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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실 Aug 10. 2023

한국의 주거, 공동주택

한국에서 집을 꾸민다면 짚어야 할 이야기, 아파트라는 공간에 대해

우리나라의 거주형태는 크게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그리고 그 외의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 오피스텔 등으로 구분된다. 공동주택은 다시 아파트, 연립, 다세대 등으로 나뉜다. 공동주택의 거주 비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반면, 단독주택의 거주비율은 하락하고 있다. 2020년 기준 2,093만 일반 가구 중 52%인 1,078만 가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단독 주택에는 635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1)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라는 형태의 공간에 살고 있으며,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의 비율은 단 30%에 그치는 것이다.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1990년 서울을 방문한 뒤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충격을 받고, 한국에서 어떻게 이러한 대단지 아파트가 양산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녀가 그간의 연구를 집약하여 2007년 발간한 저서의 제목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을까.




아파트는 어떻게 대한민국 주거의 주종(主種)이 되었는가?
서대문 안산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KS KYUNG on Unsplash


한국에서 아파트는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의 주택으로 자리 잡았을까. 지금이야 아파트가 쾌적한 주거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대한 인식은 '서민의 주거지'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아파트는 10평 정도의 소형 아파트가 주를 이루었고, 연탄 난방에 승강기도 없는 저층의 형태였다. 더군다나 1970년 4월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으로 인해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고, 시민들은 높은 건물에 대해 경계심마저 갖게 되었다.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바뀐 것은 1970년대 들어서이다. 1971년대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단지형 고층아파트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완공되었다. 이후 등장한 아파트는 기름보일러식 중앙난방 시스템과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면적 역시 20평대에서 80평대로 다양화해 부유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아파트란 라디에이터, 난로, 보일러와 같은 최신식 시설이 있는 곳,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쾌적한 곳으로 이미지가 바뀌게 되었다. 시범아파트 이후 아파트는 중산층이 사는 고급 생활공간으로 거듭났고, 사람들은 아파트 안에서의 편리한 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


이후 아파트는 지역개발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970년대 강남 일대의 개발, 1980년대 분당·일산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개발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나대지와 농지는 택지로 바뀌는 과정을 거듭했다. 1975년 구자춘 서울시장은 아파트지구 제도를 도입해, 지구 제정이 된 곳에서는 아파트만 건설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표준 주택이 된 아파트는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한 급격하고 압축적인 경제발전의 표상이다. 2) 3)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어떻게 편리한 일일까?
과거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 투시도(안) Ⓒ2022 올림픽파크 포레온


대단지에 모여 산다는 것은 실제로 다양한 편리함을 제공한다. 세대에서 최대 만 세대 가까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거대하고 안정적인 수요층이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하나의 아파트 단지를 수요 배후로 하여 편의점·마트·쇼핑센터와 병원·약국 등 의료 인프라에서 학교·학원, 문화시설까지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생활 인프라만 편리한 것이 아니다. 공동으로 모여 살기 때문에 폐기물 처리, 조경공간의 관리, 경비, 난방배관 공사, 유지보수 업무 등 단독주택에 살 때 개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일을 더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수영장, 헬스장, 식당, 경로당 등 다양한 시설을 공동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또한 이곳저곳 흩어져 사는 것보다 거대한 단지에 모여 삶으로써, 이동거리가 짧아지고 거주지로의 접근성이 좋아진다. 다만 교통의 측면에 있어서는 마냥 장점만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주거지와 도시의 밀집도가 높아짐에 따라 교통 체증 문제 역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이다. 직접효과의 반감은 교통뿐 아니라 공동관리 경제성 측면에서도 나타나는데, 발레리 줄레조는 그의 저서(같은 책)에서 한국 아파트의 대형화가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증대시킨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금껏 아파트 불패 신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런데 아파트가 살기 편리해서, 그리고 1970년대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인해 바뀐 아파트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여태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에 전 국민의 반이 아파트에 살게 되었을까?


한국의 지역별 인구 밀집도 (SEDAC 2012년 확보자료 기반) ⓒWorld Mapper


압축성장을 통한 고밀도의 개발은 생활 인프라의 집중을 낳았고, 편리한 인프라의 수도권 중심화는 또 반대로 수도권으로의 집중을 낳았다. 2022년 수도권에는 전국 인구의 50.5%에 해당하는 2,605만 명이 살고 있다. 4) 좁은 면적에 몰려든 수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건축물은 필연적으로 아파트라는 형태의 물리적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최소의 공급과 최대의 수요의 조합은 지가를 천정부지로 올려놓았으며, 동일한 토지를 공유하는 수직의 집들은 깔고 있는 비싼 땅을 잘게 쪼개어 '대지지분'이라는 개념으로 권리화되었다.


일단 압축성장과 고밀도 도시개발의 대안으로 아파트가 공급되고, 아예 표준주택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아파트가 단순히 집으로써의 용도를 넘어서 투자가치가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1980년과 1990년 사이의 집값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겪은 우리들은 자산의 증대와 보호를 위해서 아파트를 보유하기를 원한다. 여기에 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매입했기 때문에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집이 투자대상으로써 가치가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가 우세종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표준화되고 일률화된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주택보다 현금화가 쉽고 사고팔기가 쉽다. 한적한 곳의 타운하우스를 샀더니 생활이 불편하고, 팔리지 않아 결국 집에 모든 것이 묶여버렸다는 식의 이야기는 결국 아파트를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지임을 가르치는 교훈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한 가지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는 우리나라의 재건축·재개발 문화이다. 아파트의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에는 인플레이션과 아파트로의 전입수요 증가, 또는 입지, 쾌적성 등 아파트 자체의 주거가치 변동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15층의 구축 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30층의 화려하고 깔끔한 신축 브랜드 아파트로 재탄생한다. 동일한 토지에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노후화되고 낡은 아파트라고 해도 대지면적이 크다면, 거주 여건이 좋은 신축 아파트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가격 형성은 국내 수도권의 모든 아파트가 용적률 300%라는 가능성을 동일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에 대한 개발 동력은 재건축·재개발 모델이 명을 다 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꿈틀댈 것이다.


해운대의 고층 아파트 ⓒYujin Seo on Unsplash


서울 서대문구청은 2023년 5월 스위스그랜드 호텔 부지가 서울시 상생주택사업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보도했다. 홍은동에 위치한 이 호텔 부지에는 1,000여 세대 아파트 단지, 공원이 조성될 예정으로 서대문구 홍제역 일대의 재개발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5) 코로나로 경영난을 겪었던 호텔들이 아직까지 회복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으나, 가끔씩 지나치던 길목의 호텔마저 아파트가 된다는 것에 살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택근무가 더 활성화되고 오프라인 상점에서 무엇인가를 구매하는 행위가 뜸해지면서, 부동산을 개발하는 일은 '아파트'라는 종목만이 수지타산이 맞는 것인가 싶다. 그것도 우리나라처럼 모든 것이 집중화된 나라에서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인가? 앞으로 수도권의 인구는 계속해서 지방의 인구를 빨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다 같이 인구감소의 시대를 겼으며, 4인 가족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획일화된 아파트 구조는 외면을 받게 될 것인가? 미래가 어찌 되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집을 꾸미는 행위를 한다면 이 '아파트'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2021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21.12.) / http://nationalatlas.ngii.go.kr/pages/page_2518.php

2) 강남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까닭은? (KBS역사저널 그날, 2000.09.29. 방영분)

3)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지음 (후마니타스, 2007)

4) 장래인구추계(시도편): 2020~2050 (통계청, 2022)

5) 중앙일보 기사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5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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