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해외 장기 연수가 결정되면서 온 가족이 한국을 뜨게 됐다. 이번 연수 선발자는 1년간 미국에 머물며 현지 대학에서 방문 학위(Visitor's Scholarship)를 취득하는 과정을 밟는다.
그가 연수 과정에 지원서를 내고 여러 차례의 전형을 치를 때만 해도 '설마',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애써 심드렁했다. 그러나 합격 발표가 난 뒤로는 꼼짝없이 눈앞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이 상황은 2톤 트럭이 미어져라 짐을 싣고 자리를 훅 뜨기만 하면 되는 보통의 이사가 아니다. 그것은 여행이라기엔 제법 길고 외국살이치곤 너무 짧은, 그 중간 어디쯤에 걸친 류의 이주인 셈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곳에서 벌여 놓은 4인 가구 살림을 깔끔하게 접는 것을 담보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 주부 생활을 이어온 지 13년 만에 만난 살림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하루 이틀 집을 비우고 떠나는 국내 여행조차 힘에 겨워하는 사람이다. 반복적이고 정돈된 일상을 아끼는 나머지 순탄한 살림을 돌연 멈추고 지금, 이곳에서의 생활을 일단락 짓는 일이 쉽지 않다. 큰 대가를 치르고 떠나게 될 여행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살림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하게 이어가던 삶의 관성을 거스리는 일이 꽤나 버겁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일이기도 했다. 한창 영어를 전공하며 언어 연수가 절실하던 시기엔 그렇게도 기회의 문이 열리지 않더니, 삶의 노선을 갈아타고 겨우 생활의 안정을 찾아간다 싶으니 떠나라 한다. 그것도 십 수년간 차곡히 쌓아 온 생활의 짐들을 이고 지고 갈 수 없는 어디 먼 곳으로. 나는 마냥 다음날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의 심정은 될 수 없었다. 한국 살림에 손이 익은 일개 아줌마는 평온한 삶에 훅 치고 들어온 새 노선 앞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한동안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글도 독서도 평범하게 꾸려오던 매일의 살림도. 어차피 이곳에서 지속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의 이런 반응을 두고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해외 장기 연수야말로 회사에서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복지가 아니냐고. 아이들 영어는 또 어떻느냐고. 귀가 열리고 입이 트이는 데에 이만한 기회가 있겠느냐 했다. 누가 들어도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4개월 살림 시한부를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 시한부를 선고받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으니까. 본시 살림이란 임시로 친 장막에 가까울망정 천년만년 벌여놓고 살 성질이 아니었나 보다. 꼼짝없이 그간 벌여놓은 살림을 접게 생겼다. 단순한 물건 정리의 차원이 아닌 이 집에서 벼려온 생활 방식과 습관, 익숙한 동선마저 내려놓아야 할 때다.
나는 지금의 장막을 미련없이걷어내고 전혀 다른 터전에 새 말뚝을 박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소용없는 하소연인 줄 알지만 살림에도 기한이 있는 줄을 알았더라면. 집도 채울 때가 있고 비울 때가 있다는 걸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