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노아의 홍수도 아닌데

매일 줄을 넘는다는 것은

by 서지현

온종일 비가 내렸다. 아들이 노아의 홍수 얘기를 꺼냈다. 그정도로 쉼 없이 이어지는 비였다.

"노아의 홍수? 어림도 없지. 그때는 굵다란 빗줄기가 40일 밤낮으로 쉬지 않고 퍼부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물에 잠겨 죽었는데?"

라고 대답하면서도 하루 종일 퍼붓는 비가 야속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 놀 틈을 잠시도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넘기도 어림 없는 일기였다. 그러나 오늘 줄을 넘지 못한 것이 '비 때문인지', '비 덕택인지'를 곰곰이 따져 봤다. '비 때문이라' 하며 궂은 일기 탓을 하기에는 스스로 구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줄을 넘기로 작정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예외 사항을 둔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엄마, 더는 답답해서 집에 못 있겠어요. 노아의 홍수도 아닌데 그냥 우산 가지고 나갈래."

아들이 우산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오빠를 따라 딸아이도 비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있었다. 놀이터가 보이는 방 창문을 열고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집 남매가 나와 노는 모습에 용기를 얻은 모양인지 안전한 온실에 갇혀 있던 단지 내 아이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놀이조합대 아래 옹기종기 모여 우산으로 집을 짓고 놀기 시작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아이들 표정이 해맑아 보였다.



'그래, 노아의 홍수도 아닌데...이런 날 줄 넘는다고 물에 잠겨 죽을 일은 없을 테지.'

나는 우산과 비옷 대신에 줄넘기 하나를 어깨에 툭 걸쳐 맸다. 반쯤 물을 채운 물병을 챙겨들고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로 나갔다. 묘하게 흥분되기 시작했다. 누가 아는가, 색다른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지.



폭우 속에서 줄을 넘었다. 온몸이 비에 젖은 탓에 평소보다 몸이 무거웠다. 평소 넘는 분량의 줄을 넘고 나니 땀과 비가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그 둘은 확연히 달랐다. 더운 것은 몸이 정직하게 내뿜는 땀이요, 시원한 건 위로부터 몸을 후려치는 빗줄기였다. 운동 후 마시는 물이 유난히 달았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또 다른 맛이었다. 네 가지 종류의 물맛을 몸으로 느끼고 맛본 셈이다. 이게 뭐라고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조금 냉정해지자. 줄넘기는 내 일상의 루틴이다. 한 끼쯤 나가 먹건 배달음식으로 떼우든, 어쨌거나 식구들 입을 챙겨야 하는 주부의 피해 갈 수 없는 책무처럼. 그렇게 받아들이면 조금 쉬워진다.


매일 줄을 넘는다는 것은 매일의 상황과 핑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때로는 높아 보이는 벽을 뛰어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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