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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실 Aug 25. 2023

거실을 최대한으로 즐기기

집에서 즐겁게 머무르기 위한 첫 걸음

내가 집을 잘 즐기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내게 일종의 영감을 주었던 카페를 나와,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 유리창을 통해 동네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흔하다고 하면 흔할 수도 있지만, 이런 뷰를 가진 집을 막상 찾자면 또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내 발아래로는 4~5층의 낮은 건물들이 열을 지어 하나의 마을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에는 여러 개의 산, 그리고 산 너머 고층 아파트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새들이 많이 찾아오는 강이 조금 보였고, 파아란 하늘이 그 바탕 있었다. 나는 집 안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풍경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집, 풍경이 깃들어 있는 거실을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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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순간에 거실에 있으려 하고, 거실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생활 패턴에 대한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언제 거실을 이용하는가?

외출 후 귀가했지만 아직 샤워를 하지 않아 침실에 들어가기는 좀 찝찝한 순간

밥을 먹고 난 직후여서 한두 시간가량은 눕거나 낮은 자세를 취하지 못할 때

침실 또는 서재에 있다가 좁은 공간에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항상 대부분을 소파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있거나 쪼그린 자세로 앉아 있는다.

식물을 돌볼 때에는 바삐 움직인다.


무엇을 하는가?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본다. 태블릿으로 조금 생산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

식물을 많이 키우는 편이기 때문에 식물들에게 물을 주거나 상태를 관찰한다.

가끔 요가매트를 깔고 요가 또는 스트레칭을 한다.


요약해 보면 식물 돌보기, 요가와 같은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대부분 부엌 식탁이나 침에 있지만, 침실에 있기 애매한 순간에는 거실 소파에서 핸드폰이나 책을 보며 쉬고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책이 많아 서재가 따로 있지만, 서재 안의 책상에 계속해서 앉아 있기에는 몸이 뻐근해서 소파에서 편한 자세를 취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아마 우리 집처럼 TV가 없는 집, 그리고 무엇인가를 읽거나 식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생활양식을 고 있지 않을까 싶다. TV가 있는 집이라면 거실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고, 소파에 앉아 있기보다는 누워있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부엌이 좁아 거실에 식탁을 둔 집은 식탁이 책상이 되고, 작업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거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서재형 거실을 가진 사람의 집은 보통의 집보다 고요할 것이고, 그 집의 주인 역시 거실의 책상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를 것이다.


거실은 집 안의 중심이 되는 곳이고, 한국 아파트 평면도의 특성상 그 중요도가 특히 더 높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이 거실이고, 모든 방에서 한 번에 통하는 중심 공간 또한 거실이다. 무엇보다, 거실은 백도화지와 같은 공간이다. 누군가에겐 다이닝룸, 다른 누군가에겐 홈트레이닝 장소, 또 다른 이에겐 서재가 될 수있는 이다.





일단 내가 거실을 이용 때 생활 패턴을 고려할 때, 현재의 거실에서 특별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없었다. 이제 다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거실'에 주안점을 보고 한 번 더 거실을 살펴보았다.


나는 거실에 앉아 있을 때 주로 소파에 앉아 있다. 소파의 정면, TV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자칫 벽이 허전해 보일까 봐 저렴한 수납장 하나를 사 두었다. 그 벽의 중간 지점에는 못 구멍이 있던 자리가 있었는데, 그 부분을 가리기 위해 작은 액자 하나를 사서 걸어 두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깨달았다.


나와 남편은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와 내가 소파에 한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마주 보지도 못하고, 서로의 옆얼굴을 보며 불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향하고 있는 소파의 정면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닌, 그저 TV가 없는 자리를 채우려고 둔 의미 없는 물건들만 있을 뿐이었다.




까사 크레모사(Casa Cremosa) 120㎡ 모델하우스 ⓒ한샘


이러한 배치는 사실 거실 인테리어의 정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보통 북미권의 경우에는 소파 배치가 ㄷ자, ㅁ자를 띄는 형태를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집은 대부분 [TV_____테이블__소파] 라는 거실 인테리어의 공식을 매우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공식에 따라 신혼집을 꾸몄다. 아무래도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처음으로 본인의 소유가 된 넓은 집을  단기간에 채우느라 마음이 급했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일단 가장 쉬운 해결책부터 실행에 옮겼다. 소파에 앉아 의미 없이 휑한 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보고 싶다면 소파의 방향을 바꾸면 된다. 소파를 창 쪽 방향으로 바꾸어 배치하고 나니 그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핸드폰을 하다가도 잠깐 고개를 들면 원거리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눈을 휴식하게끔 만들어 주게 되었다. 책을 보다가도 마찬가지였다. 햇살이 조금 더 강해지는 순간이 오면 잠시 창가로 가서 스트레칭을 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밖을 바라보는 순간도 생겼다. 멍 때리는 순간이 뇌의 휴식과 창의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소파의 방향을 바꾸고 나서는 거실 배치를 좀 더 최적화해보기로 했다. 기존의 소파는 3인용으로 매우 컸다. 다행히 분리가 가능한 소파였기 때문에, 2인석과 1인석으로 분리해서 1인석은 창가에 가깝게 두고 2인석은 현관 쪽으로 두었다. 그리고 2인석 소파 앞으로는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자 하나를 더 두었다. 그러자, 남편과 내가 비로소 얼굴을 맞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창가 쪽에 있는 소파 1인석은 오토만과 함께 두어서, 발을 뻗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편하게 머무르고 싶을 때 활용했다.



신혼집은 32평임에도 불구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원룸처럼 아파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2 bay의 구축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신발을 벗고 아무런 전이공간도 없이 바로 거실 전체와 부엌, 그리고 집의 구조가 조망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마루형 구조의 아파트에서 억지로 중문을 설치하면 답답해 보일뿐더러, 안 그래도 좁은 현관에서 신발과 우산을 제자리에 두고 중문을 열어야 하는 귀찮은 과정을 귀가 때마다 겪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원룸 현관처럼 생긴 아파트 현관을 고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소파의 배치를 바꾸니, 계속해서 신경 쓰이던 마루형 구조의 단점을 극복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부수적인 효과라고 말하기에는 만족도가 아주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덩치가 큰 소파가 현관을 등지고 베란다 창문을 향하도록 두니, 현관에서 집 안까지 이어지는 복도 공간이 생겼다. 드디어 우리 집에 전실(前室)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거실을 더 즐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거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서서히 늘어났고,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인 거실이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변화했다. 내 집이 좀 더 '내 집'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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