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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Jul 22. 2024

우울증 극약 처방이 되어버린 달리기

난 어려서부터 운동을 죽도록 싫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건 달리기. 출발 신호를 기다릴 때의 그 긴장감이 싫었고, 급하게 차오르는 숨이 싫었고,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고통이 싫었다. 특히 숨이 차는 것은 단 1분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나이 40이 다 되어가는 와중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물론 시작은 우울증 때문이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의 답답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머릿속엔 항상 괴로운 생각들이 떠돌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이 뻥 뚫리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생각한 게 달리기였다. 싫어했던 만큼 허들을 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왠지 달리기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


무턱대고 시작한 달리기는 역시나 너무도 힘들었다. 5분도 채 뛰지 못하고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숨이 차고 온몸이 아파왔다. 그러나 달리기의 정신적 효과는 예상했던 그대로 들어맞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이었고, 숨이 끝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달리기를 마치는 순간에는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근 몇 년 간 느끼지 못했던 쾌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에 주는 해방감에 중독됐다. 이틀에 한 번씩 달리기를 했고, 어느새 40분 동안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됐다. 기록을 측정하기 시작하자 성취감도 생겼다. 점점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10km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해 좋은 기록을 냈다. 가을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까지 들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로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졌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었고, 만성피로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즐거웠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퇴근 후 달릴 생각에 설렜고, 주말 장거리 달리기가 기다려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난 달리기 기록을 꺼내 보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지 않아도 됐다. 그저 운동복과 러닝화만 있으면 어디서든 최고의 만족감을 주는 취미가 생겼으니까. 그렇게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한 번에 16km까지 달리는 기록을 세웠다. 곧 하프마라톤은 물론 풀코스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모든 기대와 행복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어느 날부터 달리기만 하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무릎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너무 무리했나 싶어 2주를 쉬어 보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을 가서 약물, 주사 치료와 체외충격파 등 큰 비용을 써가며 치료를 했지만 허사였다. 난 그렇게 6개월 만에 달리기를 포기했다. 달리기를 그만두자 기다렸다는 듯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다. 짜증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졌으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돌이켜 보니 나는 달리기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 같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은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삶에 만족감을 느꼈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무리한 운동과 부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달리기를 못 하게 됐다는 좌절감은 더 큰 우울감을 불러오고 말았다.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했던 노력이 이런 결과로 돌아오자 스스로가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렇게나 사는 게 힘들고 어렵다니.


그렇게 한동안 우울증 발병 초기만큼이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달리기 대신 걷기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기분이 좀 나아지기는 했으나 달리기를 할 때만큼은 아니어서 마음 한편의 우울감은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걷다 보면 언젠가 다시 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자꾸만 고개를 드는 우울감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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