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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 Dec 12. 2021

01 나의 블루, 시리다

밖을 나오자마자 눈을 찌푸린다. 햇빛이 곧다. 머리와 이마 그 언저리쯤을 겨냥하듯 내리쬐는데 피할 재간이 없어 실눈으로 걷는다.


‘하아.’


엄마의 걱정 어린 잔소리만 아니면 학교 가기 정말 싫은 그런 날이다. 그렇다고 지하의 습함이 이불까지 배어 있는 집에 누워있는 것도 싫지마는.


‘구름 한 점이 없네.’


올려다본 하늘은 끝을 모를 깊이로 퍼런 것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나를 놀리는 것 같다. 무슨 뒤틀린 심사냐겠지만 속도 모르게 투명한 그것이 나는 기분 나쁘다. 계속 보고 있자니 눈이 시리다. 묵직한 무언가가 내 심장과 위장 즈음에 걸쳐 앉아 얕은 메슥거림도 느껴진다. 그 묵직한 게 무엇인지 아직도 정의 내리지 못했다. 계속 나를 따라오는 햇볕의 뜨거움과 하늘에서 보여주는 서늘함이 걷는 내내 함께한다.


‘꿈이었으면, 꿈이었으면.’


다시 생각을 이어가 본다. 끝이 안 날 것 같이 보였던 그 가난은 나를 더 굴을 파고 들어가게 만든다. 생각이 올라가고 올라가 ‘그만 살고 싶어’라는 존재에 대한 유무까지 가게 되면 학교 정문에 도착해 있다. 반에 들어서면 친구들은 시시콜콜한 주제로 웃고 떠든다. 그 대열에 끼어본다. 그런데 언짢은 기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귀에 솜뭉치가 들어 있듯 왕왕거리는 친구들의 웃음과 대화에 그런대로 변죽만 잘 맞추고 있을 뿐.


좋아하는 가수의 팬 사인회를 못 갔다고 침울해진 친구를 계속 보자니 또다시 뒤틀린다. 그런 거로 일희일비하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가 우스꽝스러워 보였고, 끝내는 그 우스운 것조차 못 하는 내 꼴이 불쾌하다.


‘억울해.’


그 생각으로 가득해질수록 더 환하게 웃는다. 불쾌해질수록 더 웃어본다. 웃음으로 덮어본다. 그때부터일까, 나는 나를 잊고 살기로 한다. 더는 언짢기 싫어서, 불쾌해지기 싫어서, 우스워지기 싫어서, 자주 휘청거리는 내가 싫어서, 초라한 나를 내가 보는 게 싫어서.


과거의 세세한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잊기로 해서 잊힌 건지, 원래 기억력이 안 좋은 건지 모르지만 현상은 사라지고 감정만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 시절 더 깊은 바닥이 있을까 싶을 때 올려다본 하늘은 언제나 시리도록 퍼렜다. 퍼런 하늘은 눈부셨고 나는 시리게 눈물이 났다.










Thumbnail Photo by Fabrizio Cont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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