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001
아마 다들 마음속에 최애 카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14그램 만치 가벼운 사람은 아니지만, 나를 설명할 때 14그램을 빼놓을 순 없지.
모은 쿠폰만 책 한 권은 될 걸?
나의 14인치 노트북이 운명을 다할 때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던 것은 14그램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허허…)
매일 아침 이 곳의 커피를 들고 강의실에 가면, 일단 마음이 든든하다. 등굣길 내내 혼미했던 정신이 커피 한 모금에 맑아진다.
14그램은 고려대 정경대 후문 바로 앞 구석탱이에 조그맣게 위치해있다. 앉을 좌석도 없고 음료를 기다리는 곳조차 좁다. 14그램 바로 앞과 옆엔 심지어 저렴하고 넓은 테이크 아웃 커피점이 많다.
그래도 나는 굳이 이곳을 고집한다. 무엇이 날 14그램에 집착하게 만들었나?
*개취주의
일단 맛있다. 커피야말로 맛있다 할 절대적 기준이 모호한 기호식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그램 커피는 한 입 먹으면 딱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테이크 아웃 커피 전문점이 모양만 커피이고 단순히 쓴 물을 넣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정말 적당한 물의 양과 좋은 원두로 맛있는 커피를 항상 먹을 수 있게 해준다.
들은 바로는 일반 카페보다 원두 양을 조금 더 많이 꽉 눌러 담아 커피를 추출해 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다 진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쓰거나 신맛 아님 절대 아님ㅋ. 정신도 확 깬다.
라테는 정말 고소하다. 시럽이 들어가는 커피는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아 먹어보지 못했지만 라테 맛으로 미루어보아 훌륭할 듯하다.
또 여긴 우유를 데워서 티백을 우리고 시럽을 원하는 만큼 넣어먹는 식의 밀크티가 맛있는데, 흔히 공차에서 파는 그런 밀크티가 아니라, 잉글리시 티 베이스라 훨씬 가볍고 맛있다. 모든 메뉴가 평균 수준은 넘는 듯 하다.
가격도 저렴하다. 물론 앞집 옆집 커피들에 비하면 절대적인 가격이 싼 것은 아니지만 모든 메뉴가 2500~3000원인 것은 메뉴 퀄리티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합리적이다.
쿠폰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끔 친절한 알바생분이 도장을 몇 개 더 쾅쾅 찍어줄 때면 14그램이 내 가게 같고 그럴 때가 있다 ㅎ. 어쨌든 가격은 합리적이고 맛도 있으니 안 갈 이유 없다는 것.
사장님의 황소고집도 내가 14그램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내가 동선을 파괴하면서까지 14그램 커피를 굳이 굳이 먹는 똥고집쟁인데, 여기 사장님도 쉽지 않은 고집쟁이인 것 같다. 솔직히 요즘 지나가면서 흑당 입간판 안 세워둔 카페를 못 봤는데 여긴 한 번도 OO 대란에 합류한 적이 없다. 신메뉴도 잘 없다. 아주 가끔 티백이 추가되는 정도? 그렇게 메뉴도 몇 년간 그대로이다.
컵홀더도 그대로, 쿠폰도 그대로 매장 분위기도 그대로다. 그래서 지금 갖추고 있는 모든 것들의 퀄리티가 굉장히 좋다.
아마 다들 마음속에 최애 카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카페들의 맛이 어떻든 분위기가 어떻든 내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고 안정이면 장땡 아닌가! 물론 14그램은 맛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 가게가 분명하다. 그러니까 14그램 없어지면 나.. 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