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봄기운에 힘입어
샐러드용 채소 과일을 쪼개려는 도마 위로 볕뉘가 내려앉았다. 아일랜드 식탁 위치는 좀처럼 빛이 들지 않는 자리다. 나는 이내 그것이 봄볕임을 직감했다.
NC의 겨울은 길고도 지루했다. 큰 추위가 없는 곳이라던 이곳 날씨는 기온이 영하(32°F)로 뚝 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눈도 몇 차례나 펑펑 내렸다.
5년 만에 내린 눈이라고 했다. 하얀 눈꽃송이가 거짓말처럼 하늘로부터 나리던 날,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 (이 지역은 눈발이 흩날리기만 해도 학교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동네 아이들은 환호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잔디에, 나뭇가지에, 자동차에 소복이 쌓인 눈을 저마다 바삐 훔치는데, 눈을 뭉치는 솜씨들이 어쩐지 어설퍼 보였다. 어쩜 저 아이는 태어나 한 번도 눈을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는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해맑은 아이들과 달리 추위에 속수무책인 나란 어른은 몇 달째 썰렁한 미국집에서 긴긴 겨울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느 날은 온돌의 열기를 그리며, 또 어느 날은 올 여름 이곳 NC에 당도해 누렸던 환하고 강렬한 햇살을 추억하면서. 왜 한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는가. 여행지의 환경이란 예측불허한 것이요, 언제라도 상식을 빗겨갈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얻어낸 정보와 지식 안에서 모든 일이 순탄하기만을 바랐던 나는 여행자의 자세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었다.
집안에서 주방은 가장 차갑고 인정 없는 장소였다. 새벽밥을 짓기 위해 주방에 첫 발을 내디딜 때면 엄한 벌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낮이고 밤이고 썰렁함은 가실 줄 몰랐다. 살벌한 냉기를 몰아내기 위해 가스레인지와 오븐에 부지런히 불을 지펴야 했던 나는 현대판 성냥팔이 소녀나 다름 없었다.
그랬던 주방이 거짓말처럼 봄이다. 아침저녁나절의 적당한 한기를 감수하면 낮 동안은 역력한 봄이다. 여과지 한 장 없는 쨍한 하늘로부터 따가운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내 내린다. 집 밖을 실컷 쏘다니고 싶고, 온종일 걷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날들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봄날은 모순 덩이리다. 밖으로 나가자고 채근하는 봄볕이 동시에 발목을 잡는다. 갑자기 마음이 부산해지면서 살림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다. 볕 좋은 날 어떤 식으로든 몸을 쓰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주부의 양심이자 본능과도 같은 것이리라.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냉장고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냉장고 속 해묵은 식재료를 정리하고 더는 먹지 않을 것 같은 찬통의 음식을 비웠다. 나무도마와 조리도구, 칼과 커트러리 모두 볕을 보였다. 봄 햇살을 혼자 놀게 할 수 없다는 작은 일념이 집안 살림을 들썩이게 만든다.
낯선 삶을 살아내느라 잔뜩 웅크렸던 마음 한켠에도 환한 봄볕이 깃든다. NC에서의 삶이 제2막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그새 좋아하는 키친(식당)이 생겼고, 매일 일정하게 들러 차를 마시고 글을 쓰는 카페도 생겼다. 타주로 떠나는 여행을 겁 없이 즐기게 된 것도 소심한 성격의 내겐 대단한 변화다. 집안 살림마저 대담한 봄기운을 힘입어 가속도가 붙어 일상을 지내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불현듯 오늘의 봄 햇살이 가실까 두려워 졌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몸을 너무 많이 쓴 탓에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개나리처럼 노란 햇살 조명이 거실 소파에 아직 머문 것을 보았다. 잠시 노곤한 몸을 누이기로 했다. 1-20분 잠에 들었다가 반짝 깨어나면 영혼마저 햇살처럼 밝아져 있을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