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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un 25. 2024

신문 구독을 끊다

OO신문 구독을 끊기에 이르렀다. 남편이 OO신문사로 이직하면서 시작한 신문 구독 햇수가 그새 7년째다. 이전 신문을 받아보던 것까지 따지면 도합 13년차, 신문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객님, 신문 받아보시면서 어떤 불편한 점이 있으셨어요?"

신문을 더는 넣지 말아 달라는 요청에 상담원이 물었다.

"제가 곧 해외를 나가야 해서, 더는 신문이 쌓이면 안 되거든요."



종이 신문의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꽤나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간 쌓여 가는 신문을 처리하느라 고충이 컸다. 물론 어느 정도 쌓이면 분리수거장에 내다 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월 2만 원씩 따박따박 내고 보는 신문을, 어떤 날은 우선순위에 밀려 아예 들추지도 못하는데, 성큼 집어다 내놓기가 쉽지 않다. 식재료를 다듬거나 기름 요리를 할 때 신문지만큼 요긴한 게 없지만 사용량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큰 살림을 하는 엄마집만이 신문지의 유일한 배출구였다. '내려올 때 신문 좀 가져와라' 하시면 그런 날은 트렁크가 미어지도록 신문을 실었다.



집안 곳곳 신문지산이 활화산처럼 생겨났다. 여러 개의 활화산을 감수하면서까지 종이신문 구독을 고집해 온 건 세상과 긴밀히 연결되고픈 숨은 욕구였을 것이다. 조간신문이 매일 일정한 시각 집 앞에 떨궈지는 데에서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매일의 신문지면은 화나는 일, 어이없는 일, 비참한 일들로 빼곡하기 일쑤였지만, 그 소식들이 잘 정제된 언어의 형태로 가가호호 독자의 집에 전달된다는 건 적어도 큰 범주의 사회 시스템이 아직 건재하단 얘기니깐. 그것은 '그럼에도 세상은 꺼지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일 테니까. 



그날의 종이신문을 받아들 때마다 나는 내 나라 공동체에 소속해 있음을 느끼곤 했다.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부터는 공동체가 처한 어려움과 고통에 무관할 수 없다는 걸 더욱 깨닫는다. 드물게 반가운 소식들이 전해지면 그로 인한 즐거움도 나누어 가질 줄 알게 되었다.



하필 구독을 취소한 날 카톡으로 ‘독자 인증 이벤트’ 알림이 떴다. OO일보의 독자임을 인증하면 100만 원 상당의 여행상품권, 식음료모바일금액권 등 푸짐한 상품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인증방식은 단순했다. 신문사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후 부여받은 인증번호를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뭐야, 이건 너무 쉽잖아. 나는 스스로 독자 인증을 마쳤는데. 겨우 1년 집 비우는 사이 구독을 취소하는 일로 애국심 따위 운운하는 것만 봐도 찐 독자 인증 아닌가.



신문을 끊는다는 건 나와 연결된 세상과 의지적으로 결연한다는 뜻일까. 조금 먼발치에서 나의 공동체를 바라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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