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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un 11. 2024

알바를 정리했습니다

비자 발급 받은 날

2비자 인터뷰를 마쳤다. 방문 연구원으로 가는 남편은 J-1, 그의 동반인인 나와 아이들은 J-2 비자 발급 대상자였다.



남편과 나는 미 대사관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섰고, 70여 분의 기다림 끝에 3분 인터뷰를 마쳤다. 온라인으로 가장 이른 인터뷰 시간대인 7시 30분으로 예약을 걸었지만, 정작 인터뷰 창구가 열린 건 8시가 지나서였다.



기나긴 대열 속에서 우리는 긴 시간의 불합리를 묵묵히 견뎌야만 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불평이나 볼멘 소리 한 마디 내뱉는 이는 없었다. 미국에 얼마간 머물 권리를 갈구하는 이국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철저히 을의 입장이었으니. '목표한 바를 얻어낼 수만 있다면야 그게 대수냐', 저들도 우리 부부처럼 꼭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긴 기다림의 끝, 너댓개 되는 인터뷰 창구가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방문이 달린 방에서 면접이 이뤄지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타인의 인터뷰 장면이 훤히 보였다. 바로 눈 앞 창구의 분위기는 실로 엄했다. 영사는 대상자에게 두 배속 거침없는 말투로 질문들을 쏘아붙였고, 여성은 질문의 요점을 제대로 파악 못한 채 변죽만 울려댔다. 말로만 듣던 비자 거절 장면을 코앞에서 목도하다니. 어쩔 줄 몰라하며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여성의 상황이 내 일처럼 안타까웠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질의응답은 순조로웠다. 워낙에 출국 목적이 분명한 데다 공인된 스폰서를 둔 덕이었을 게다. 질문들은 주로 서류상에 기재된 정보 확인을 위한 내용이었고, 남편은 잘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다. 그렇게 인터뷰는 큰 무리 없이 끝났다. 그럼에도 새벽부터 온 신경을 쓴 탓에 나는 위장에 탈이 나고 말았다.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비자 인터뷰였다.






비로소 오늘 비자를 손에 넣었다. 인터뷰를 치른 지 꼭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비자 발급이 갖는 의미는 컸다. 애초에 미국 생활을 바란 것이 아니요, 남편 탓(?)에 하는 수 없이 가게 되었다며 마치 끌려가는 사람처럼 (속으로) 항변해 왔는데, 언제까지 그런 식일 수는 없었다. 오늘 손에 쥔 비자는 비단 그만의 비자가 아니요, 나의, 그리고 두 자녀 각각의 것이기도 했다. 그 어렵다는 비자가 발급된 이상 더는 이곳 생활에 미련을 품고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알바를 정리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커피값만 벌자며 시작했던 청소 알바가 그새 세 군데로 늘어 있었다. 청소는 보통 하루 한 건, 많아야 두 건이었지만 힘을 바짝 몰아 쓰는 일이다 보니 체력 소모가 컸다. 예상보다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물건 하나를 처분하려 해도 사진을 찍고, 설명을 달고, 구매 상대와 챗을 주고받을 시간이 필요한데 그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장님, 저희 가족이 1년간 미국에 나가게 돼서 이번 달까지만 일하게 됐어요. 좋은 분 찾으셔야 하니 조금 일찍 말씀드려요."

"그래요? 이거 청천벽력인데요?"

구슬알같이 크고 동그란 남사장님의 눈이 유례 없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눈인사만 건넬 정도로 말수가 으신 분인데, 알바 아주머니가 일 그만둔다는 말에 분명 '청천벽력'이라 하셨겠다. 그만큼 이분이 나를 믿고 신뢰하셨구나. 가슴이 조금 뭉클해졌다.



저녁 무렵에는 여사장님으로부터 장문의 톡이 왔다.

'너무 아쉽지만 좋은 기회로 가시는 것이니 축하드려요. 저희 가족도 20년 전에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었는데 큰 경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좋은 추억 많이 쌓으세요. 남은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지난 8개월간 좋은 분들 만나 맘 편히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새삼 감사했다.(이곳에 전부는 언급하지 못했지만, 다른 알바처 역시 그렇다.) '한국 돌아와서 다시 일하고 싶어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알바비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내게 안겨 준, 나의 알바는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소중한 일자리 외에도 미국행을 앞두고 내려놓아야 할 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나의 작고 소중한 살림은 물론이거니와 더는 이어갈 수 없는 크고 작은 모임과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점차 노쇠해 가는 부모님과 나이 90이 넘은 할머니를 두고 가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려운 마음이 든다. 이토록 소중한 것들과 맞바꾸게 될 미국살이라니, 뒤집어 생각하니 그것은 보통 귀한 기회가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약속한 근무일수를 다 채우고 나면 곱게 집안에 들어앉아 작정하고 살림을 정리할 참이다. 비행기에 실어 나를 짐도 하나 둘 꾸려가면서. 모르긴 몰라도 진행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와 식구들의 삶을 여태 지탱해 준 소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가며 그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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