린 얼른 이 나라를 빠져나가야 한다고요. 나는 스페인 대사관에 연락해서 비행기 편을 알아봐야겠어요. 당신들도 빨리 떠나는 게 좋을걸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타고 있다니?

남자는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흥분했다.

“이 검은 연기! 시위대가 베이루트를 장악했다고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진에는 정말로 검은 연기가 빌딩 사이로 피어나고 있었다. 이틀 전 내가 지나온 베이루트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언덕을 다 올라와 호텔이 가까워졌을 무렵 우리 마을 하늘에도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어느 호텔이죠? 지금은 위험하니까 호텔까지 데려다 줄게요”

여자는 우리가 걱정됐는지 집 앞까지 태워줄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보다는 옆자리 남자가 더 급해 보여 그녀를 안심시킨 뒤 차에서 내렸다. 동굴에 잠시 다녀온 사이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일까?! 끝났던 내전이라도 다시 시작된 것이라면 정말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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