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현 May 14. 2024

소비의 숨구멍

소비 단식 말고 소비 절식

요즘 같아선 마시멜로 실험의 참가자가 된 기분이다. 코앞에 놓인 폭신하고 달콤한 디저트 앞에서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할까 속으로 갈등하고 번민하는 중에 누군가는 옆에서 '지금 이걸 참고 견디면 조금 후에 더한 보상을 준다'라며 격려하고 있다.   



결국 나는 마시멜로 같았던 일상달콤한 소비를 자제하기로 했다. 철저히 소비를 끊기란 애초 불가능한 일, 대신 소비의 규모와 빈도를 줄여나가자 마음먹었다. 소비 단식, 혹은 절식에 대한 다짐이 절실한 시기이기도 했다. 살림 처분에 부쩍 열을 올린 덕에 제법 많은 물건이 팔려 나간 상황이었다. 문제는 공간에 여유가 생기고 집안 곳곳이 헐렁해지는 틈을 타 새로운 물욕이 자꾸만 뚫고 올라온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구매욕을 일으키는 물건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 시점에 꼭 필요한 물건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기로 했다. 그것이 당장 사지 않으면 안 될 물건이란 판단이 선다 해도 '수개월 내에 해치울 수 있는지'의 여부를 한번 더 묻기로 했다. 소비욕은 끌리는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일차원적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욕망. '필요'를 가장한 욕망이 '합리'를 앞서지 않도록 여러 차례 자기 검열을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 한들, 당장 손에 움켜쥐고픈 물건을 눈앞에 두고 소비 욕구의 민낯을 철저히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때와 필요에 맞는 소비란 일상에 윤활유 노릇을 하게 마련인데, 하루 또 하루의 삶이 전에 없이 윤기 없고 뻑뻑하게 느껴졌던 건 아마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소비 절식이라는 족쇄에 메여 많은 자유를 내어주었다는 억울함. 통제되고 억눌려 답답한 마음. 고백하자면 이것이 요 근래 나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절제된 소비에 숨구멍이 필요했다. 소유의 기쁨을 맘껏 누리면서 정해진 기한 내에 확실하게 비워낼 수 있는 소비 영역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조금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정답은 먹거리였다.



종종 무언가를 먹을 때 '먹어치우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하지 않던가. 그렇다. 먹어치우는 일만큼 확실한 소비는 없다. 이것은 꽉 막힌 소비에 숨통을 틔워주는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완벽히 여며 입은 셔츠의 첫 번째 단추를 푸는 일. 어쩌면 답답한 소비 생활에 환기가 되어줄 만한 일일지 몰랐다.



평소 온라인 생협 자연드림몰을 이용해 장을 봐왔었다. 상품의 맛과 영양이야 무엇에 비할 바 아니었으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배송이 꼬박 삼사일은 걸린다는 점이었다. 주문 후 한참지나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내가 무슨 식재료를 주문했었는지 까먹기가 다반사였다. 매일의 신선한 식재료를 만나는 기쁨보다 랜덤박스를 개봉할 때 맛보는, 의외의 즐거움이 더 컸달까.



생협 온라인 몰의 이용을 줄이고 매일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날그날 해먹(이)고 싶은 요리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냉장고 속 식재료를 파악한 뒤 매일 장을 보는 식이었다. 오가는 길에 백화점 식품 코너나 식자재 마트에 들러 신선한 식재료의 빛깔과 질감을 눈과 손으로 확인하고 직접 골랐다. 재료는 되도록 소량으로 구입해 남김없이 요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어김없이 새로운 장보기에 나섰다.

 




확실히 주방 용품과 옷 소비가 줄었다. 도서는 구입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심지어 독서 동아리에서 지원해 주는 도서 지원비조차 반납했다.) 대신 냉장고 속은 전에 없이 신선한 냉기가 돌고 있다. 나 자신과 식구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지어 먹이는 일은 언제라도 권장할 일이다. 먹거리 구입에 약간의 사치를 부리는 날조차 이렇다 할 죄책이 없는 걸 보면 이만한 착한 소비는 없는 것 같다.  



매일 밥상에 올릴 식재료를 구입하는 와중에 간간히 미국에 들고 갈 먹거리를 사 모으고 있다. 건미역과 다시마, 건나물과 건시래기, 황태포와 김. 원래 주부란 (질 좋은) 마른 것들을 보면 절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게다가 이것들이 저 미국 땅에까지 가서 효자 노릇을 할 줄 누가 알았겠나. 무게나 부피가 안 나가는데다 이국땅에서 한식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니 양껏 챙겨볼 참이다. 조만간 은색 빛깔이 도는 국물멸치도 한 상자 구입해야 겠다.



여전히 하얗고 폭신한 마시멜로를 보면 군침이 돌지만, 대신 식탁의 즐거움을 누린다. 행복의 새로운 물꼬를 튼 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