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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ul 02. 2024

냉장고 한 대로 줄이기

냉장고를 비워낼 수 있다면

매일 삼시 세끼를 치러내는 집에서 냉장고 두 대는 필수라 여기며 살아왔다. 하루면 문을 50번은 열고 닫는 일반냉장고가 기본값이라면 김치냉장고가 분신처럼 그것을 보위했다. 우리는 명실공히 김치의 민족이니까. 김치 없이는 죽도 밥도 못 먹는, 고구마 한 알을 까먹을 때조차도 총각무 한쪽이 간절해지고야 마는 그런 확고한 취향의 민족.



그렇다 해서 김치냉장고에 김치만 두란 법은 없다. 그것은 저장고의 쓸모에 가깝다. 쌀, 건어물, 밀가루를 보관하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다. 사과같이 오래 저장해 두고 먹는 과일도 일일이 신문지로 감싸 김치통에 넣어 두면 마지막 한알까지 아삭하게 즐길 수 있다. 매일의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김치를 비롯, 과일, 분말류, 마른 식재료 등을 장기 보관할 수 있으니 김치냉장고야말로 필수 중 필수 가전이라 본다.   





네 식구 밥 지어 먹인다고 냉장고 두 대를 공식처럼 달고 산 세월이 무려 13년. 그 중 하나인 김치냉장고는 식자재 장기 보관이란 목적에서 볼 때 는 제 기능을 다한 셈이다. 이 집에서 살림을 꾸릴 기한이 한 달 남짓이니 더는 식재료를 오래 둘 필요가 없다. 마침내 김치냉장고를 비워내야 할 날이 온 것. 가뜩이나 크게 오른 전기세로 부담이 컸는데, 냉장고를 한 대로 줄이면 전기세는 얼마나 줄까? 우리 집 주방 살림과 식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주방 살림을 살면서 이번 실행처럼 큰 도전이자 모험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가장 먼저 김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는 곧 김치의 양을 조절한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김치는 친정에서 공수해다 먹는데, 마침 남은 김치 양이 한달을 나기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 보였다. 엄마께 전화를 드려 김치를 더는 보내지 마시라 말씀드렸다.



냉장고 속 식재료를 본격적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작정하고 비워낼 요량이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해 먹을 줄 몰라 방치 중인 미역귀는 잘게 잘라 밥 위에 올려보았다. 톳이나 다시마를 으레 냄비밥 토핑으로 활용하듯이. 오직 재료 처분을 위해 시작한 조리였지만 의외로 맛이 좋았다. 미끈하고 물컹한 미역 질감과 달리 오독오독 씹히는 재미가 전혀 다른 미식 세계를 맛보여 주었다.



삼사일에 한 번꼴로 식혜를 끓여 그 많던 엿기름을 다 소진했다. 덕분에 우리 집 식혜 귀신들만 신이 났다. 잣은 워낙에 귀한 견과라 샐러드나 수프 고명으로 겨우 한 꼬집씩 놓아 먹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냉장고를 비우면서 한 움큼씩 집어다 아침마다 죽을 끓였다.



녹두는 냉장고 속에서 몇 해나 묵어 있었는지 그것의 카키 빛깔만큼이나 빛바래 보였다. 녹두는 닭죽에 삶아 넣으면 맛의 풍미를 확 살려주는 재료임에도 미리 손질해 두지 못한 탓에 번번이 그 타이밍을 놓치곤 했던 것이다. 무작정 녹두부터 삶아 저장했다. 그리고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드디어 녹두 닭죽을 끓이는 데 성공했다.



장마철이 되면서 밀가루, 부침가루, 쌀가루 소진이 가속도를 탔다. 비 나릴 때마다 부추도 굽고, 김치전도 지지고, 쌀카스텔라도 시시로 굽다 보니 각종 가루들이 금세 동이 났다.



말린 표고나 아로니아, 강황 가루처럼 영원히 손이 가지 않을 식재료는 이웃에게 건넸다.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어찌 그리 끌어안고 살았는지. 냉장고 관리에 해서는 '언젠가는' 은 결국 '영영'의 다른 표현임을 진즉 인정했어야 했다.    






멸치 서너 팩과 뱅어포 몇 봉, 곱창김 두 세트가 끝내 남아 일반 냉장고로 옮겨졌다. 굳이 이곳에서 다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죄다 미국 가는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식품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김치냉장고의 전원을 껐다. 냉장고가 이 집에 자리잡은 이레로 처음 꺼진 불이었다. 이 대단한 사건에 나는 모종의 희열을 느꼈다.



모르긴 몰라도 냉장고 한 대의 전원을 끈 일이 대단한 효능감을 안겨주었다. '식(먹을 식)'의 상징인 냉장고를 기꺼이 비워낼 수 있다면, 그렇게 네 식구 '먹고 사는 일'의 규모를 줄일 수 있다면, 살림이라는 이름으로 한껏 벌여놓은 다른 영역의 일 또한 당차게 정리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길 봐도 그득, 저길 봐도 그득 채워진 살림이 과연 끝이 나기나 할까, 심적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남모를 용기가 솟아났다.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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