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라는 게 참 재미난 구석이 있다. 당근에 올린 지 반년이 다 돼가도록 상품 문의는커녕 하트 하나 안 달리던 물건이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팔려나간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제품 문의만 실컷 받다가 겨우 약속된 거래가 파투 나기를 반복, 결국 제풀에 지쳐 물건을 자체 처분한 게 여러 번이다.
바닥을 뒹구는 흔한 도토리를 주섬주섬 주워 담듯 내가 올린 물건을 한 목에 여러 개 집어드는 구매자야말로 가장 고마운 존재다. 그런 날엔 너무나 흐뭇한 나머지 계획에도 없던 가격 에누리도 척 해주고 덤도 슬쩍 끼얹어 준다. 얼마 전 집안 반려식물을 떠나보낼 때 그랬었다.
값도 얼마 받지 못할 거, 무게마저 상당한 화분을 일일이 어찌 처분하나 걱정이 앞섰는데, 식물 사진을 찍어 올리기가 무섭게 한 동네 주민이 챗을 걸어와 그 모든 걸 사겠다고 했다. '저도 충동(?) 구매를 하는 거고, 님도 한큐에 처분하시는 걸로 서로 부가가치 조정하는 차원에서.. ... 어떠세요?' 말투조차 명랑한 가격 에누리 제안에 나는 고민 없이 쌍따봉을 날렸다. 일일이 발품 파는 수고를 줄여 이 모든 화분을 수월하게 처분한 게 어딘가. 반려식물의 빈자리가 허전할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통쾌했다. 썩 팔리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물건이 예상 의외로 쉽게 거래되었을 때의 짜릿함이었을 것이다.
당근마켓과 중고나라에 매일 물건을 올려 팔면서 집안 공간이 눈에 띄게 홀가분해졌다. 그 와중에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르는 한 가지, 여태 팔리지 않은 물건이 있으니 다름 아닌 집이다. 오늘 기준으로 출국이 딱 보름 남은 시점에서 마음만은 초조한데, 이 덩치 큰 집만은 말 그대로 꿈쩍을 않고 있다.
얼마쯤의 보증금을 낀 월세 형태로 집을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물론 한 노부부가 찾아오긴 했지만. 부부의 아들이 (집 인근) 서울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머물 집을 구하는 중이라 했다. 문제는 이 집이 1년짜리 매물이란 점을 공인중개사로부터 듣지 못한 채였다는 사실이다. 아들이 3-4년 걸리는 박사과정에 들어가는데 1년 거주로는 어림없다며, '집만큼은 더없이 깨끗하고 좋네' 하는 말만 허공에 둥둥 띄워놓고는 홀연히 집을 떴다.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부동산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직방과 피터팬(네이버 카페), 당근마켓 부동산에도 그럴듯한 집 사진을 첨부해 매물을 홍보했다. 이 동네 반경을 벗어나 되도록 많은 지역 사람들에게 매물을 노출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실로 한 사람이 집을 보러 오겠다 했다. 나는 '이 집이 1년짜리 매물'인 것을 그녀에게 재차 확인시켰다. 여러모로 서로의 사정이 잘 들어맞아 보였다. 어쩐지 감이 좋았다. 약속한 날이 되었고 나는 아침부터 큰 손님을 들이듯 부산을 떨었다. 오전 내내 방방 공간을 단정하게 갈무리했다. 긴 장마로 이불에서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깔고 덮는 이불을 모조리 싸들고 인근 빨래방으로 달려갔다. 뽀송하게 잘 마른 이불이 세팅된 집은 마치 여행지 숙소처럼 산뜻하게 느껴졌다.
단 한가지, 아침부터 퍼붓던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약속한 이는 갓난아이를 키우는 중이라 도저히 비를 뚫고 오기가 어렵겠다며 다음날로 방문을 미뤘다. 다음날이 되었고, 그와는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다. 명백한 노쇼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중고거래의 의외성을 믿는다. 집이라고 크게 다를까. 절실함과 절실함이 만나는 곳에 스파크가 튄다. 물건을 파는 자와 사려는 자 모두가 절박한 상황 속 기가 막힌 심정일 때 거래는 기적적으로 성사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와 같은 간절한 마음을 가진 이, 바로 그 한 사람을만나려 목을 빼고기다리는 중이다.
오늘은 당근에 광고비를 들여 집 매물을 더 많은 지역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지면을 빌어 우리 집 매물을 소개해야 할까.
여러분, 제가 사는 집은 해가 잘 드는 정동향 3층으로 관악산을 향하고 있어서 공기가 매우 좋고 시원합니다. 제 아들이 어릴 적부터 심한 비염을 앓았는데, 이곳에 온 뒤로 자연치유 되었어요. 밤이면 밤마다 잠을 설쳐대던 아이가 지금은 정말이지 잠만 쿨쿨 잘 잡니다. 관악산역까지는 도보 3분 거리구요, 바로 코앞에 도서관과 문화재단이 있어요. 웬만한 가전과 가구, 주방 집기를 다 두고 가요. 이렇다 할 고급 가구는 아니지만, 대신 맘 편히 쓰세요. 아참, 쓸모 있는 주방 도구와 예쁜 그릇이 많아요. 몸에 좋은 음식 많이 해 드세요. 우리, 서로가 부가가치 조정하는 차원에서 쿨거래 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