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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May 28. 2024

반려의 존재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반려(伴侶)'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반려인,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용품. 하다 못해 반려돌까지 있다. 한낱 돌멩이가 어떻게 반려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관조 대상인 ‘수석’과 달리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가까이 두고 ‘기른다’는 뜻에서 지어진 명칭이란다.



'짝이 되는 동무'. 이것이 사전이 일러주는 '반려'의 뜻으로, 곱씹을수록 그 말뜻이 정겹기만 하다. 짝꿍은 모름지기 둘이 하나 된 사이가 아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서로에게 각별한 존재. 한 책상에 앉아 공부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종일 수다를 떨어도 그저 좋은 친구. 화장실 그 비좁은 칸을 짝꿍과 함께 들락거렸던 어린 날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그만큼 '반려'의 존재란 생활에 밀접하고도 고도로 친밀한 대상인 셈이다.





집안 반려의 존재들이 부쩍 자기 존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생활용품이 하나둘 빠져나간 자리에 반려의 존재만은 여전히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덜 중요한 순서대로 짐을 들어내게 된다면 필시 마지막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말 것들이다.



비로소 반려 존재들의 가치가 크게 실감 난다. 그것들의 몸값은 이미 상당해서 단순히 '처분'이나 '판매'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어디 좋은 곳, 다정한 주인의 품으로 입양 보낼 수 있을까,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 '반려'라는 말 뒤에는 책임이 따르는 탓이다. 그들의 거처를 두고 오래도록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 이것만이 여태 삶을 공유한 둘도 없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줄로 안다.  




먼저 아들의 반려동물 구피에 대한 이야기다. 구피가 가야 할 곳을 두고 우리의 고민은 끝이 없다. 작년 초 아들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치어 두 마리를 받아 온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는데, 새끼를 치고 또 치면서 그새 수가 불었다. 언뜻 보면 생김이 비슷하나 두 아이의 애정 어린 눈에는 하나같이 개성을 입은 물고기들이다. 꾸부리(허리가 구부러져서), 오렌지(꼬리 쪽이 주황 빛깔을 띠어서), 뚱이(뚱뚱해서), 이쁜이(꼬리 색이 유독 아름다워서)..., 아이들은 모양과 특징에 맞게 제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시간 간격을 두고 꾸부리와 뚱이가 생을 마감했다. 관리의 소홀은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약하게 태어난 친구인 거 같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진 않았다. 이불이 흠뻑 젖도록 눈물을 쏟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었는데.



어쨌거나 아파트에 사는 친구 한 명에게 구피를 보내 주자는 쪽으로 계획의 큰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그게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서질 않는다고 했다. 친구 A는 동물은 좋아하지만 책임감이 없어 보이고, 물을 제때 갈아주려면 어른의 도움이 절실한데 B의 부모님은 많이 바빠 보인다 했다. C에게 줄까도 싶지만 그에겐 어리고 개구진 동생이 있다 했다. 최근에 그 동생 아이가 아빠 핸드폰을 변기에 일부러 빠뜨린 일이 있었던 걸 보면 구피도 손으로 잡아 괴롭힐지 모른다나 어쩐다나. 구피의 새 주인으로 여러 후보군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정만은 쉽지 않다.


   



초여름 문턱에 서서 문득 고개를 드니 집안 곳곳 반려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3년 전인가.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아이비는 키우는 재미가 좋았었다. 연둣빛 보드라운 새순을 어찌나 부지런히 피워 올리는지, 눈만 뜨면 이쁜 짓을 하는 어린 아이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다.



크고 널찍한 잎사귀를 당당하게 뻗는 몬스테라와 갈수록 진한 향을 내뿜는 장미허브, 나날이 잎이 무성해지는 스킨답서스까지. 날마다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돌보는 일이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는데, 그들에 대한 책음을 더는 이어갈 수 없게 된 것이 이리도 슬픈 일이 될 줄이야.  



아들 방에 두고 보는 아레카야자가 그새 흙이 말랐다. 토분을 번쩍 들어 올려 가슴에 품고 세면대에 얹었다. ‘쏴- 쏴’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길고 가는 이파리들이 달게 해갈한다. '너는 분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녀석인데. 남은 날동안 안개비 자주자주 뿌려줄게', 나는 작은 말로 속닥였다.


  



집안 곳곳에 놓인 반려의 존재들에 대한 심정이 이러한데, 하물며 가족은 어떤가. 넷이 하나로 묶여 함께 짐을 꾸리고, 비행기에 오르고, 저 먼 곳에서 낯선 삶을 함께 살아내야 하는 우리. 우리 네 식구야말로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의식했던 날이 있었던가 싶다.



주변에서는 '외국 나가면 아이들이 안 돌아오려고 한다더라', '이러다 OO 씨가 기러기 아빠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식의 우려 섞인 말들을 건넨다. 평생을 반려의 존재로 살아온 우리가 쉽지 않은 아픔과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떨어져 지내야 할 일이라면, 그 명분은 여간 커다란 명분이지 않을까,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남편이 방문 학위과정을 이수하게 될 대학에서 DS-2019(J비자 발급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보내옴에 따라 곧바로 비자 인터뷰가 잡혔다.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건가 싶어 마음이 초조하다. 헤어짐을 염두에 둔 순간 불쑥 애틋해지고 만 나의 소중한 존재들. 우리에겐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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