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시에스타(siesta)

뒤늦게 쓰는 거제 여행기(2020년 8월)

by 서지현
거제 숙소에서 느긋하게 한낮을 보내는 남매
쨍하고 맑은 일기가 수박 색감을 닮았다
숙소에서 바라다 본 거제 바다


널찍한 숙소 통창으로 소금기 실린 묵직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여행길에 오른 어른 넷과 아이 둘 모두가 나란히 누워 낮잠을 청했다. 우리의 쉼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마리 파리 빼고는. 방충망마저 열어젖힌 창을 통해 슬그머니 날아 들어온 모양이다. 이 작은 생명체마저도 바닷바람에 절여졌는가, 날개가 어쩐지 무거워 보였다.


다섯 시간이 넘는 도로 주행에 시달린 아이들이다. 바닷가에 나가 모래성을 쌓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 한잠 자고 나가자 했더니 순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양 팔에 한 명씩 아이들을 끼고 자리에 누웠다. 다 큰 녀석들이 머리칼을 쓰다듬어 달란다. 아이의 뻣뻣한 말총머리를 몇 번 쓸어 주었더니 쉽게 잠에 빠져들고 만다.


이 느긋하고 방해 없는 시간에 나만은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얼마만의 일이냐, 이 멀쩡한 여름 한낮, 혼자만의 여유와 한가가 말이다. 단 몇 시간의 온전한 자유를 위해 이곳 먼 곳까지 쉼 없이 달려온 것인가.



달리 할 일은 없다. 다만 두 눈을 빼꼼히 뜬 채 이번 거제 여행을 가늠해 본다. 부부만의 오붓한 여행이 아니요, 두 아이에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온 마당이다. 몸이 하나로 묶인 상황에서 모두의 취향을 반영할 수는 없는 일, 우선은 효도 관광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는 게 옳을 것이다. 성실하고 친절한 여행가이드 노릇을 해야 할까?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만한 유원지를 골라 촘촘히 동선을 짜고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야 할런지도.



아무리 부모님의 취향을 좇아 움직인다 할지라도 모두에게 만족스런 여행의 경험이 되어야 할찐대. 여정 가운데 서로의 취향을 알고 존중하며, 또한 그것을 구성원 모두가 누릴 수 있을지, 그것이 과제라면 과제다. 무엇보다도 식구들이 복작대는 가운데, 그것도 집이 아닌 유동적인 환경에서, 잠잠히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을 찾을 수는 있을까? 여간해선 쉽지 않을 것이란 추측에 혼자 깨어 있는 한낮의 이 작은 고요가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덧. 시에스타(siesta)란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이른 오후에 자는 낮잠 또는 낮잠 자는 시간을 말합니다. 더운 지역의 문화 풍습으로써, 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일의 능률을 올리자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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