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과거일 뿐,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아
요즘은 개인적인 약속도 거의 잡지 않고 있다. 딱히 잡을 일도 없거니와, 간혹 친구들과 약속이 잡히기라도 한다면 아무래도 술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술을 아예 끊겠다고 다짐하고서 술을 줄여나간 것은 아니지만, 한 번 그런 마음을 먹고 술을 안마시기 시작하니 계속해서 먹질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이것이 습관화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어제는 친구 두 녀석과 약속이 잡혔다. 오랜만에 얼굴을 좀 보자는 흔하디 흔한 약속이었는데,
한 녀석은 100일이 갓 지난 아들을 데려오겠다고 했고, 나머지 한 녀석은 여전히 총각으로 나름 자유로운 삶을 살고있다. 나도 아이를 데려나갔고, 우리는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아이가 있는 친구와는 육아나 일상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은 친구와는 대화가 툭툭 끊기기 십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에 맞는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고 느끼며 상황에 걸맞은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보통의 상황이겠지만, 미혼인 친구는 계속해서 우리의 어렸을 적 추억에 빠져 그 안에서만 살고 있는 듯했다. 어렸을 적 추억을 되내고 예전에 좋아했던 게임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싶어했다.
참 신기한 일이긴 하다. 나도 그 친구와의 대화를 참 ’좋아했었다.‘ 오랜 친구와 예전의 추억을 되내며 술잔을 부딪히는 일은 마치 아주 두꺼운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꺼내어 보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몇 년을 그렇게 허송세월했다.
나는 많은 책들을 읽어가며 그런 시간들이 아까움을 깨닫고, 무조건 지금과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며 나의 성공적인 미래를 시각화 해오고 있다. 아쉽게도 내 친구는 아직 추억 속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감히 주제넘게 누구를 평하거나 옳다 그르다 할 생각은 없지만 머물러 있는 친구가 참으로 애처롭고 외로워 보였다.
내가 사는 동네로 가서 아이를 데려다 주고 한 잔 더 하자는 친구의 유혹을 간신히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사코 거절하는 내 모습에 약간 서운함을 느낀 표정을 보며 나는 겨우 운전대를 잡았다. 삶에 있어서 정답은 없지만, 얼추맞는 방향은 있는 것 같다. 기업가든 회사원이든 가정주부든 어린 아이든 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이 방향의 길은 아주 넓어서 어지간하면 잘못 갈 수가 없는 길이다.
그래서 빠르지 않더라도 천천히 나아가기만 하면 될 것인데, 빠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셀프 포기해버리고 과거에만 갇혀 사는 것은 세상 어리석은 짓이 틀림없다. 매번 그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마다 친구로서의 의무감으로 나서는 것 같다. 친구가 멈춰서버리기 전에 뒤에서 밀어줘야 한다는 세상 거만한 의무감 말이다.
변화없는 삶에 타협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친구를, 나는 종내 꺼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 뒤에
나는 참 잘 살아가고, 잘 변화해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