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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Aug 07. 2024

11. 고대 인도 신화 속 사랑 이야기 <샤쿤탈라>


샤쿤탈라는 일전에 다룬 바 있는 고대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등장인물 중 하나다. 그녀는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5형제 '판다바'로 대표되는 쿠루족의 시조다. 샤쿤탈라와 두샨타가 낳은 아들 '바라타'의 후손들이 쿠루족이며, <마하바라타>는 '위대한 바라타'라는 뜻이다. <샤쿤탈라>는 이 쿠루족의 시조 샤쿤탈라 여왕과 두샨타 왕의 사랑 및 모험을 다룬 희곡으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에 비하면 매우 간결한 작품이다. 다만 사랑 이야기이자 희곡인 만큼 표현이 매우 아름답고 풍성하며 인도 문화권 특유의 사랑에 대한 타오르는듯한 열정과 서기 500년 즈음의 인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샤쿤탈라(가운데)와 두샨타(왼쪽)의 만남

샤쿤탈라는 한 현자가 요정에 매혹되어 낳은 딸이다. 어려서 숲 속에 버려졌고, 이를 '칸바'라는 선인이 주워 길렀다. 그녀가 숲 속에서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포도나무에 물을 주고 있을 때, 근처로 사냥을 나온 두샨타 왕을 만난다. 둘은 곧바로 사랑에 빠져 동침을 하고 샤쿤탈라는 급기야 임신까지 하고 만다. 왕은 왕국으로 돌아가야만 했기에 샤쿤탈라에게 언약의 징표로 반지를 주며 자신을 찾아오라고 한다. 샤쿤탈라는 출타했던 양아버지 칸바가 돌아오자 결혼을 승낙받고 왕을 만나러 떠나기로 한다. 그러던 와중에 한 현자가 그녀가 살고 있는 암자에 찾아온다. 하나 샤쿤탈라는 사랑에 빠져있던 나머지 현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현자는 저주를 내리고 떠난다. 저주의 내용은 그녀의 연인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 저주를 푸는 방법은 징표인 반지를 연인이 착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주의 일부였는지 그저 불운이었는지 샤쿤탈라는 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반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두샨타 왕은 궁전에 도착한 샤쿤탈라를 알아보지 못한다. 급기야 그녀를 거짓으로 왕비의 자리를 얻으려는 악인 취급을 하며 쫓아내 버린다. 반지를 보여주려 했으나 이미 잃어버린 후였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한 낚시꾼이 왕의 반지를 삼킨 물고기를 낚는다. 이를 왕에게 가져가자 왕은 기억을 되찾고 슬퍼한다. 그러던 도중 하늘에서 신의 종자가 내려와 두샨타 왕에게 신들의 왕인 인드라의 적을 무찔러 달라 요청한다. 왕은 하늘의 전차를 타고 날아가 과업을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상의 한 지역에 매료되어 잠시 지체한다. 그리고 거기서 새끼 사자를 데리고 노는 한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왕과 매우 닮아 있었고 왕은 직감적으로 아이와의 인연을 알아챈다.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두샨타라고 하자, 왕은 아이를 따라가 샤쿤탈라와 극적으로 재회한다. 샤쿤탈라가 왕에게 버림받은 뒤 슬퍼하고 있을 때, 한 요정이 발견하여 천상으로 데리고 왔던 것. 그 뒤 두샨타와 샤쿤탈라는 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카샤파와 아디티를 만나 모든 상황을 듣고 축복을 받으며 결합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정신이 팔려 현자를 대접하지 못한 샤쿤탈라. 여기서 저주가 시작된다.

이야기 속 샤쿤탈라는 매우 사랑스럽다. 나무와 동물들을 마치 제 자매인 것처럼 아끼고,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강인하다. 사정도 모른 채 왕에게 버림받았지만 그의 아이를 낳아 정절을 지키며 꿋꿋이 살아간다. 반면 왕은 저주를 받아 샤쿤탈라를 잊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실제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중에는 두샨타 왕이 그저 사냥 나갔다가 임신시킨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샤쿤탈라를 모욕하고 쫓아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샤쿤탈라>에서 저주를 받은 것으로 쓰여진 것이 그에게는 면죄부가 된 셈이다. 


작품에서 접할 수 있는 인도 문화는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기에 친숙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열정적이면서 성격이 급하고 감정에 크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천일야화> 등에서 볼 수 있는 아랍인의 성정과 비슷하다. 특히 사랑에 열정적이라는 점이 그렇다. 그리스 문화권과는 유독 대비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자연과 동물을 아낀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동물은 그저 제물일 뿐이다. 새끼고 성체고 가차 없이 목을 자르고 피를 뽑는다. 하지만 인도문화권 서사들에서 동물은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특히 작품 내내 샤쿤탈라를 연꽃에, 그녀의 사랑을 꿀에,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왕을 벌에 비유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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