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퇴원 후 병원 신세일랑 영 지는 일 없이 건강하게 자라났다. 아이의 두 볼도 좋은 혈색으로 탐스럽게 익어갔다. 아주 어릴 적 천도복숭아 같던 붉은빛은 얼마간 옅어졌으나 여전히 보기만 해도 꼬집고 싶어지는, 토실하고 탐스러운 볼이다.
‘아이의 볼 안에 대체 뭐가 들었을까?’
이와 같은 의구심이 들 때면 나는 어김없이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영감 얼굴에 달린 혹을 꽤나 진지하게 탐구했던 도깨비의 마음이 되곤 했던 것이다. ‘혹 속에 뭐가 들었나, 혹여 노래 한 자락 멋드러지게 뽑아낼 만한 능력이 들어있는 건 아닐까’ 하고 궁리했던 숲 속의 망령들처럼, 딸아이의 탐스러운 양 볼에 호기심을 품었다.
감히 짚어보건데, 볼에는 아이라는 존재가 지닌 순수와 웃음, 발랄함과 앙증함이 담겨있을 것이다. 과하지 않은 시샘과 욕심, 도를 넘지 않는 장난기와 애교 또한 들었을 테지. 이 모든 건 여덟 살 난 여자아이가 생래적으로 타고났을 법한 천진난만의 일종이리라.
때로 그것은 아이의 진지한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루는 태권도 품새 대회를 앞둔 아이가 도복을 입고 거실에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절도 있게 내뻗는 몸동작에 따라도복에서는 '퍽 퍽' 소리가 났다. 동시에 아이의 양볼은 급한 기세로 훅 내려 앉았다가는 잽싸게 위로 튀어올랐다. 본래 자리를 되찾고자 하는 몸부림인 양, 짧은 순간 양 볼이 강한 탄성으로 바르릉 떤다. 중력 따위에 결코 질 수 없다며 오기를 부리는 것이다.
'너의 비장한 표정과 미동 없는 눈빛만은 네가 얼마나 결연하고 의지에 차 있는지를 말해주는데, 펄럭있는 도복 자락에서는 기세 등등 살기마저 느껴지는데, 찰랑이는 너의 볼에 내가 웃어야 할지, 쫄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헷갈리던 차에 아이의 도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릴 없이 조그만 키에 바지 밑단을 돌돌 두 번이나 걷어올린 도복이라니. 그 앞에서 긴장됐던 마음이 대번에 확 풀어지고 만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아이의 도톰한 볼이 가장 큰 위세를 떨치는 건 토라져 새침할 때다. 심술이 나 앙탈을 부린다거나 떼를 쓸 때도 그것은 단단히 한몫한다. 내리깐 눈 아래로 살포시 도드라진 양 볼은 ‘나 지금 불만 있어요’ 라며 소리 없는 항변을 한다. 아이의 볼에 단단히 볼모 잡힌 나는 결국 먼저 다가가, ‘어째 그러느냐’고 곰살스럽게 묻고야 만다. 꿀리는 게 없어도 결국 나는 진다.
아이 볼을 한마디로 형용(形容)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선의 흐름과 굴곡, 각도와 깊이를 자로 잴수 없다. 정면과 측면에서 볼 때, 혹은 요리조리 시선을 달리하며 바라볼 때의 얼굴은 그 생김이 매번 다르다. 볼수록 깊고 풍성해 뵈는 입체미라고 표현해야 할까. 제아무리 노련한 조각가라 할지라도 아이의 양 볼을 이처럼 완벽하고 섬세하게 깎아낼 수 있을까. 한마디로 신묘막측(神妙莫測)이랄밖에. 기관에 간 아이가 무척 보고 싶은 날, 한 번씩 탐스런 볼을 떠올리려 애를 써본다. 그러나 암만 해도 그 생김이 그려지지 않는다. 기어코 실물을 대해야만 실감할 수 있는 미(美)의 실제라니, 진품이라 그럴 것이다.
내 깜냥으로 아이의 얼굴을 묘사해 보자면 겨우 이 정도다. 광대 바로 밑으로 살짝 부풀어 오른 살 무더기가 전연 무너지지 않고 탄력 있게 양 볼을 타고 뻗어가다며 귀염성 있게 두둑한 살점을 이룬 형상이랄까. 그러다 끝내 작고 깊은 우물을 만난다. 볼살의 높이와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깊게 패인 보조개, 그것이 미(美)의 방점을 찍는다. 누구라도 한번 빠지면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함정이다. 아이의 볼은 얼굴의 구심점이다. 외까풀의 작은 눈도, 밋밋한 콧대도, 살짝 들린 윗입술도 양 볼의 매력에 폭 파묻혀 별 일 아닌 일이 돼버린다.
아이는 제 스스로 어떤 무기를 소유하고 있는지를 안다. 심지어 그 무기를 사용할 줄도, 휘두를 줄도 안다. 무기를 빌어 제 생각과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다. 딸아이는 무엇이 좋고 싫은지 당당히 말한다. 여간해선 망설임이나 눈치 보는 일이 없다. 마음껏 울고 웃고, 조르고 떼를 쓴다.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며 온 힘 다해 울어 젖힐 수 있는 것도 결국 그 잘난 볼따구의 기세 덕이다.
하루는 아이에게 직접 물었다.
"그 통통한 볼 속에 뭐가 들었는데?"
아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엄마가 하도 물고 빨아서...뽀뽀가 많이 들어 있지!"
딸아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정이, 다시 말해 나의 뽀뽀가 아이의 볼을 조금 더 탐스럽게 부풀게 할 수만 있다면 내 언제까지나 입맞춤을 하리라.
결국 그것은 대단한 노래 주머니는 못될지언정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힘의 원천쯤 되는 것이 아닐까. 일단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