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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an 03. 2024

쓰기가 고파지는 시간

고시원을 청소합니다.

파티룸과 겸하여 일한 곳은 고시원이었다. 상호명 앞에 '프리미엄'이 붙은 여성전용고시텔로 일반 시설에 비해 나은 시설과 철저한 관리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공용 공간이라 일이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을 거예요."

"네 제가 공용 공간 청소 경험이 있어요. 다른 곳보다 시급을 높게 쳐주셔서 제가 일해 보고 싶어요."



그것은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고시원 청소일은 알바 구인 공지에서 확인한 대로라면 2시간에 4만 원, 요즘 알바비 시세를 고려하면 꽤나 괜찮은 수준이었다. 시급을 높게 쳐주는 곳에서 일을 해야 덜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하루 한 시간에 대한 체감 가치가 알바를 시작한 이후로 급격히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청소일 한 시간은 글쓰기 한 시간,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는 한 시간과 정확히 맞바꾼 시간이었다.  






처음 얼굴을 튼 자리, 고시원 원장은 미리 작성해 둔 청소 목록을 내 휴대폰 문자로 전송했다. 주방, 화장실, 샤워실, 복도 등 공간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십여 가지의 청소 지침이었다. 딱히 까다롭거나 노동 강도가 세지 않는 기본적인 청소일이었다.

"요구하시는 청소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이는데요, 만일 청소일이 두 시간이 안 걸려 끝나면 어떻게 되나요?"

내 손이 남보다 빠른 걸 의식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일찍 끝나면 일찍 끝나는 대로 금액을 다 쳐드립니다.  다만 그날 고시원 상태에 따라 저희가 청소를 더 부탁드릴 순 있어요."

애초 제시된 알바비는 시급의 개념이 아닌 당일 한 건의 청소에 대해 지불되는 금액이었던 것이다.

"아 그러니까, 청소를 조금 일찍 마쳐도 시급은 변함없단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그 점을 나는 재차 확인했다.




    

고시원 청소 일은 지루했다. 부여받은 청소 목록을 도장깨기 하듯 하나하나 처리하고 나면 하루치 일이 끝이 났다. 주방을 치우고, 화장실을 닦고, 이곳저곳의 얼룩을 지우는 일은 집안일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수시로 몰려오는 무료함을 딛고 묵묵히 어제와 같은 일을 해낸다는 것, 바로 그 점이 시급을 조금 높게 쳐주는 유일한 이유일까 생각했다.



성취감을 얼을 유일한 방법은 청소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었다. 화장실, 주방, 복도, 현관...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떤 일로 마무리 짓는 게 효율적일지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같은 길을 여러 번 오가지 않도록 동선 줄이기에 힘을 썼다. 급기야 걸레 빠는 시간을 벌기 위해 집에서 헌 옷을 잘라와 일회용 걸레로 사용했다. 



그러다 문득 몇십 분 일찍 일을 마쳐 보겠노라 아등바등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지면 차라리 힘을 뺐다. 마지막 작업인 복도 바닥 청소는 숨 고르기 좋은 시간이었다.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를 따라 긴 막대 걸레를 밀고 다니자면 생각과 마음이 비워졌다. 집에서와 달리 바닥에 거치는 것들이 없어 허리 굽히지 않고 유유자적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좋았다.




흐트러진 공간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 새것을 창조해 내기보다 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는 일. 이곳에서 나의 임무란 딱 거기까지였다. 청소 일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달라질 앞날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기껏 정돈한 공간이 내일이면 다시 도루묵이 될 거란 건 기정사실이었니까. 그저 최소한의 시간, 적은 품을 들여 해치워버리면 속 시원할 일이었다. 청소가 한 시간이 넘어갈 무렵이면 살짝 글쓰기가 고파졌다.



제 날짜, 약속된 시간에 계좌에 정확히 찍히는 주급 12만 원만이 이 일을 지속할 새 힘과 기운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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