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Jan 20. 2023

저거 갖고 싶다!

물욕의 끝은 어디인가

나이가 들수록 물욕이 없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이가 생긴 후로 안정적인 미래 설계와 아이를 위한 소비로 내 자신을 위한 소비를 줄이다 보니 점점 욕구가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 생일 같은 때가 다가와 가족 중 누군가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지 물어오면 당황한다. 왜냐고? 둘 중 하나다. 당시 갖고 싶은 물건이 아예 없거나 갖고 싶은 물건이 너무 비싸서.


욕구가 없어졌다며? 사실 대체로는 숨어있다가 슬금 나타난다. 물론 갖고 싶은 물건의 절대 개수가 줄어드는 건 맞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신기한 재능이 있다. 세일 마크를 보고 들어간 매장에서도 기가 막히게 노세일 상품인 신상품만 골라낸다. 왜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건 다 신상품인가! 슬프게도 내가 성인이 되어 직접 물건을 사게 된 후에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한 브랜드 중 저렴한 가격은 거의 없다. 아이 물건마저도 내 마음에 드는 건 저렴하지 않았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쇼핑하는 탓에 애써 찾아간 중저가 쇼핑 페이지에서 물건을 못 골라 끝까지 거듭 보고도 몇 번이나 TOP 버튼을 눌러대는 건 흔한 일이다.


슬프다. 돈이 없을 거면 심미안도 주시지 말지.


난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미술 전공생이었고, 가족들은 내 취향이 평범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내가 대학 진학을 한 이후엔(입시 이후 공식적으로 미적 능력을 인정받아 신뢰가 올라간 것인가) 옷을 살 때 어떠냐며 꼭 묻곤 했다.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평범한 듯 하지만 살짝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개성이 꼭 있어야 한다. 흔한 것도 싫고, 지나치게 특이한 것도 싫다. 너무 유행 중인 것도 싫지만 유행이 막 지난 느낌인 것도 안 된다. 클래식한 듯 하지만 모던감성도 있어야 한다. 고로 대체로 디자인 일관성이 보이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아무튼 고가이다.


일명 은갈치 양복을 입은 사람을 보거나 하면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심미안 따위 없으면 싼 것만 소비하면 되니 돈도 아끼고, 가지고 싶은 걸 돈 때문에 못 가지는 아쉬움 따위 느낄 일도 없을 텐데. 난 왜 이 집안에 존재하지 않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혼자만 가지고 태어나 항상 이런 쓸모없는 아쉬움을 느끼며 살아야 할까.


얼마 전에 웹서핑 중 이런 문구를 봤다. 보통 사람은 갖고 싶은 고가의 물건을 보면 아쉬워하고, 부자는 어떻게 해야 저걸 살 수 있을까 방법을 강구한다고! 띵! 그거구나! 애꿎은 심미안 구박하지 말고, 내가 돈을 더 벌면 되는구나. 도대체가 게을러질 수가 없는 인생이다.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이브와 대상포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