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넘으며 잡생각

매일 줄을 넘는다는 것은

by 서지현

오후 5시경 놀이터. 기우는 해를 등에 지고 여느 때처럼 줄을 넘고 있었다. 얼마 만인가. 긴긴 장마 끝에 맑게 개인 하늘이다. 하늘 빛깔이 너무 고와 눈을 자연스레 위로 두게 된다. '다목적 CCTV 작동 중'이라고 적힌 푯말이 시선에 와 닿는다. 사람 눈알을 닮은 렌즈가 박힌 CCTV가 10여 초 간격으로 고개를 뱅글거린다. 카메라는 놀이터 곳곳을 찍느라 분주하다.



일정한 박자로 줄을 세다가 하늘의 높은 채도에 빠져들면서 수를 놓쳤다. 잠시 생각이 멎었던 모양이다. 숨이 가쁘다는 것조차. 순간 어제 TV 채널을 돌리다 만난 한 여배우가 생각났다. 프리다이빙을 취미로 즐긴다는 이였다. 장시간 숨을 참아야 하는 것은 물론 두 배나 강한 수압, 그리고 급격한 체온 손실과 싸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왜?'라고 생각했는데 살포시 이해가 되는 것이다. '깊은 곳에 침수하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하긴 줄을 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가뿐 숨과 근육의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가끔 있다. 생각이 멎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특하리만치 멋진 생각들이 퐁퐁 솟아나거나.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신비한 체험이다.






어딘지 모르게 위협적인 CCTV 밑이라 그랬을까? 떠오르는 생각마저도 건전하고 기특하다. 아이들을 따라 놀이터에 올 적마다 줄을 넘기 시작한 건 무척 잘한 일이라는 것. 일부러는 올려다볼 일이 없는 맑고 투명한 하늘을 보게 되고, 그 멋진 하늘에 빠져 잠시나마 무아지경을 경험할 수 있으며, 땀 흘리며 운동하는 그럴싸한 자태가 CCTV에 당당하게 찍히게 되니 말이다.



놀이터 CCTV가 그 아래서 줄을 넘는 나를 가차 없이 찍어대는 중이다.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눈동자만 위아래로 굴려대는 모습보다야 훨씬 나으리라. 뒤뚱거리며 간신히 걷는 돌쟁이의 부모가 아니고서야 대개의 보호자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폰을 주무르게 마련이다. 언젠가 아들이 그랬었다. '호기심 딱지'라는TV프로에서 봤는데 휴대폰을 오래 하면 눈을 잘 안 깜빡이게 돼서 눈이 마르고 아프다고. 녀석은 에둘러 말했던 것이다. 그 말은 분명 나를 향한 경고성 발언이었다.



그렇다. CCTV보다 더 무서운 아이의 눈이다. '다목적 CCTV 작동 중'보다 더 의식해야 할 건 '엄마가 뭐 하나 다 보는 중'인지도. 아이의 행동이 부모의 눈을 벗어날 수 없듯 부모 역시 아이의 시선 안에 머문다.



줄을 넘으면서도 예리한 눈만은 아이의 안전을 수시로 살핀다. 가끔 와 부모를 살피는 아이의 눈과 마주친다. 아이는 이곳 놀이터에서 놀이를 도구 삼아 애써 자라난다. 나 역시 줄을 넘으며 부모로서 성숙해져 간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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