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오래도록 틱을 앓아 왔다. 틱은 근육의 불수의(不隨意) 운동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신체 부위를 아주 빠르고 반복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강하고 급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아이는 일상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점차 소진되어 갔다.
틱 치료에는 묘수가 없어 보였다. 의학적으로 치료법은커녕 그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약물 복용은 치료의 방편이라기보다는 증상을 억제하려는 노력에 가까워 보였다. 결국 운동과 식이조절로 내면과 육체의 힘을 기르며 틱이 자연 소거되기를 기다리는 일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흔히 부모들은 자식이 크게 아플 때 대신 아팠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섣불리 내뱉을 말이 아니었다. 틱은 이미 그 자체로 ‘함께 앓는 병’이었다. 나는 틱을 앓는 아이와 함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암울한 어둠을 빠져나올 방도가 없어 자주 좌절했다. 어떤 의사는 도리어 엄마에게 약(신경안정제) 처방을 권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앓는 아이를 지켜보는 편이 훨씬 더한 고통을 당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소견이 백방 옳다 여겼다.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를 돌보는 나 자신도 함께 나아져야만 했다.
아들의 상태는 증상과 강도를 달리하며 악화되었고 회복의 시기는 멀어 보였다. 한 가지 틱 증상이 끝내 절정에 치닫고 나면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틱이 아이 몸을 뚫고 올라왔다. 아이는 알 길 없는 제 몸속 부조화와 갑갑함을 초 단위로 각혈하듯 뱉어냈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내내 애가 닳았다.
아이가 편히 쉬는 것은 오직 잘 때뿐이었다. 날선 신경과 온종일 사투를 벌이던 아이가 가까스로 잠의 세계에 빠져들고 나면 내 긴장의 퓨즈도 탁 끊어졌다. 질기게 아이를 따라붙던 그 요망한 동작과 소리가 멎고 고른 숨소리가 들리면 그때서야 안도의 숨이 빠져나왔다.
그길로 나는 머리를 털고 일어나 앞치마를 척 두르고는 주방 앞에 섰다. 어김없이 맛국물을 우릴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잠시 마음을 놓은 사이 더 깊은 우울과 한숨이 무방비 상태의 마음에 침투할지 모를 일이었다. 홀로 힘겨운 싸움을 싸우느라 기진한 아이를 위해 지금, 여기서 도울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식약동원(食藥同源), 곧 좋은 음식이 약이 된다는 식이에 관한 이 오랜 철학을 굳게 붙들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냉장고에 냉침해 둔 다시마물을 넉넉히 냄비에 부었다. 배 가른 멸치를 두 움큼쯤 집어다가 국물에 들어뜨린다. 대파를 손질 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대파 속껍질과 파뿌리, 미리 씻어 말려둔 양파껍질은 맛국물의 요긴 재료들이다. 겨울무의 하얀 부분을 숭덩숭덩 잘라 넣고, 요 전날 불려 둔 버섯 밑동과 국물도 야물게 챙긴다. 요리하다 어설프게 남긴 당근 조각과 브로콜리 줄기는 은근한 단맛을 내는 데 한몫할 것이다.
가스 불위에 냄비를 올린다. 서서히 냄비가 달아오르고 몽글몽글 기포들이 피어나면 종일 굳고 냉랭했던 마음에도 온기가 돈다. 뽀얀 거품이 몸집을 불리며 세를 확장한다. 거품 군단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 웃기 시작하면 마음이 조마해진다. 국물이 탁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거품이 부서져 산산조각 나면 국물은 그 파편을 끌어안고 보란듯이 바글바글 끓어댈 것이다. 냉큼 국자를 챙겨 와 찬찬히 부유물을 걷어낸다. 아이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과 너무 먼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도 뜨고, 또 떠낸다.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온 집안을 가득 메운 찝찌름한 바다 냄새. 어느 바닷가 모래사장에 서서 소금기 실린 잔잔한 해풍을 맞는 상상을 한다. 달큼함과 고소함이 실린 감칠 내음이 온몸의 감각을 끌어들인다. 어쩌면 인생이란 바다 같은 육수의 맛일지 모른다. 때로 역경이라는 소금기가 배어 녹록지 않지만 알고 보면 깊은 맛이 나는 오묘한 무엇. 고요한 밤 주방의 충만한 기운이 넌지시 말을 건다. 앞으로 헤쳐 나갈 일이 많겠지만 까짓것 해 볼만 하지 않느냐고. 그것이 인생의 참 맛이 아니겠느냐고.
아이가 어려움을 겪지 않았더라면 그의 몸과 마음을 이토록 면밀히 살피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을 테고. 어디 그뿐인가. 건강한 밥상, 그 정성 어린 한 끼의 소중함을 영 모르고 살 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약한 아이로 인해 우리는 함께 성장했고, 커다란 결핍을 동력 삼아 삶을 여실히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영양제 한 알을 입안에 툭 털어넣는 것으로 아이가 괜찮아지길, 하룻밤 푹 자고 나면 거짓말처럼 말짱해져 있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요행을 바라기보다 모난 아픔을 덤덤히 마주한다. 그저 아이가 정성을 다해 끓인 국물로 든든히 속을 채우고 하루치 아픔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길 응원한다. 조금 더딜지라도 아이가 심신의 힘을 길러 삶의 크고 작은 굴곡들을 힘껏 넘어서길. 결국 제 인생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길.
이토록 맑고 깊게 우러난 국물로 무얼 요리할까? 아이가 좋아하는 김치냉잇국을 끓일까? 시골 할머니가 보내주신 청국장을 풀어 찌개를 끓이는 건 어떨까? 계란 네댓 알 터뜨려 계란찜을 해도 좋겠다. 무엇이 되었든 사랑의 천연조미료를 더한 국물로 끓인 국에서는 세상 깊은 맛이 날 테지. 그 음식을 달게 먹은 아이는 오장육부가 튼튼해져 어떤 어려움이든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테고.
맛국물 우리는 밤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다. 염려하기보다 앞날을 긍정하고, 무거워진 발을 성큼 내딛는 작은 용기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자 끝내 아이가 좋아지고 말 거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안다. 맛국물을 우리고, 또 우려내야만 아이가 살고 또 내가 산다는 것을. 맛국물, 그것은 너와 나 모두를 위한 최고의 심신 처방전이다.
지적지적 국물 끓는 소리와 함께 밤의 위로가 나린다. 창밖으로 내려앉는 어둠과 함께 국물의 농도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