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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Apr 18. 2023

퇴직은 처음이라

눈물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인가

어느덧 마지막 출근일


10년이 넘는 시간을 집보다 오래 있었던 장소에 마지막으로 가고 있다.


의외로 지난주 출근길에 자주 눈물지었다. 그 어떤 형태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긴 시간을 보낸 만큼 생각보다 애정이 있었다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을 보낸 곳이고, 많은 기대와 설렘,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의 첫 직장(부디 다른 돈벌이에 성공해 마지막 직장이기도 하길).


퇴직이 결정 나고, 일주일 남짓 되는 시간 동안 후련함이나 기쁨보다는 불안만 커졌다. 퇴직 인사를 하며 생각보다 내가 회사에 잘 지내고, 친하던 사람이 많았구나 를 깨달았고, 진심으로 서운해해주는 모습을 보니 내 안에 숨어있던 아쉬움과 애정이 끌려 나왔다. 일면식 정도밖에 없던 부문장에게 지나가면서 인사할 때는 눈물이 나오려고 하고,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퇴직 통보 후 최대한 빨리 출근하지 말라는 이 회사에 내 행동은 안 어울린다. 아무 때나 울지 말라고!


그만두고 싶던 세월이 커리어 기대감이나 발전의 세월보다 훨씬 길었던 것 같은데 헤어짐의 과정은 참 빠르고, 혼자 조용히 자주 눈물겨웠다.


송별회 같은 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를 아껴주던 팀장이 송별회식을 잡아주었다. 대부분이 내가 신입 때부터 보던 사람들이지만 당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반갑진 않지만 내일부터 평생 안 볼 것이라 마음을 달래 본다. 나 없는 곳에서 니들은 잘 살아라. 변하지 말고 지금처럼 이렇게 월급루팡처럼 대충 살아. 니들 꼴 보기 싫어서 관두는 것도 1% 정도쯤의 이유니.

내가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결정적인 마음이 들게 만든 좌천된 옛 부서장한테도 너 때문에 괴로웠느라 한 마디 할까 하다 떠나는 마당에 남까지 괴롭게 할 이유가 있느냐 나를 다독여본다. 소심하게 퇴직 인사 가지 말까 하면서 마지막 출근길의 시간을 보낸다.


떠나는 사람이라 괜찮은 거겠지. 정말 좋아하고 친했던 사람들은 나가서도 만나면 되니 그 부분은 생각보다 아쉽진 않다. 친구처럼 각별하던 분들이 나를 안아주고, 울어서 ISTJ인 나는 당황했지만 사실 나도 혼자 자리에 앉아서는 몰래 종종 울지 않았는가. 고마웠다. 울만큼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진심으로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마웠어요. 외로운 회사 생활에 큰 힘이 되었어요. 이러니 또 눈물이 나오려 하네.


내일부터 다시는 갈 일 없는 길. 12년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길. 마침내 용기를 짜내어 박차고 나온 지금 이 순간,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길을 만들어가길 다짐해 본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어서 살아가던 삶에서 이제 나의 삶을 내가 만들어 가기 위한 시작이다. 힘들겠지만, 수없이 흔들리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17세 이후 두번째로 진정한 내 인생을 위한 결정이다. 20년 전 그날처럼 다짐해 본다. 할 수 있다! 그때도 해냈고, 지금도 난 결국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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