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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Apr 09. 2024

집은 우리의 베이스캠프니까

집은 두고 가려고요.

해외 연수 확정 소식을 양가에 알렸을 때 두 어머니의 반응은 대체로 일치했다. 시어머니는 나를 영 측은해하는 말투였다.

"야야, 니가 마음이 영 심난허겄다. 그쟈."

"뭐, 그쵸 어머니. 이왕 이리 된 거 잘 준비해 보려구요."

"아부지는 1년 나갔다 오는 거 집 내놓지 말고 가만 놔놔라 하신다. "

"그래도 어머니, 집에 누가 살아야 관리가 되지 1년이나 비워 놓으면 다 망가져요."

"나라도 한 번씩 올라가서 있다 오믄 되지 그 짐을 다 어쩔라 그러노."

"저희도 미국 가서 생활을 해야 하고, 다만 얼마라도 집세를 받아야 보탤 수 있으니까요." 

"그르나. 내사 마 머가 좋은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살림하는 니가 제일 힘들지. "



친정엄마의 걱정은 한층 수위가 높다. 사위한테는 '자네가 그렇게 신경을 쓰고 없는 시간 쪼개 영어공부를 해쌌더니 내 합격할 줄 알았네.' 하며 한바탕 축하세례를 퍼붓더니 정작 딸 앞에서는 애가 닳는다.  

"내가 요즘 너네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뭐가, 엄마."

"그 큰 살림을 어떻게 처분하고 가냐고. 엄마 생각에는 큰 방 하나에다가 가구며 짐 싹다 몰아넣고, 나머지 방이랑 거실만 월세로 내놓던가 혀. 대학생이라면 충분히 와서 살 수 있잖어. 너라도 대학생 때 그런 집 있었으면 좋지 않았겄어? 내 생각엔 그게 최선인 거 같은디."

"어차피 우리집 가구 중고로 사거나 주워온 게 대부분이라 버려도 크게 아까울 건 없어."

"엄마 말 잘 새겨들어. 1년 금방이여. 그 짐 다 버리고 갔다가 금세 후회헐 걸. 소쿠리 하나까지 살림살이 새로 장만하는 거 장난 아녀."



살림을 해 본 이라야 살림의 무게를 아는 법. 겨우 네 식구 밥 지어 먹이는 살림이라고 결코 만만히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쉽게 오지 않을 기회요, 눈앞에 펼쳐진 꿈의 여정 앞에서 자꾸만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내가, 그런 내가 영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 내내 의기소침했는데, 나랑 마음이 똑 닮은 두 분 어머니와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비로소 나의 입장이 이해받는 기분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굳은 마음이 사르르 풀어진다. 


   



그렇다. 결국 돌고 돌아 집에 관한 고민인 것을. 이참에 용기 있게 이사를 감행해 볼까도 싶었다. 집을 처분했다가 돌아와 새 집을 구한다는 다소 거친 구상이긴 했다. 집 문제를 두고 남편과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니 먼발치에서 촉을 세우던 아들이 슬며시 대화에 낀다. 

"이 집에서의 생활이 이게 마지막이라면 저는 마지막 내딛는 한 발자국까지 사진으로 남길 거예요." 

그 말을 내뱉는 아이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아, 집은 너에게 그런 존재였구나. 하긴 너만 그런 게 아닌데. 정말로 이곳을 뜰 마음이 있었다면 우리가 지난 10년간 한결같이 붙박이처럼 지내왔을까. 언니 동생하며 지내던 친한 이웃들이 죄다 학군이다 뭐다 하며 동네를 떠날 때 우리만 꿈쩍 않고 이곳에 남지 않았나. 그것만 봐도 우리 가족에게 이 집은 그저 부동산의 의미만은 아니었던 게지. 


 

"아니야, 아니야, OO야, 우리 이 집으로 돌아올 거야. 이사 하더라도 일단 돌아와서 여기 살면서 고민할 거고. 엄마 아빠가 그냥 해 본 소리지."

우리는 결국 집을 베이스캠프로 남겨두고 떠나기로 했다. 현재로선 이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이었다.





집은 월세로 내놓기로 했다. 생활의 짐은 빼더라도 가전과 가구는 남겨두기로 했다. 일명 '풀옵션(full furnished)'이 되는 셈인데, 이 결정은 어쩔 수 없이 입주민의 범위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가구와 물건이 꽉 들어찬 집에 일반 가정이 들어오기는 힘들 테니까. 대신 우리 아파트 인근에 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입지적 조건을 활용해 최대한 대학생을 겨냥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단지 내 부동산을 방문했다. 살이 두둑한 애플힙을 좌로 또 우로 흔들며 콧노래를 부르며 단지 이곳저곳을 오가는 걸로 유명한 중개인 아저씨가 지루한 시간을 견디느라 반은 안고, 반은 누운 자세로 의자에 파묻혀 있다.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우리 가족의 상황을 설명했건만 그는 내가 내놓으려는 매물에 관심조차 없어보인다. 2년을 계약하고도 더 살려고들 하는 판에 누가 1년 계약을 하려 들겠느냐는 둥, 가격을 더 다운시키거나 조건을 맞춰주면 혹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둥 사부님이랑 잘 상의해서 다시 오란 식의 말만 되풀이한다. 내가 아저씨 엉덩이 살랑거릴 때부터 알아봤어요. 간절함이란 당최 찾아볼 수 없고, 방 빼주는 데에도 전혀 의욕이 없으신 게, 매물도 골라가며 받는 모양이지요?   



이곳 부동산을 통해서는 적임자를 찾기가 퍽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미쳤다. 아파트의 입지가 구석진 곳인데다 굳이 대학생이 발품 팔아 아파트 매물을 보러 올까 싶었다. 내친김에 대학생이 수시로 오가는 길목 쪽의 부동산 문을 두드렸다.

"제안하신 가격이면 나쁘지 않고요, 8월 초에 방 뺀다 하셨으니 시기도 적절해요. 보통 대학생들이 2학기 시작을 앞두고 방을 구하니까요."

"다만 지금 방을 내놓는 건 크게 의미가 없어요. 월세를 이렇게 서너 달 전부터 알아보는 사람은 없거든요. 한 달 전이라면 모를까... 일단 이렇게 제가 적어놓을게요. 당장 연락이 안 간다고 해서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 조건이면 구할 수 있어요." 



비로소 부동산 중개인의 확언에 마음이 놓였다. 언제가 됐든 방이 순순히 빠질 것을 전제로 슬슬 살림살이를 처분하자꾸나 싶었다. 양가 부모님께는 그 길로 전화를 드려 집을 월세로 내놓기로 했다고, 부동산 중개인 말로는 방이 무리 없이 빠질 거라고, 최대한 안심을 시켜드렸다. 다만 가구를 제외한 세간만은 차차 처분해야 하는데, 영 버리지 못할 물건만은 꼭 좀 맡아주셔야겠다고 앞선 부탁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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