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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May 21. 2024

살림이 키워 낸 이야기들

모든 도전을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을 것들에 대하여 

우리 집 어린이의 세계에 '수렴'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제 방과 수납 가구를 그득하게 채운 하고 많은 물건들이 아이의 취향과 관심사, 그가 품은 모든 가능을 말해주는 듯하다. 한 마디로 아이 물건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이 아이가 꿈꾸며 바라보는 세계의 지평은 어디까지인지, 오직 발산, 발산, 무한대로 뻗어가는 물건들에 나는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요즘 딸아이는 '랜봉'과 '랜박'의 세계에 빠져 지낸다. '랜봉'은 '랜덤봉투', '랜박'은 '랜덤박스'의 줄임말로, 인스, 도무송, 떡메, 그리고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필요한 각종 팬시를 일정 크기의 봉투나 박스에 임의로 담아내는 일이다. 아이는 친구들과 랜봉, 랜박을 주고받는 일에 여념이 없다. 집에 돌아와서는 작업에 몰두하느라 여느 사업자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랜봉을 하려면 손톱이 예뻐야 해."

아이의 말을 빌자면 이런 얘기였다. 팬시를 고르고, 넣고, 포장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자면 손 매무새가 돋보여야 한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길로 네일 아트에 필요한 각종 아이템을 들였다. 여린 손톱에 차마 매니큐어를 허락할 수 없어 네일팁과 스티커 등을 구해주었다. 그렇게 아이의 성장과 함께 필수불가결한 물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간다.





아이의 늘어나는 물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때가 왔다. 남편이 바닥을 밀러 아이 방에 들어갔다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돌아나왔고, 널브러진 팬시에 파묻혀 정작 아이가 찾는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1년간의 미국 거주 계획은 방정리의 훌륭한 명분이 되어 주었다. 이쯤 되니 딸아이도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저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TV 프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여느 사례자와 같은 상황이었다. 정리정돈 전문가의 손을 거친 공간이 믿기 어려울 만큼 말끔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던 장면들이 스쳤다. 나는 기꺼이 힘을 보탤 준비가 되어 있었고, 몇 시간 후 아이 방도 그리 될 거라 확신했다.    






우리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대망의 판도라를 열었다. 의외로 아이는 손에 꼭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선선히 놓아줄 줄 알았다. 다리가 빠져도 꼭 끌어안고 있던 플라스틱 인형 쥬쥬와 드디어 작별인사를 나눴다. 더는 읽지 않는 책들과 때가 지난(그러나 상태 말짱한) 문구, 완구는 우리 동 앞에 내놓아 꼬마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마침 7월에 학급에서 벼룩시장이 열릴 거라 했다. 아이는 친구들이 좋아할 거리들을 챙겨 기분 좋게 꾸러미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의 포장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과연 랜봉, 랜박 세계의 숙련자다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잉여의 물건을 걷어낸 자리엔 아이가 지나온 과정을 말해주는 많은 것들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열 권이 넘는 일기장과 숱한 편지 조각들, 모래알 같은 비즈알을 일일이 꿰어 만든 팔찌와 목걸이들. 그 작은 손으로 쓰고 그리고 오리고 이어 붙인 결과물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툭하면 친구를 불러다 학교 놀이를 하더라니, 수업 내용도 받아 적고, 시험지 풀이도 하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하며 반성문도 써낸 A4 이면지도 한가득이었다.



학교에 가도, 놀이터에 나가 봐도 또래 중에 유일하게 폰이 없는 아이. 오롯이 손과 몸을 놀려 정직하게 마주했어야 할 숱한 시간들. 그 길고 지루한, 때로는 외로운 시간을 한 마디 불평 없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낸 아이가 무척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이 방을 어찌해 보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였던 나는 아이가 여태 성장하며 지나온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순히 어질러진 물건을 치운다거나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는 수준의 작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곁에 두고도 늘 그리워했던 나의 작은 아이. 그의 숨결과 낱낱의 모습이 아이가 쓰고 그리고 오리고 붙여낸 결과물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맞아, 그때 이런 걸 그렸었지.", "재밌었겠네", "이 작품 참 좋다" 하며 딸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참 많이 나누었다.  



아이는 성큼 자라 있었다. 오히려 버리지 못하는 쪽은 내 쪽이었다. 종이 귀퉁이에 새겨진 작은 그림에조차 마음을 뺏겨 나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급기야 "OO야, 이건 엄마가 따로 떼어 보관하면 안 될까?" 하며 통 사정하는 꼴이었다.  



집안 공간을 비워내야 한다는 커다란 과제 앞에서 자체 생명력으로 꿋꿋이 살아남은 것들, 그것은 어떤 시험과 도전을 마주해도 끝까지 살아남을 삶의 고갱이였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애틋한 역사가 이 소박한 살림 뒤에 숨어 가만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다정한 숨결이 나의 작은 아이를 향한 끝모를 그리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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