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층. 19층이 제일 꼭대기층인 아파트에서 나와 내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층이다. 10층 거실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 탁 트인 도로와 우거진 산, 그 외 아파트와 주택들이 어우러져 제법 볼 만한 광경을 자아낸다. 그래서 나는 너무 높은 고층보다는 딱 '10층' 정도의 높이가 살기 적당하다며 생각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10층 이상의 높이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대기시간이란 엘리베이터를 누른 후 기다리는 시간을 말한다. 성격이 느긋한 편은 아니지만, 지독스럽게 급한 편도 아니기 때문에 10층 정도가 딱 알맞다. '내려가기' 버튼을 누른 후 내 눈 앞에서 문이 열리기까지 30초 미만의 시간은 옷매무새 점검이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과정이 소요된다. 기상을 해서 씻고 간단한 씹을 거리로 저작활동을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의 차에 탑승하기까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한다면, 늘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도착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평화롭던 나의 옷매무새 점검시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면, 여느 때처럼 10층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15층까지 항상 올라갔다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고작 다섯층 더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 싶겠지만, 어중간한 '다섯 층'이 잡아먹는 몇 초가 나의 많은 루틴을 무너뜨린다. 15층에서 타고 내려오는 '갑자기' 등장한 이 이웃은 누굴까하는 잡념에 사로잡혀서 1층에 도착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내 차가 어디에 주차되어 있는지 기억이 안나곤 한다. 하루가 꼬이는 기분이다.
'15층'과의 인연은 출근할 때만 겹치는 것이 아니라, 퇴근 시나 휴일 외출 시에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퇴근 후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누르면, 정말 '우연히' 15층으로 올라가고 있는 디지털 숫자를 발견한다. 그러면 속으로 '부글부글'한다. 이런 상황이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니 이쯤되면 15층에서 나를 관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쓸 데 없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친구에게 이런 '하찮은' 사연을 토로하면 돌아오는 문자는 'ㅋㅋㅋ'뿐이다. 그저 한 두번 걸쳐지는 우연 중의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 다시 '부글부글'. 그래서 이런 '우연'이 겹칠 때 마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고!"
하도 메시지를 자주 보냈더니 처음에는 웃기다며 답장을 꼬박꼬박 하던 친구는 이제는 지쳤는지 이 내용에는 답도 없다. '읽씹'하기에 이르렀다(사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친구라 읽고 씹는 일은 허다하다). 전화를 걸어서 퍼부었다. 나 지금 부글부글한다고.
'아직도 15층 타령이냐'는 말을 시작으로 역으로 친구가 퍼부어댄다. 랩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랩 좀 치는 녀석이었다. 뭐라고 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요지는 확실했다.
1. 엘리베이터는 네 것이 아니다.
- 어..어..그렇지
2. 네 루틴만 루틴이냐? 네가 15층 루틴 박살내고 있다는 생각은 안드냐?
- 어? 어..그렇네?
대충 얼버무리면서 통화는 끝났지만 얼얼했다. 원래 얘가 이렇게 촌철살인이었나? 서울생활에 찌든 동네 아저씬줄로만 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어쨌든, 친구의 의외의 날카로움(이라 쓰고 나의 무지라 읽는다)은 차치하고 나의 이기심에 계속 얼얼했다.
근래 몇 달 동안 나는 이기심 속에 파묻혀 살았다. 평온하기 그지없던 나의 일상 속에 다른 무언가가 불쑥 끼어든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만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탓을 하며 검은 생각을 가진 것은 오롯이 나의 문제였다. 15층의 이웃이 갑자기 이사를 왔건, 생활 루틴이 바뀌었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나의 이기심때문에 벌어진 '내면의 참사'다.
다시 읽고 쓰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여러가지를 되내어본다. '내면의 참사'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다행이었고(물론 친구는 알았지만), 다시금 곱씹으며 그것이 잘못된 생각으로 인한 감정임을 깨달았다. 더불어서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생활방식이 다른 이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도. 그리고 묵직한 팩트로 나를 후드려패줄 친구가 있음이 다행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