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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Aug 10. 2023

여름에 미리 고하는 인사

늦여름 단상

끝날 것 같지 않던 폭염을 뚫고 작달비가 쏟아진다. 불볕이 고집스럽게 머물던 자리에 선득한 바람이 분다. 거짓말처럼 더위가 물러가고 얇은 외투를 주섬주섬 찾게 될 만큼 '춥다' 소리가 절로 난다. 그게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끝날 일이었나, 어제와 오늘의 온도차만큼이나 허탈함이 크다. 죽네 사네 하는 생의 문제도 결국 날씨처럼 받아들이면 수월하게 되는 걸까? 다 지나가게 마련이라고, 궂었다가도 곧 맑게 개는 것이 날씨가 아니겠느냐 생각하면서.



숲의 녹음만큼이나 근심의 농도가 짙은 여름이었다. 하루치 무더위를 버티는 것만도 힘에 겹건만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건 사고들이 마음과 일상을 옥죄었다. 전전긍긍하며 매달려야 했던 개인의 일들도 여럿 있었다. 때로는 여유를 품고 받아들이는 일이 최선일까?그러는 편이 악다구니처럼 생떼를 쓰거나 요령을 찾아 발버둥 치는 것보다 훨씬 효력이 있을지 모른다.



올 여름의 마지막 관문인 태풍이 순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 큰 다행이다. 큰바람이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농사짓는 우리 아부지 잠 못 이루시니 제법 큰일이다.



더위가 한 풀 꺾여도 선풍기 날개는 한참을 더 돌아야 하고 살얼음 물냉면을 몇 그릇이나 더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만큼은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는 아이처럼 여름에 인사를 고하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니 밥상에 올렸다 하면 금새 습기를 먹어 눅눅하던 김이 놀랄만큼 바삭하다. 그렇게도 기세 좋던 여름장군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 분명하다.



유난히 지난했던 여름을 떠나보내며, 아듀(adieu), 서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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