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집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장롱 한 구석에 있던 엄마의 인테리어 서적 세 권 때문일 수도 있다. 책자 속의 사진이 어떤 광경을 묘사하는 것인지 인지하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그 책 안의 예쁜 집과 방 사진들을 종이장이 닳도록 넘겨보았다. 어린 나는 책자 속의 그런 멋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때 살고 있던 낡은 주택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생긴 욕망일 수도 있다. 아니 사실 무엇보다, 나는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공간 속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런 나의 본능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장소는 집이 된다.
계약면적 5평이 조금 넘는 이 작은 원룸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나만의 공간이었다. 내 공간이 주어지자, 나는 밤낮으로 이 집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했다. 외출해 있는 순간에도 많은 짐들을 최적으로 수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좁은 원룸이기에 더더욱 중요한 공간의 용도 분할과 동선 배치에 대해 생각했다.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소품과 최대한 작은 가전제품을 정말이지 공을 들여 서치 했다.
이 작은 방은 지금 보기엔 약간 촌스러운 감이 많지만, 2010년대 중반 유행했던 화이트&우드의 북유럽 인테리어 트렌드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또, 구석구석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구와 살림, 가재도구들은 몇 센티 단위로 제 자리가 정해졌다. 좁은 부엌이지만 음식을 플레이팅 하는 재미를 놓치기 싫었다. 하지만 접시 수납장의 한 칸의 크기가 20cm이기에, 접시의 지름이 17~18cm가 되어야 하는 식이었다. 친구는 내 방에 놀러 온 후, 테트리스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 집은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한 명의 동거인과 같은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집을 꾸미는 일은 내 머리와 손을 떠나버렸다. 전월세가 아닌 매매로 마련한 신혼집임에도 그랬다.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내 집'이 생겼는데, 그 안을 돌보지 않는 일이 생기다니.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마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와 30년을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습관을 길러온 사람과 한 공간 안에 24시간 같이 있게 되었다. 나는 그와 대화하고, 두 사람 사이의 생활 방식의 간극을 줄이는 데에 더 집중을 했던 것 같다. 역시 이렇게 보면 집을 꾸민다는 행위는 건강, 생계 등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이 충족된 후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사치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집꾸미기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 굉장히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평일 어느 날, 그냥 농땡이를 피우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회사에는 하루 휴가를 내고 아주 멀리 있는 한 카페를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시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네에서 호수 자락을 바라보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그 카페는 차량이 진입하기가 꽤나 까다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초보운전의 티를 벗지 못한 나였지만 어째 저째 주차를 하고 나서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겨울과 봄의 중간에 걸친 계절이었기에 조금 추운 감이 있었지만 농땡이 피우기에는 딱 적절한 날씨였다.
카페 건물 앞으로는 커다란 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아직 새 잎이 돋을 시기는 아닌지라 나뭇잎 한 장 없이 텅텅 빈 가지는 새 둥지 하나를 짊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호수 건너편에 있는 산자락에도 초록은 보이지 않았다. 외로운 풍경에 산책을 이어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차 한잔을 주문하고 사람이 없는 자리를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외롭고 심심했던 아까의 풍경이 카페 건물 안에서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색색의 지붕과 조금씩 연둣빛을 띠기 시작한 관목 덤불들의 이른 봄, 파아란 호수와 하늘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힌 풍경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순간에 화가는 그 자리에서 종이와 물감을 꺼내고 싶은 욕구가 들겠지. 나는 창가 좌석에 앉아 오랜 시간 풍경을 음미했다. 내가 앉은자리에는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는 자리입니다. 함께하는 배려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다행히 평일 오전이라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주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도 어느 순간 '영감'이라는 것이 찾아온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 카페의 2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화와도 같던 창문 밖의 경치가 그것이었다.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당시 나와 남편의 신혼집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 그 카페에 못지않은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오던 순간에도, 부동산에서 매수인 후보자를 데려오면 모두들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이 집은 뷰가 너무 좋네요.'였다. 그런데 나는 그 집 안에서 그 뷰를 즐기고 있었는가? 그렇게 멋진 전망을 가진 공간에서 잠에서 깨어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창 밖의 풍경을 한 번이라도 쳐다보았는가? 왜 나는 이 먼 곳으로 차를 몰고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평소에 집을 즐기고 있었는지. 나의 소중한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다. 왜일까? 그것은 집 꾸미기의 방식에 약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과 그에 따른 공간의 형태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나는 월급의 큰 부분을 주택담보대출 이자로 지불하고 있었고, 그것은 내가 집을 위해서 하루종일 나 자신의 시간을 쏟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 얻은 나의 집과 그 안의 내 생활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집을 더 잘 즐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곳을 나에게 맞게 꾸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