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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Dec 27. 2023

카페지기와 작가

해야만 하는 일, 결국 하게 되는 일

말을 꺼낸 김에 메리님에 대한 이야기를 몇 마디 더 붙이지 않을 수가 없다. 오, 메리님, 나의 메리님. 한 가지 일을 지속하는 일을 두고 마음을 크게 앓던 시기에 그녀를 만난 건 적절한 도움이자 큰 위로였다. 카페에 처음 발길을 둔 건 아늑한 카페 공간, 감각적인 인테리어, 기대 이상의 커피맛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두 번 걸음이야 쉽지, 한 카페에 발길을 지속하게 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메리님의 공간을 자주 찾게 되는 건 순전히 그녀가 품은 좋은 기운 때문이다. 메리씨는 바쁘다. 새벽부터 카페에 나와 청을 담그고, 사과를 조리고, 양배추도 써느라 쉴 새 없다. 쿠키를 굽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수프도 끓인다. 디저트는 스콘, 케이크, 파이를 불문하고 종류별로 돌아가며 굽는다. (꼭 내 집 주방에 서서 종일 종종대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녀가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에 빠져 사는 게 뭔지, 그것에 열과 성을 다하며 매 순간을 보내는 삶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녀 옆에 오면 자꾸만 읽고 싶고, 또 쓰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 와중에 카페를 찾은 손님 한 분 한 분을 살뜰히 응대하는 메리님은 참 다정한 분이다. 손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노련한 재담가다. 카페의 크지 않은 공간에는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재밌는 사실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녀의 매력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다. 가게의 단골들은 종종 친구가 된다. 단골이 단골을 알아보아 눈인사를 하고, 한두 마디 말을 트게 되고, 한 테이블에 앉아 속마음도 나누게 되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정경이 무척 정겹다.




이처럼 카페 일에 완벽히 구비된 사람으로 보이는 메리님조차 실은 한숨이 깊다.

"커피 장사가 이윤이 많이 남는 일이라면 대한민국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부자로 살아갈 거예요."

언젠가 그녀가 흘린 말이었다. 커피를 팔아 이윤을 남긴다는 게, 정글을 방불케 하는 카페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녹록지 않은 일임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안다. 바리스타 자격 수업 첫날, "카페 차릴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하던 강사의 일침이 지금도 귓가를 맴돈다. 그것은 카페 창업의 꿈에 부풀어 큰돈과 시간을 내어 놓은 수강생들 면전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한국 카페 업계가 그날의 불쾌감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각박하고 살벌한 상황이라면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그런데 메리님은 어떻게 카페를 차리시게 된 거예요?"

'제 카페가 정말 하고 싶어서요'하는 식의 답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카페 일에 혼신을 다하면서도 일하는 모습이 그 이상으로 즐거워 보일 수가 없었기에 당연히 그녀가 간절히 원해서 사업장을 냈을 거라 생각했다.

"음... 차릴 때가 되어서요. 막다른 길이었거든요. 여러 큰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했는데 일하는 곳마다 문을 닫았어요."

그녀는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면 일했지 절대 사업은 하지 않겠다 생각했노라 했다. 그런데 이쯤 되니 지인들마다 '왜 카페를 안 차리느냐' 입질을 했고, 본인도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부동산이며 사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황이었지만 하나하나 더듬어 가며 그렇게 카페문을 열었다고 했다.   

 


"카페 이거요? 완전 중노동이에요. 요즘 카페 일들을 실제로 많이 하지만 결국 손목이 다 나가서 그만둬요. 저는 13년 차인데 아직 괜찮아요."

그녀가 살짝 미소를 띠었다. 역시나 그녀는 베테랑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메리님. 메리님이 자기 카페를 안 차린다는 게 말이 되냐구요.

  




카페 시장의 현실만큼이나 출판 시장도 각박하다. 귀에 들리는 말들만은 쓰고자 하는 마음을 주눅 들게 한다. 출판 시장이 갈수록 어렵다고. 책 읽는 사람은 없는데 쓰는 사람은 늘어만 간다고. 글쓰기로 생계유지를 바라기는커녕 일 년에 천만 원만 벌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기성 작가들의 푸념과 한숨에 마음이 더욱 내려앉는다.



그러나 자기 여건이나 몸담은 업계의 현실에 상관없이 결국 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숱하게 자기 부인을 해도 끝내는 그 길을 걷게 되는 것.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일종의 사명일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써야 하는 사람일까? 메리님을 만난 뒤로 조금 구체적으로 자문을 시작했다.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기까지 나는 끝을 장담할 수 없는 이 길고 긴 터널을 잘 지날 수 있을까? 이렇다 할 물질적 보상이 없어도 아직 발현하지 못한 내 안의 내재적 힘을 믿고 제법 긴 시간을 너끈히 견뎌낼 수 있을까?



오늘도 내 머릿속엔 미처 매듭짓지 못한 문장이 시도 때도 없이 둥둥 떠다닌다. 자꾸만 문장을 둥글리고 싶어 틈만 나면 혼자만의 시간을 노린다. 몇 마디 문장을 짓느라 아무리 긴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용을 써도 통장에 최저시급이 찍힐 리 만무하지만, 지금은 글 자체가 쓰는 이에게 건네는 내적 보상 -이를테면 자기 발견과 위로와 치유,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 같은 것- 을 한껏 누려야 할 때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한 공간에서 메리님은 커피를 내리고 나는 문장길어 낸다. 우리는 무언의 말들을 수시로 주고받으며 '당신 참 잘하고 있다'라고 서로를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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