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내가 끓인 콩나물국은 맛이 없을까. 이것은 한동안 나의 고민거리였다. 요리 고수들은 아마도 내가 새우젓으로 간을 하지 않아서일 거라고 했다. 혹은 육수를 좀 더 진하게 우려 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이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콩나물이 문제였다. 시중에서 사다 먹는 콩나물이란 게 질기고 고소한 맛이라곤 전혀 없는 게, 영 맹맛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콩나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토분에 양파망을 깔았다. 화분 구멍으로 콩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물 빠짐이 좋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갈무리한 콩나물시루에 하룻밤 충분히 불린 지눈이 콩을 넣고 빛이 들지 말라고 검은 천을 덮어준다. 이후로는 수시로 물을 주면 그만이다.
나 혼자서 콩나물을 키우는 게 아니다. 주방 식기 건조대 위에 콩나물시루를 올려두면 식구들이 주방을 오가며 이 놈이 한 번, 저 놈이 한번 그렇게 시나브로 물을 준다. 아이들은 커피 주전자에 물을 담아 물줄기를 빙빙 돌려가며 물 주기를 놀이 삼는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시루 속 존재가 불현듯 생각나면 '쏴쏴' 시원한 물 주기를 들이대기도 하는 것이다.
새벽 모호한 시간, 원치 않게 잠이 깰 때도 있다.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보낸 하루에 어떤 미련이 남아서일까. 누리지 못한 자유가 애달픈 걸까. 읽다만 책장을 다시 들추기도, 휴대폰 SNS에 접속하기에도 석연찮은 시간,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꼭 하나 있다. 바로 콩나물 물 주기.
저녁 설거지를 하며 물 준 것을 끝으로 다음날 동틀 때까지 버려두곤 하는 콩나물이다. 어둠 속에서 자라나는 콩나물이므로 불을 켜지 않은 채 조리수 물을 가만히 튼다. 시루 속에서 고요히 잠자던 콩나물이 뜻밖의 때를 만나 해갈을 시작한다. 꿀떡꿀떡, 달게 물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잠에 취한 채로 엄마 젖을 힘차게 빨던 아이 목젖에서 듣던 바로 그 소리다.
아이 국은 순하게, 어른국은 매콤하게
돌솥 콩나물밥이 푸근하다
한밤중에 준 물로 콩나물이 껑충 자라났다. 조금 부족하다 싶게 자랐을 때 콩나물을 거두어 그것으로 콩나물국을 끓인다. 꼬숩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끓인 콩나물 국에 몇 숟갈설설 만 밥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어느 날은 돌솥에 밥을 안쳐 콩나물밥을 짓는다. 콩나물이 밥과 한 몸이 되어 입에 척척 감겨든다. 콩이 여물지 않고 줄기가 질기지 않아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콩나물 키우는 일만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이 부족하진 않을까, 혹여 너무 많아 넘치지나 않을까 염려 없이 그저 꾸준한 물 주기만으로 뿌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콩나물 키우기,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아도 좋다. 콩을 나물로 변신시킬 때 필요한 단 두 가지 요건, 그것은 바로 관심과 꾸준함. 그렇게 끓인 콩나물국 한 그릇에 오늘도 기운찬 힘을 얻는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도 더불어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