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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an 30. 2023

맞벌인데 애 둘이요?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종종 보는 댓글 중 조금 울컥하게 되는 말이 있다.


맞벌이하면서 애 둘은 아니지 않나요?


그걸 왜 당신이 결정하나요. 대신 애 봐줄 것도 아니면서. 나에게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 있다면 나의 애를 봐주느라 황혼육아로 고생 중이신 어머니밖에 없다. 그도 단순히 애 맡긴 죄인으로서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 넘기겠다는 의미다.


우린 아이가 한 명 밖에 없다. 5년이 되도록 한 명만 기를 수 있다는 믿음은 대체로 견고하다. 그래도 내가 육아 인내심이 좀 더 있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걱정을 차치하고 한 명 더 낳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사촌이라도 만나 잘 노는 아이를 보면 아이가 하나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올라온다. 둘을 낳는다는 것이 여건 상 매우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부모가 다 죽고 우리 아이가 홀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한 명의 자매와 스무 명 남짓한 사촌이 있는 나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대다수의 사촌은 10년 넘게 만나지 않아서 길에서 지나가도 몰라볼 것 같긴 하지만 '피붙이'가 주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있지 않은가. 스무 명 중 두 명의 사촌은 절친한 친구만큼 가깝다.


진심으로 나는 애가 둘 이상인 부부를 존경한다.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지만 상상만으로도 곱절의 고단함을 요한다는 건 알겠다. 나의 아들이 키우기 쉬운 아이가 아니라는 주위 공감만이 유일한 위안인 나는 그저 자신이 없다. 요리에 자신 없는 것처럼 육아에도 재능이 없다는 건 진작 깨달았다. 경제적인 문제나 회사일, 할머니에게 육아의 짐을 지운 죄책감 등등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한 명의 자식을 추가해 성인까지 키워내는 책임감의 무게를 늘릴 정도로 나는 배포가 크지 않다.


흡사 동물이 된 것 같았던 최악의 유도 분만 출산 기억, 단유 때까지 끊임없이 불타는 듯한 젖몸살의 고통, 피곤하고 졸려 죽을 것 같은데 내려놓기만 하면 우는 아기.. 진정 세상 모든 엄마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소수의 예외는 제외하고.


그럼에도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인가. 나의 아이가 태어난 이후 맞닥뜨리는 모든 아이들과 나는 사랑에 빠진다. 천진하고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음울한 나의 내면마저 순간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부모들에게도 누구보다도 힘껏 감사하고 싶다. 그대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결국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아이들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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