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세계화에 무심했다면
배추를 소금에 오래 절이지 않고도 김치를 담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비로소 마음의 큰 짐을 덜었다. 포기김치를 담글 때야 배추를 절이느라 반나절씩 그 곁을 지키는게 예사였지만, 배춧잎을 숭덩숭덩 칼로 쪼개고 보니 배추 절이기는 넉넉잡아 1시간이면 될 일이었다.
포기김치에서 맛김치 담그기로의 완벽한 전향이었다. 김치냉장고도 없고, 냉장고 규모도 변변찮은 집의 여건을 봐도 느긋하게 익혀 먹는 포기김치보다야 자주 담가 빠르게 소진하는 맛김치나 겉절이가 옳았다. 김칫소를 한번에 넉넉히 만들어 두었다 쓰는 것도 힘을 아끼는 방법이었다. 쓰고 남은 양념을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김칫거리에 버무리기만 하면 그 즉시 김치가 완성되니 말이다.
손쉬운 김치 만들기에 재미가 들린 나는 틈만 나면 김칫소를 활용했다. 무를 깍뚝 썰어 깍두기를 담갔고, 오이, 상추, 양배추 등 가릴 것 없이 각종 채소에 양념을 입혀가며 가벼워진 김치 일상을 누렸다. 그런 내게 남편이 넌지시 물어왔다. '우리, 떨어진 김치는 언제 담글까' 하고. 그에게 김치란 이유불문 '배추김치'여야 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서는 '김치는 반드시 배추김치여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두고 심각한 논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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