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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Feb 11. 2022

떼쓰지 않는 아이

아날로그는 좌표 찾기다

나와 친구는 소꿉놀이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길바닥에서 주운 붉은 벽돌조각을 편평한 돌 위에 올려 콩콩 찧어가며 고춧가루를 만드느라 열심을 내고 있었다. 그때 우리 앞을 지나던 아주머니 한분이 한마디 말을 내던졌다.

“OO야, 엄마더러 그런 머리핀 말고, 빠알-갛고, 노-오랗고, 이-쁜 놈으로 좀 사주라고 그래, 알았지?”

그녀는 내게 두었던 까끄름한 눈을 한참만에 거두더니 끌끌 혀를 찼다. 그러고도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딸애 하나 있는 것을…….”

하는 말을 뒤통수 뒤로 흘리며 서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우리 앞집 사는 아주머니였다. 꼭 어른 가슴께 오는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시로 오가는 지척지간 이웃.



여자아이는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한쪽 가르마를 탄 앞머리에는 핀을 꼽고 있었고, 가까스로 귀밑까지 떨어진 단발의 머리칼은 심한 바람이라도 맞은 듯이 한 방향으로 사정없이 삐쳐 있었다. 엄마는 내 머리가 반곱슬이라 어쩔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주머니가 톡 쏘고 간 말에 아이의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로션을 제때 바르지 못해 핏발 선 볼이 더욱 붉게 상기되었다. 수치심과 아주머니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가 못생겨 보여도 그렇지, 우리 엄마를 함부로 말하다니, 저 아주머니 나빠.’

아이는 어서 자리를 뜨고만 싶었다. 

“우리 이거 그만 하자. 저 오빠들 따라다닐까?”

마침 동네 머시마들이 이 집 저 집 열린 대문을 들락거리느라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나는 어떡해서든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가 꼭꼭 숨고만 싶었다.



날이 저물어 집에 돌아와서는 낮의 일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렸지만 엄마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 신경 써서 딸애 머리를 빗어 넘겨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의 눈에라도 탐탁해 뵈는, 환하고 고운 머리핀을 일부러 골다가 아이 머리에 꽂아주는 일이란 더욱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그러고서는  알바닥(아무것도 깔리지 않은 방바닥)에 엄마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연탄불의 열기가 그대로 닿은 방바닥은 뜨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엄마 냄새는 진했고, 그 품은 아늑했다. 금세 노곤해진 아이는 방바닥보다 더 후끈 달궈진 품에서 쉬이 잠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자주 ‘어른스럽다’고 했다. 어린 나를 ‘어른’이라고 불러주는 그 말이 나는 참 듣기 좋았다. 최고의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어른의 말투와 행동거지를 흉내 냈고, 더욱 어른처럼 굴려 애썼다.



왜 떼쓰며 울지 않았던가. 친구들처럼 내 머리도 엄마가 빗겨달라고, 머리핀은 예쁘고 깜찍한 걸로 꽂아달라고. 예쁜 옷도 사주고 품에 꼭 안을 수 있는 인형도 좀 사달라고. 이왕 떼쓸 거라면 두 다리 쭉 뻗고 퍼질러 앉아 앙칼지게 울어 젖힐 걸 그랬다. 적어도 나는 그만한 자격이 있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까. 그랬더라면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딸아이의 고운 머리를 손수 쓸어 넘기며 ‘딸 키우는 게 이런 재미구나’, 흐뭇해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어쩌면 딸자식을 그렇게 예쁘게 키우느냐’ 하는 동네 사람들 칭찬에 마냥 어깨춤이 추어졌을 텐데. 그것만으로도 팍팍하고 웃을 일 없는 일상에 윤기가 돌고,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졌을 것을.



어린아이 앞에서 앞뒤 못 재고 입질을 한 아주머니를 이제 와 탓해 무엇할까. 어린 딸아이를 살뜰히 살피지 못했던 엄마의 삶에도 이유는 있으리. 그러나 아이가 갖은 떼를 써가며 한창 자기 것을 주장해야 할 나이에 아이다움을 잃고 애어른으로 살았던 일에 대해서만큼은 어쩔 수 없이 슬픈 마음이 든다.



정작 어른의 나이가 되어서는 어른 노릇을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아이였을 때는 어찌 그리 어른처럼 굴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아이의 때에 한껏 아이답지 못했던 인생의 커다란 공백이 정작 어른으로 향해가는 길목을 단단히 가로막은 것은 아닌지 때늦은 후회를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이라도 벽이라도 마주하고 앉아 실컷 떼를 쓰고, 그때 울지 못한 울음을 마음껏 울어낸다면 이제라도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하고.





오늘 아침 딸아이가 양갈래 머리를 주문했다. 등교 시간도 빠듯한데, 더욱이 아이는 가마가 두 개라 모양을 내기가 쉽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한 반 단짝 친구와 꼭 같은 머리를 하고 오기로 약속했다며 도무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이의 머리를 매만지며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내 머리에 가마가 몇 개인지, 또 그것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뻗어 가는지 알았을까? 머리 어느 쪽에 숱이 몰려있는지, 또 어떤 머리 모양이 수월하고, 또 수월치 않은지는? 반곱슬은 샴푸 후 드라이를 안 해도 매만지는 대로 모양이 잡히는, 알고 보면 썩 괜찮은 머리란 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것은 원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움에 가까운 심정이었다. 우리가 함께 누렸어야 할, 아이의 머릿결보다 더욱 결이 고운 인생의 기쁨에 대한 회한.    



어렵사리 아이의 양갈래 머리를 완성했다. 제 모습을 거울로 비춰 보던 아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두 개의 볼우물이 깊게 팼다. 난 누구보다 그 천진한 미소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미소는 그날의 결핍을 보듬어 주기라도 하듯 다정했다. 여태 아물지 못한 가슴속 생채기를 싸매듯 따뜻한 미소였다. 



그제야 나도 그 옛날의 작은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태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는, 착하기 그지없는 내 안의 단발소녀에게 말이다. 그러고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예쁜 핀을 꽂지 못한 헝클어진 머리라도, 아이야, 너는 충분히 어여쁘고 기특한 걸. 그 아줌마가 잘 몰라서 그랬지 뭐야.’ 

아이를 매개로 언뜻 나의 어린 날을 다녀온 것 같은 날이었다. 꼭꼭 묻어둔 상처가 더는 깊어지지 않을 것이다. 심하게 문드러지거나 덧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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