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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Oct 23. 2023

브런치북 <문장이 있는 살림> 발행소식

당신도 혹 '살리는' 일을 하나요?

'집안일'과 '살림'은 엄연히 다른 말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먹은 그릇을 씻어 말리고, 다 된 빨래를 널고 개고, 또 방 방 곳곳을 정돈하고 소제하는 행위를 말하기 위함이라면 무슨 표현이든 무방할 테지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집안일'이라고 하면 어쩐지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부득불 해치워버려야 할 자잘한 생활의 의무쯤으로 여겨집니다. 영어로도 종종 'house chore(허드렛일)'로 말해집니다. 일하는 이의 영혼이나 고상한 가치가 그 안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살림'은 문자 그대로 살리는 일인 걸요. 그것은 소생과 재생이 절실한 대상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단어 하나가 품은 뉘앙스의 차이란 이토록 커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제가 살림깨나 하는 사람이냐구요? 제 살림 실력이야 난다 긴다 하는 살림고수들의 발치에도 못 미칠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공들이고 애쓰는 가운데 살림의 '살리는' 가치에 눈을 뜨는 일만은 늘었습니다.



허드렛일로 취급되는 '집안일'에 뜻을 더하고 진심을 다하자 '살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차곡이 쌓인 저의 '살리는' 살림 일상이 어느덧 문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언뜻 소박해 보이나 나를 세우고 가족을 살리고 지구를 위한, 생각보다 웅장한 이야기입니다.



당신도 혹 살리는 일을 하나요? 어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던가요? 때론 알아주는 이 없고 돋보이지 않아도, 결코 화려하지 않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묵묵히 살리는 일을 해내는 나와 당신은 매일의 숨은 '영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새 브런치북 <문장이 있는 살림>을 발행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책 <아날로그인> 이 세상에 나온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더군요. 두 차례의 출간 후유증과 쓰는 일의 깊은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합니다.



자주 길을 잃고, 때때로 고꾸라졌지만 그때마다 살림을 매만지며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끼니 끼니 밥을 안치고 나물을 무치고, 가끔은 별식을 짓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참, 더는 미룰 수 없는 빨랫감을 해결하고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놓다 보면 저 자신도 있어야 할 곳에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림의 가장 큰 녹록을 누린 건 결국 저 자신이었던 셈입니다.



부디 저의 '살고', 또 '살리는' 이야기가 제법 읽어줄 만한 문장이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작은 생기를 피워올리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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