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은실 Aug 27. 2023

소파라는 커다란 숙제

집에서 즐겁게 머무르기 위한 두 번째 걸음

소파의 방향을 달리 하고 실 배치를 바꾸니, 내 집이 조금씩 더 내 집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통창을 향해 있는 소파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비로소 '쉼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봤자 2주 남짓의 시간이기는 하지만.


https://brunch.co.kr/@sirigo/6




문제의 원인은 시중의 소파 치수와 내 신체 치수 간의 괴리에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흔히 유통되는 소파는 그 비례가 매우 거대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을 가진 성인이 정자세로 앉아 있기에 매우 어렵다. 아니, 이는 사실 큰 체격을 가진 성인에게도 동일하다. 이를 알게 해 준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2010년 1월 아이패드를 발표할 당시 활용했던 LC3 암체어 ⓒCassina


아마 가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사진이다. 애플의 전 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2010년 신제품을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 회장에서 소파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나는 이 사진 한 장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보통의 가정의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우리는 사진처럼 어느 정도 꼿꼿함을 유지한 채 엉덩이는 소파의 푹신한 등받이에 꼭 붙이고, 동시에 발을 땅에 닿도록 하는 형태의 자세를 취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요'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소파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1. 좌방석이 매우 커서, 앉은 자세보다 누운 자세에 적합하다.


우리나라의 소파는 좌방석의 세로 길이가 굉장히 길다. 세로 길이라 함은 무릎이 닿는 앞부분부터 엉덩이가 닿는 뒷부분까지를 말한다. 보통 소파의 좌석 하나는 정사각형 모양이기 때문에 좌방석 자체가 크다.


[좌] 뉴라비나 소파의 치수 ⓒ현대 리바트 / [우] LC3 소파의 치수 ⓒCassina


일례로 당시 내가 사용하고 있던 소파의 세로 길이는 108cm, 좌방석 깊이는 68cm였으며 스티브 잡스가 착석했던 LC3는 세로 전체길이 73cm, 좌방석의 깊이가 53cm이다. 1) 스티브 잡스가 키 180cm이 넘는 장신이며 그가 좌방석 깊이 53cm의 소파에서 정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키가 아무리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거인이 아닌 이상 좌방석 68cm 깊이의 소파에서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우리는 이렇게 거대한 소파에서 보통 양반다리를 하거나, 오토만 또는 발 받침대에 발을 올린 채 다리를 쭉 펴고 있게 된다. 이는 허리, 골반, 무릎 모두에 안 좋은 자세로 알려져 있다. 더 나쁘게는 소파 위에서 무릎을 접어 턱 밑으로 당겨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한다. 아니면 아예 눕는 자세가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거대한 소파의 팔걸이는 대부분 배게 역할을 같이 할 수 있는 적당한 높이로 디자인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소파는 건강에만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정자세를 취하지 못한다는 것은, 소파 위에서 무엇인가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집중을 하기 위해 소파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책을 읽을라 치면 자세가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허리를 활처럼 둥글게 만들어 소파에 깊숙이 기대게 되고, 다음 단계는 눕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레 손에서 책은 떠난 지 오래고, 눈이 핸드폰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단, 방금 이야기한 소파의 형태에도 예외는 있어서 만일 신체 사이즈, 특히 본인의 허벅지 길이와 같은 사이즈의 소파를 사고 싶다면 차라리 원룸, 오피스텔용으로 나온 2인용 소파 또는 라운지체어를 권한다. 이런 작은 사이즈의 소파에서는 허리를 등받이에 붙힌 채 발을 땅에 대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이런 소형 소파의 경우 주류가 되는 가구샵과 쇼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2. 소파, 의자의 기능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소파의 덩치가 거대해졌을까. 이것은 우리의 주거문화가 좌식 생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입식 생활을 하는 문화권의 경우, 앉는 기능을 하는 가구의 용도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시계방향으로, 카멜레온다 소파 ⓒB&B Italia / 임스 라운지체어 ⓒHermanMiller / LC4 ⓒCassina / 바르셀로나 데이베드 ⓒKnoll


여러 사람이 마주 보는 응접실 형태의 배치에는 일반 소파가, 소파보다는 등받이를 좀 더 눕혀 편하게 앉아 있을 때는 라운지체어. 그리고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한 자세로 편하게 앉아 있을 때는 셰이즈 롱, 거실에서 낮잠을 자는 등 아예 누워 있는 자세를 택할 때는 데이베드가 쓰인다. 아마 한국의 소파는 위의 네 가지 역할을 모두 겸하면서, 거기에 땅바닥에 앉아 있을 때의 등받이 역할 역시 해야 하기에 그 크기가 매우 커졌을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1인당 주거면적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위에서 나열한 모든 종류의 소파와 의자를 다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자연스럽지 않다. 모름지기 인테리어와 집 꾸미기는 생활환경과 여건의 문제를 잘 반영하고 있을 때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파의 덩치가 이렇게 크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좌방석의 길이가 너무 길어 앉기 위한 용도의 가구인 'Sofa'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소파의 크기가 매우 크다 보니 소파들이면 거실 인테리어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좋아하는 물건들이 조화롭게 가득 차 있는 거실이 아니라 소파 하나로만 정의되는 거실이라는 사실은 조금 슬프지 않은가.




처음 신혼집을 꾸밀 때에는 가전과 가구는 거거익선(巨巨益善)이라는 항간의 소문과 지인들의 조언을 반영해서 가장 무난한 디자인의 소파를 구입했었다. 하지만 소파에서 자세가 흐트러지고 무릎을 혹사시키는 순간을 자주 맞이하다 보니 무조건 큰 것이 좋은 게 아님을 깨달았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아마 내 라이프스타일이 큰 화면의 TV를 즐기는 쪽이었다면 큰 소파를 선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활양식은 그렇지 않았다.



소파는 꽤 비싼 가구에 속한다. 첫 번째 소파는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았지만, 두 번째 선택은 좀 더 신중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1년여를 고민하다가, 나의 허벅지 길이와 딱 맞는 사이즈의 소파를 구입하게 되었다. 새로 산 이 소파에 처음으로 앉았을 때 발이 땅에 닿는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를 느꼈다. 그렇게 소파라는 어려운 숙제를 끝냈다.



1) 시중에 유통되는 소파 중 상당수의 좌방석 깊이가 68cm~70cm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며, 이는 특정 회사의 특정 가구의 특성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