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따낸 ‘공인중개사’
나는 해야만 하는 일만 하며 살아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해야만 하는 일은 어릴 때에는 공부였고, 자라서는 일이 되었다. 그마저도 한껏 기한까지 미루다가, 마지막에 위기를 모면하듯이 해치우곤 했다.
남편은 나와는 정 반대로, 무슨 일이든 먼저 찾아 스스로에게 쉴 틈을 안 주는 성격을 가졌다. 몇 해 전 날씨가 너무 좋은 5월, 그때도 남편은 노후 준비를 위해 필요하다며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굳이 안 해도 되는 공부를 왜 하냐며, 투덜거리면서도 어느새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생긴 줄도 모른 체로.
하지만 곧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공인중개사는 나와 멀어졌고, 잊혀졌다.
시험이 몇 주 남은 때, 괜한 오기로 벼락치기에 돌입한 나는 뱃속에 8개월 된 아이와 1차 시험을 쳤고 의외로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아마도 대학시절 배운 경제학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남편은 1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2달 뒤 아이가 태어나고, 2차 시험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고된 육아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험 두 달 전에는 제주 한 달 살기까지 떠나며, 이대로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2차 시험 한 달 전, 서울로 돌아온 내게 남편은 육아를 전담할 테니 1달만 벼락치기의 힘을 다시 보여달라며 내게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1달 동안 10시간 동안 스터디 카페에서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공부하는 중간중간, ‘내가 이걸 왜 굳이…’라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나였다.
(그리고 공부나 육아나 힘들긴 마찬가지인 상황도 한 몫했다.)
결과는 61.5점 턱걸이로 합격, 벼락치기의 승리였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안 해도 되는 일을 했고, 남편에게는 천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의지로 해냈다는 생각에, 자격증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사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이후 내 인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단지 나는 안 해도 되는 일을 처음 했고, 내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안 해도 되는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처음으로 안 해도 되는 일을 해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