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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Mar 16. 2021

집밥은 면죄부다

진하게 커피 한 잔 해야 하니까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주를 드셨다. 더도 덜도 아니고 소주 한 병에서 꼭 한 잔 분량을 남기는 양만큼. 크게 걱정할 수위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매일 드시기에 결코 적은 양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일정한 주량만큼이나 약주를 드시는 장소와 시간대도 일정했다. 아버지는 어쩌다 한 번 회식 자리가 아니고서야 퇴근 후 늘 집에서 술상을 받으셨다.



안주(按酒)는 적어도 곁들임 이상이었다. 닭백숙을 한 삼 개월 줄기차게 드시다가 물리기 시작하면 삼겹살이 상에 올랐다. 날마다 고기를 굽다가 그마저 특별할 게 없어지면 다음은 족발 차례가 됐다. 집에서 만든 족발은 캐러멜 색소로 색을 낸다는 족발집의 구릿빛 족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추장에 마늘, 참기름, 깨소금, 매실액, 사과즙 등을 버무려 만든 고추장 베이스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고기 안주를 몇 점 집어들진 않으셨다. 술상을 봐준 이에 대한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에서였던지 부인과 자식들에게 자꾸만 안주를 권하시곤 했다. 다만 아버지는 반주 함께하는 그 시간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것 같다. 그만큼은 아버지는 표정도 손놀림도 느긋해 보였다. 기분이 달아오르는지 평소 말수가 없으신 분이 말씀도 부쩍 많아지셨다.



아버지가 술상을 물리면 그제야 가족들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식사도 곧잘 하셨다. 고기 안주 몇 점과 적량의 반주가 식욕을 한껏 돋우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매일같이 술을 드시는데 안주를 신경써 챙겨드리지 않았더라면 진작 큰 탈이 났을 거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반주를 사랑한 내 아버지에게 집밥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정성스런 안주 덕분이든 약주 후 잘 챙겨 드신 저녁 덕분이든, 집에서 차린 밥상이야말로 아버지의 평생 건강을 떠받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전복 많이 전복죽으로 힘차게 시작하는 아침



묵은지볶음과 밑반찬으로 한 끼 밥상을 차린 날
골고루 손이 가는 밥상이 가장 건강한 밥상이라 믿으며

집밥은 어쩔 수 없이 수수한 차림을 할 때가 많다. 적어도 우리 집에선 그렇다. 어느 한 가지 메뉴가 밥상의 영광을 가로채기보다는 '그 나물에 그 반찬' 서너 가지, 그리고 맑은 국물 한 종류가 부담 없이 어울려 한 끼 밥상을 이룬다. 아이들은 소박한 집밥에 입맛이 길들여진 탓에 매끼 군말이 없다. 다만 남편만은 한 번씩 엇나갈 때가 있다.



"음, 우리 이거 먹고 야식은 뭘 먹을까?"

"야식? 지금 이렇게 밥을 먹으면서 야식을 생각해?"

"응, 저녁 간단히 먹고 맛있는 거 먹어야지."

기껏 차린 밥상이건만 밥을 딱 반공기만 달라는 남자, 밥알을 입안에씹는 와중에 별스런 메뉴를 고민한다는 이 남자에게서 배신감을 느꼈. 그의 말에는 분명 '집밥이 너무 담박해 썩 만족스럽지 않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그가 집밥을 '계륵' 취급했다. 때로 집밥은 '계륵'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계륵'이란 닭의 갈비로 '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니던가. 썩 달갑지 않으나 할 수 없이 먹어준다는 심산, 그것은 대체 뭔가. 남모를 수고를 들여 지은 집밥이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닭뼈다귀 취급을 받다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 집 주말의 식사 풍경은 재밌는 구석이 있다. 아침, 점심을 집에서 잘 차려먹고 나서 저녁밥 지을 걱정을 하면 남편은 세상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항변한다.

"뭐? 하루 세 끼를 집에서 먹는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렇게 바깥 음식이 좋으면 점심 저녁 두 끼 다 나가 먹지 그래?"

"그건 아니지. 저녁에 치킨을 먹으려는데 낮에 탕수육이랑 짜장면을 시켜먹으면 몸이 욕을 하겠지. 일단 점심을 집밥으로 채운 다음에 한 끼 정도만 외식을 해야 양심이 편치."



결국 집밥 좋다는 건 그의 몸과 양심과 영혼이 안다. 다만 마음만은 따로 노는구나. 그것이 병인 게로구나. 집 밖 세상의 미식을 탐하기 전 한 두 끼니의 집밥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걸어둔다? 아니, 당신에게 집밥은 그 이상이다. 안전장치를 넘어선 일종의 면죄부. 오, 집 밖과 집밥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방황하는 중생이여, 좌우지간 확실한 노선을 정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 좋은 꼴 못 볼줄 알라. 분에 차서 단단히 벼르는 중이다.            




아이들 만큼 내가 기복 없이 집밥을 짓게 만드는 확실한 동력이다. 각종 바이러스와 환경오염 등 유례없는 거대한 적들을 만나 하루하루 큰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아이들이다. 알 수 없는 더 큰 어려움이 언제 닥칠런지 모른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아이들에게 집밥은 보험이다. 보장성 높은 보험이다. 그런 믿음으로 오늘도 꿋꿋이 밥을 짓는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필요에 의해 집밥을 취할 때가 있긴 하다. 갈수록 커피가 좋아지고 진한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와중에 몸 걱정은 따로다. 뼈 건강을 위해서, 철분 결핍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집밥이라도 든든히 챙겨 먹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연유로든 우리 모두에게는 집밥이 필요하다. 집밥은 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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