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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an 18. 2021

집밥은 '쉬움'이다

콩나물 키우기가 제일 쉬웠어요

토분에 양파망을 깔고 콩나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가 끓인 콩나물국은 맛이 없을까. 이것은 한동안 나의 고민거리였다. 요리 고수들은 아마도 내가 새우젓으로 간을 하지 않아서일 거라고 했다. 혹은 육수를 좀 더 진하게 우려 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이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콩나물이 문제였다. 시중에서 사다 먹는 콩나물이란 게 질기고 고소한 맛이라곤 전혀 없는 게, 영 맹맛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콩나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토분에 양파망을 깔았다. 화분 구멍으로 콩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물 빠짐이 좋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갈무리한 콩나물시루에 하룻밤 충분히 불린 지눈이 콩을 넣고 빛이 들지 말라고 검은 천을 덮어준다. 이후로는 수시로 물을 주면 그만이다.



나 혼자서 콩나물을 키우는  아니다. 주방 식기 건조대 위에 콩나물시루를 올려두면 식구들이 주방을 오가며 이 놈이 한 번, 저 놈이 한번 그렇게 시나브로 물을 준다. 아이들은 커피 주전자에 물을 담아 물줄기를 빙빙 돌려가며 물 주기를 놀이 삼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시루 속 존재가 불현듯 생각나면 '쏴쏴' 시원한 물 주기를 들이대기도 하는 것이다.



새벽 모호한 시간, 원치 않게 잠이 깰 때도 있다.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보낸 하루에 어떤 미련이 남아서일까. 누리지 못한 자유가 애달픈 걸까. 읽다만 책장을 다시 들추기도, 휴대폰 SNS에 접속하기에도 석연찮은 시간,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꼭 하나 있다. 바로 콩나물 물 주기.



저녁 설거지를 하며 물 준 것을 끝으로 다음날 동틀 때까지 버려두곤 하는 콩나물이다. 어둠 속에서 자라나는 콩나물이므로 불을 켜지 않은 채 조리수 물을 가만히 튼다. 시루 속에서 고요히 잠자던 콩나물이 뜻밖의 때를 만나 해갈을 시작한다. 꿀떡꿀떡, 달게 물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잠에 취한 채로 엄마 젖을 힘차게 빨던 아이 목젖에서 듣던 바로 그 소리다.

  



아이 국은 순하게, 어른국은 매콤하게
돌솥 콩나물밥이 푸근하다


한밤중에 준 물로 콩나물이 껑충 자라났다. 조금 부족하다 싶게 자랐을 때 콩나물을 거두어 그것으로 콩나물국을 끓인다. 꼬숩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끓인 콩나물 국에 몇 숟  만 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어느 날은 돌솥에 밥을 안쳐 콩나물밥을 짓는다. 콩나물이 밥과 한 몸이 되어 입에 척척 감겨든다. 콩이 여물지 않고 줄기가 질기지 않아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콩나물 키우는 일만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이 부족하진 않을까, 혹여 너무 많아 넘치지나 않을까 염려 없이 그저 꾸준한 물 주기만으로 뿌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콩나물 키우기,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아도 좋다. 콩을 나물로 변신시킬 때 필요한 단 두 가지 요건, 그것은 바로 관심과 꾸준함. 그렇게 끓인 콩나물국 한 그릇에 오늘도 기운찬 힘을 얻는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도 더불어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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