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아선 정신이 몸 안에서 쏙 빠져나와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혼이 빠져서' 라는 관용구가 실제일 수 있음을 몸소 경험하는 중이다. 당근마켓 매너온도 최고점인 99˚C를 찍은 내가 근래 들어 저지른 만행을 한번 들어보시라.
물건을 사겠다고 집 앞까지 찾아온 이웃을 뻔히 바람 맞혔는가 하면, 문고리 거래로 드림하기로 한 동화 전집을 현관 선반에 내놓고는 구매자에게 안내하는 일을 까막 잊어 사달이 났다. 반값택배로 부친 물건이 엉뚱한 편의점으로 가 있을 건 또 뭔가. 이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생각지 못한 거래 뒷수습을 하느라 애매한 에너지를 써야만 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살림은 드라마틱하게 줄지 않았다. 집안 곳곳 시선을 두는 곳마다 빠른 처분을 기다리는 숱한 존재들이 정신을 괴롭게 한다. 우리 가족의 안녕과 편의를 위해 들인 물건들이 별안간 등을 돌려 나를 향해 총대를 겨누고 있는 기분이다. 지인들 앞에서는 짐짓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는다. 아직 처리 못한 수두룩한 물건들, 그것들이 솔드아웃 되기 전에 타임아웃이 먼저 오면 어쩌나 안절부절이다.
이런 막막함 속에서 크고 작은 생활의 의무가 에누리 없이 계속된다는 건 꽤나 잔인한 일이다. 이른 아침 남편과 아이들이 가방을 둘레 메고 집 밖에 나서면 나는 집에 남아 어김없이 뒷정리를 한다. 세탁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겨우 비워낸 냉장고가 그새 허전해 새 일용할 양식을 채우기 반복한다. 이전의 생활을 여일하게 이어가면서도 살림의 규모를 줄여 나가는 일. 이것이야말로 주부에게 부과된 최대치의 과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건조대에 걸려 축 늘어진 장마철 빨래가 유독 마음을 심하게 짓누르는 날이다.
비가 쉬지 않고 내리는 오늘 같은 날 지하철에 혼을 빼고 앉아 있다가 우산을 놓고 내렸다. 제발, 하고 바랐던 게 무색할 정도로 개찰구를 빠져나오니 빗줄기가 한층 굵어져 있었다. 그 많은 비를 다 맞아가며 터덜터덜 길을 걷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무런 방비 없이 해외 생활에 나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된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인 것만 같아 처량하게 느껴졌다.
문득 베란다 창은 물론이고 방방마다 달린 창문을 활짝 열어둔 일이 생각났다.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돌아와 보니 다행스럽게도 베란다 바닥만 조금 젖어 있었다. 맞아. 아무리 세찬 비라도 빗물이 들이치는 창은 따로 있어.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든 이와 같이 피할 길이 있겠거니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출국 준비에 대한 압박이 더해가는 이 시점에서 소소한 당근 거래는 줄이고 나눔이나 위탁 식으로 남은 살림을 큰 선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시한부 살림> 연재를 위해 글감을 고르고, 문장을 지을 때만큼은 정신줄을 붙잡게 된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살림이 서툴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밥을 지으며 글도 짓는 사람이라는 게 크나큰 위안으로 다가오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